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의 발전에 맞춰 스포츠도 변했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그저 공을 던지고, 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장비를 통해 공의 궤적과 회전수, 선수들의 움직임을 과학적으로 확인한다.
공 하나에 승부가 갈리는 만큼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기술 구현되고 있지만, 성공을 위한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노력도 있다.
2015시즌 초반 김기태 감독은 덥수룩한 얼굴로 덕아웃을 지켰다.
팀의 연승에 김기태 감독은 깔끔한 이미지를 포기하고 면도를 하지 않았다.
김기태 감독은 빨간 목폴라 차림도 고수했다.
출근길에 우연히 빨간 목폴라를 입었는데 승리가 이어지자 김기태 감독은 단벌 신사가 됐다.
선수들은 땀을 흘리면서 식사를 하는 사령탑의 모습을 안쓰러운 눈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그만큼 사령탑은 승리가 간절했다.
2019시즌에는광주FC 박진섭 감독이 ‘겨울 양복 사나이’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3월 개막전에서 승리를 이끈 박진섭 감독은 다음 경기에서도 그 차림 그대로 벤치 앞에 섰다.
하늘색 셔츠에 검은색 스웨터 그리고 남색 양복 상의의 박진섭 감독은 광주FC의 무패행진이 이어지자 의식처럼 옷을 세탁소에 맡기고 그대로 다시 착용했다.
겉옷뿐만 아니라 속옷까지 그대로였다.
하지만 박진섭 감독을 향한 시선이 점점 우려로 바뀌었다.
광주FC의 무패 행진은 봄을 지나 여름에도 이어졌다.
보기만 해도 더워 보이는 겨울 양복을 입고도 박진섭 감독은 “덥지 않다”고 웃었다.
7월 22일 광주FC의 무패 행진이 중단될 때까지 박진섭 감독의 땀과 노력이 더해진 징크스는 이어졌다.
이런 유쾌한 징크스도 노력이라면 노력이다.
이런저런 기록과 과학 기술로 스포츠 결과를 예상하고 결과를 바꿀 수도 있다
.
그런데 그라운드는 예상된 수치로만 돌아가지 않는다.
운의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평범한 땅볼이 되는 것 같았던 타구가 베이스나 잔디 경계에 맞고 안타가 되는 경우가 있다.
유독 바빕신의 가호가 따르는 경기도 있다.
지장, 덕장, 용장 말고 운장이 최고라는 말도 있다.
2009년 KIA의 우승은 정말 우주의 기운을 끌어모아서 만든 것 같기도 했다.
조범현 감독은 심오한 표정으로 “우주의 기운”을 이야기했고 선수들은 상상하지도 못했던 우승 순간을 경험했다.
경기가 끝난 뒤 많은 이들과 인터뷰하는데 흔한 멘트 중 하나가 “운이 좋았다”이다.
운이라도 끌어다가 승리를 하고 싶은 이들의 간절함.
좋은 징크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징크스’는 좋지 않은, 재수 없는 상황을 뜻한다.
투수 임기영은 KIA 시절 ‘징크스왕’으로 꼽혔다.
임기영의 등판 결과가 좋지 않은 날에는 경기장 휴지통에서 유니폼, 스파이크 심지어 글러브가 발견되기도 했다.
좋지 않았던 기운을 모두 털어내고, 다시 좋은 모습을 채우기 위해 임기영은 그날 경기와 관련된 것들을 싹 버렸다.
빨리 잊고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그라운드에서의 나름 생존법이었다.
예전 지도자와 선수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요즘 선수들도 징크스가 있다.
고졸 2년 차 내야수 정현창도 “비밀이지만 징크스가 정말 많다”고 말한다.
그는 경기가 끝나면 덕아웃에 있는 빈 물병을 열심히 치우기도 한다.
오타니의 ‘운 줍기’ 전략처럼 그렇게라도 운을 모아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싶은 바람을 담은 행동이다.
후반기 시작을 앞두고 KIA는 내심 걱정을 했다.
‘문학 징크스’때문이었다.
인과관계가 없겠지만, 우연이겠지만 이상하게 문학에서 좋지 않은 기억이 많았다.
흐름이 묘하게 흘러가는 불운한 경기가 많았다.
당장 올 시즌 첫 문학 원정을 생각해도 KIA는 아찔하다.
6이닝 무실점의 피칭을 하고, 5-0에서 등판을 마무리했던 개막전 선발 네일은 팀의 끝내기 패를 지켜봐야 했다.
KBO 3년 차 네일의 SSG전 첫승은 그렇게 무산됐었다.
KIA의 사령탑 이범호 감독에게도 아픈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금강불괴로 통했던 선수였지만 뜻밖의 햄스트링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2011년 8월 7일 문학 SK전, 2루 주자 이범호는 홈에 들어오던 과정에서 상대 포수의 페이크 동작에 충돌을 피하려다가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이 부상이 없었다면 선수 이범호의 통산 기록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가 2014년 옆구리 부상을 당한 경기장도 문학이었다.
부상은 사령탑이 가장 우려하지만, 가장 손쓸 수 없는 변수다.
SSG와의 원정을 떠나면서도 이범호 감독은 부상 걱정을 했다.
그리고 후반기 첫 경기가 펼쳐진 16일 1회말, 이범호 감독의 얼굴이 굳었다.
선발 아담 올러가 이날 경기 10번째 공을 던진 뒤 자리에 주저앉았다.
박성한의 바운드 된 타구에 오른쪽 무릎 뒤쪽을 맞은 것이다.
올러가 다시 마운드에 서서 공을 던질 때까지 사람들은 가슴을 졸였다.
다행히 큰 부상을 피하면서 올러가 피칭을 이어갔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올러는 올 시즌 처음으로 5회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패전투수가 됐다.
문학징크스가 절로 생각날 수밖에 없던 경기였다.
우려 속에 시작한 후반기 첫 경기가 0-6 영봉패로 끝났으니 이범호 감독은 잠 못 이룬 밤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단단해진 KIA는 그냥 물러나지 않았다.
타이밍 답을 찾은 ‘캡틴’ 나성범이 밀어서, 다시 리드를 가져오는 스리런을 연달아 날렸다.
우려 속에 후반기를 시작한 이의리는 불펜이라는 낯선 자리에서 익숙한 구위의 공을 뿌리면서 마운드 분위기를 바꿨다.
김호령은 박성한에게 데자뷔 같은 악몽을 남겼다.
우중간 깊숙한 곳에 떨어져야 했던 공이 김호령의 글로브로 빨려 들어갔다.
2023시즌에도 박성한은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면서 허탈하게 덕아웃으로 향했었다.
5-5로 맞선 무사 만루에서 병살타를 쳤던 박재현은 2타점 역전 적시타의 김호령과 쐐기 투런을 날린 카스트로를 생명의 은인처럼 맞았다.
문학과 악연인 정해영은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동시에 안고 돌아왔다.
정해영이 다음 SSG전 원정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KIA가 신경 쓰이던 징크스 하나를 지웠다는 것이다.
좋지 않았던 기억들을 날려버린 후반기 시작이었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