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성마비 장애인의 ‘재택 편집자’ 생존기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5. 9. 2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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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보기 힘들어졌지만 국어사전은 교정 작업자에게 필수적인 물건이다. 필자 제공

미성(가명) | 편집인

목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진다. 2시간 넘게 집중해서 일했더니 슬슬 한계인가 보다. 교정 목록들을 얼른 파일로 옮기고 침대에 눕는다. 10분 정도 누워서 쉬지 않으면 목의 통증은 더 심해진다. 통증은 온몸에 보내는 위험 신호와도 같다. 마감이 아무리 급할 때도 통증이 느껴지면 멈춤의 시간이 필요하다. 재택근무니 가능한 일이다.

나이 들면서 몸이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다. 뻣뻣해지는 근육으로 인해 통증이 있고 언어 장애가 심해서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매우 좁다. 장애로 인해 걷는 것도 어렵고 말하는 것도 안 되고 물건을 나를 힘도 없다. 손가락으로 세심하게 무엇을 만들 수도 없고 그럴듯한 자격증도 없다. 그렇다고 장애인으로서 국가의 지원을 받을 조건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복지 담당 공무원들이 보기에는 제법 좋은 몸이지만, 고용주들이 보기에 나는 너무 나쁜 몸에 해당한다.

10여년 전 아무개 출판사에서 재택근무를 시작하며 출판업계로 들어왔다. 처음 일하게 된 출판사는 아예 싼 인건비 지출을 위해 교정 업무를 하는 정규직을 뽑았다. 훈련생 10여명이 초벌 교정에 투입됐다. 낮은 인건비, 쉽지 않은 일의 강도, 기초수급비보다 낮은 월급으로 인해, 이것저것 궁리하던 사람들이 떠나고 결국 남은 3명이 업무에 동원되었다.

그 출판사에서는 주로 자비 출판을 하는 저자의 책을 만들었다. 초기에는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일한다고 생각하며 기뻐했지만, 그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하루에 적어도 100쪽은 교정해야 일정을 맞출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내용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엉망인 원고가 많았다. 게다가 수습 3명한테 주어진 업무는 단순 초벌 교정인지라, 문장이 이상해도 눈을 감고 넘겨야 했다.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수습 3개월이 지난 뒤 해고되었다. 병원이 문제였다. 목 디스크 수술을 받은 지 몇달 안 되던 시기라 병원에 자주 다녀야 했다. 저녁에 일을 보충해 마감을 맞출 때가 있었다. 고용주는 “당신만 업무를 늦게 시작하는 편의를 봐줄 수는 없다”고 했다.

일의 질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이전까지 해오던 논술 첨삭 자리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수입의 큰 비중을 차지하던 회사들의 독서 교육 강의들도 점점 대면 강의 형식으로 바뀌고 있었다. 비정기적인 일을 하는 나날이었다. 자기소개서 수정, 리플릿 수정, 자서전 수정 등 들어오는 일의 가격을 따지지 않았다. 누군가 일을 주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그렇게 1년을 지내다 드디어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소규모 출판사의 외주 작업 의뢰였다. 3교를 보면서 장당 1000원을 받는 것이 공식 가격이라고 했다. 일을 계속 줄 테니 당분간 이 가격으로 하자고 했다.

아주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는 걸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작업계약서를 쓰지 않고, 출판사는 나에게 책 나오는 과정의 전반적인 일을 맡겼다. 그러고도 3교 교정 작업에 해당하는 돈만 주었다. 3년 정도 거래했다. 마지막으로 담당했던 책은 한줄 한줄 다시 쓰다시피 했다. 출판사 대표는 자신이 선심이나 쓰는 듯 해당 책은 특별히 교정비를 올려준다고 말했다. 도저히 못 할 일이라 판단되어 다음 책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비장애인 외주 작업자에게는 좀 더 많은 교정비를 지급하고 있었다.

외주 작업자에겐 교정 교열만 하게 하는 출판사가 더 많고, 그게 맞는 방식이란 걸 지금은 안다. 당시는 정식으로 출판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사수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모르는 건 인터넷을 찾아서 처리했다. 그렇게 10년 동안 버티며 편집 업무를 하고 있다.

전반적인 출판 과정은 숙달했지만 아쉬운 점은 여전하다. 장애인에게 편견을 가진 사람도 많아 모르는 곳에선 일을 잘 얻지 못한다. 그나마 주기적인 일을 하는 곳이 있지만 여전히 생활은 불안정하다. 처음 회의에 가면 미리 내 상황과 장애 정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도 상대가 당황한다. 얕잡아 보고 작업비를 후려치는 시도도 여전하다. 삐딱한 시선, 차별적인 말쯤은 무시하면서 일해야 한다.

그래도 오늘도 일한다. 나같이 애매하게 일하는 장애인에게 잘하라는 의미의 지원이 하나쯤은 생겨나길 기대하면서. 인재 개발, 사회성 향상 같은 말로만 하는 지원 말고 외주 작업자라도 고용지원금을 주든가, 근로장려금 수령 한도를 조정해 주든가 등 실태에 맞는 실질적 지원 말이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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