일본·프랑스도 한 연금개혁, 16년째 스톱…정치적 이해에 지지부진
佛, 반대에도 개혁법안 강행…日, 선거 대패 무릅쓰기도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지난 2007년 이후 16년째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국민연금 개혁이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지지부진하는 모양새다. 최근 여론의 반대에도 연금개혁을 강행하는 프랑스와 달리 한국은 표 이탈을 우려한 정부와 여야 모두 몸을 사리면서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0일 정치권·정부 등에 따르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는 지난 1월 말까지 연금특위에 연금개혁 관련 보고서를 제출할 계획이었지만 아직 제출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연금특위의 본격적인 논의 시작도 지연되면서 당초 4월로 예정된 국민연금 개혁안 발표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자문위는 지난 2일 개혁안 초안 대신 그동안의 논의 내용을 모두 담은 경과보고서를 특위에 제출하기로 했다. 보고서에는 연금 제도 구조개혁 방안과 관련해 소득대체율·보험료율 등 민감한 수치의 경우 자문위 합의안이 아니라 그동안 거론됐던 복수의 안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연금개혁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갔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여야 모두 연금 개혁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실제로는 총대를 맬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선 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의 개혁이 불가피하지만 이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을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월 국민연금 개혁 방안으로 '모수개혁(기금 출납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보험료율·소득대체율을 조정)'이 논의된다고 보도되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 연금특위에서 개선 방안이 마련되면 해당 내용을 참고할 것"이라며 공을 국회로 넘겼다. 국회 연금특위도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지난 2월 모수개혁 대신 '구조개혁(연금 통합 등 연금제도 구조를 변경해 제도의 기능·역할을 바꾸는 것)'을 추진하겠다며 핵심을 비켜갔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표 이탈을 우려한 정부와 여야가 연금개혁 논의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사실상 발을 뺐다는 평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이 때문에 연금개혁 자체를 추진하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에선 4개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표심을 우려한 여야의 눈치싸움 끝에 흐지부지됐다.
최근 연금 갈등이 큰 쟁점 사안으로 불거진 해외와는 다른 모습이다. 프랑스의 경우 근로자의 은퇴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연금 개혁안에 국민의 약 70%가 반대하지만 정부는 하원 투표를 건너뛴 채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야당은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 표결을 추진하고, 지난 16일부터 시민 수만명이 반대 시위를 벌이는 등 거센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
같은 문제를 겪은 일본의 경우 지난 2004년 보험료율을 높이고 소득대체율은 낮추는 내용의 연금 개혁을 이뤘다.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주도로 여야가 몸싸움까지 벌인 끝에 법안이 통과됐다. 이 여파로 그해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은 대패했지만,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연금 재정 안정화로 이어지면서 당시 일본 정부의 결단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연금개혁은 중요한 국가적 개혁과제"라고 강조하며 의지를 드러냈다. 다만 일각에선 이날 윤 대통령이 "기금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점으로 미뤄볼 때 모수개혁 등 정면돌파에 대해선 여전히 부담을 느끼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연금특위 자문위는 조만간 특위에 경과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며, 특위는 보고를 받은 후 전체회의 일정을 정해 개혁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제2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에서 "3월에 확정될 재정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연금 제도 및 기금운용 발전 논의를 통해 제5차 종합 운영계획을 수립해 오는 10월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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