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일본과 유럽연합(EU)산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면서 한국만 25% 관세를 적용받게 되어 국내 자동차 업계가 비상에 걸렸다. 그동안 가격 경쟁력으로 미국 시장을 평정해온 한국차가 일본·독일차보다 오히려 비싸지는 역설적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차만 25% ‘관세 폭탄’…가격 경쟁력 붕괴 위기
2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난 24일 유럽산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율을 27.5%에서 15%로 확정했다. 일본산 자동차 관세도 이미 16일부터 15%로 낮춘 상태다. 반면 한국은 관세 협상 후속 협의에 난항을 겪으면서 여전히 25% 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이는 그동안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픽업트럭 외 모든 차량을 무관세로 수출해온 한국 자동차 업계에는 치명적 타격이다. 일본과 유럽 업체들이 기본 관세 2.5%를 물어온 것과 비교하면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셈이다.

투싼 vs 티구안, 가격 역전 현실화
구체적인 가격 영향을 살펴보면 충격적이다. 현대차의 미국 베스트셀러 투싼은 현재 최소 판매가 2만9200달러로 경쟁 차종들보다 1000달러 이상 저렴하다. 독일 폭스바겐 티구안(3만245달러), 일본 도요타 라브4(2만9800달러), 혼다 CR-V(3만920달러)보다 모두 낮은 가격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현대차가 25% 관세를 가격에 반영할 경우 투싼은 3만6500달러로 급등한다. 반면 15% 관세가 적용된 티구안(3만4782달러), 라브4(3만4270달러), CR-V(3만5558달러)보다 모두 비싸져 소비자들의 선택 변화가 불가피하다.
전기차 부문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현대차그룹의 전기 SUV 아이오닉5는 기본 가격 4만2600달러로 폭스바겐 ID.4(4만595달러)보다 낮았지만, 관세 격차가 반영되면 5만3250달러로 뛰어 5만1859달러인 ID.4보다 비싸진다.
월 7000억원 관세 부담…”수익 악화 불가피”
IBK투자증권은 “현 수준 관세가 지속되면 현대차·기아가 매달 7000억원가량의 관세 부담을 질 것”이라며 “가격 경쟁력을 갖추던 현대차·기아가 다양한 가격 전략을 구사하는 데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5% 관세 부과 이후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은 6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8월 대미 자동차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2% 감소한 20억9700만달러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은 관세 부과가 차량 판매가 인상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한국만 25% 관세를 부과받는 상황이 길어질수록 수익 악화는 불가피하다. 그동안 FTA를 바탕으로 구축해온 미국 내 경쟁 우위가 한순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업계는 정부가 조속히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타결해 일본·유럽 수준인 15%로 관세율을 낮춰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10여년간 공들여 쌓아온 미국 시장에서의 성과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