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제의에서 되살아나는 공동체의 기억, 인천의 동제

기호일보 2025. 11. 1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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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걸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남동걸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인천은 흔히 항만과 공단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서해를 향해 열린 항구와 산업단지는 근대화의 상징으로 인천의 성장을 이끌어왔다. 그러나 근대화의 이면에서 오래전부터 마을의 평안을 빌며 공동체를 지탱해온 전통의 흔적들은 사라져갔다. 대표적인 것이 '동제(洞祭)'다. 동제는 지역에 따라 당제(堂祭), 당고사, 서낭제, 도당제, 산제, 산신제 등으로 불리며 한 해의 풍년과 무병,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 제의다. 이는 마을공동체가 함께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더불어 살아감을 다짐하던 인천의 가장 오래된 공동체문화라 할 수 있다.

과거 인천의 거의 모든 마을에는 '당집'이 있었다. 신을 모셔두는 당집은 마을의 상징이자 신앙의 중심이었다. 해안가 마을에서는 바다의 신, 즉 용왕이나 해신을 모셨고 내륙 마을에서는 마을의 수호신이라 여겨진 산신이나 성황신을 모셨다. 이곳에서 제를 올리는 날이 다가오면 마을 사람들은 제관을 뽑고 제당 주변에 금줄을 치며 잡귀의 출입을 막았다. 집집마다 제물과 음식을 장만하고 남녀노소가 참여해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제사가 끝난 뒤에는 모두가 음식을 나누며 한 해의 무사를 빌었다. 이날만큼은 신과 사람이, 이웃과 이웃이 한마음으로 어울렸다.

서구 백석동의 동제, 남동구 수산동의 당제, 중구 영종도 구읍의 당제 등은 인천 동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제의는 단순한 신앙 행위가 아니라 마을의 질서를 세우는 사회적 장치이기도 했다. 당집은 마을의 의논이 이뤄지는 장소였고 제를 준비하는 과정은 곧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참여의식이었다. 동제는 신을 위한 제사였지만 실상은 사람을 위한 행사였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개발의 물결은 이런 전통을 빠르게 지워버렸다.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서며 옛 마을의 형태는 사라지고 주민 구성도 바뀌었다. 행정구역상 이름만 남은 마을이 많아졌고 당집과 수호목은 철거되거나 도로 아래 묻혔다. 외지에서 유입된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면서 동제는 점차 '옛날이야기'가 됐고 자연스레 전통은 단절됐다. 이는 단지 마을 신앙의 쇠퇴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해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인천 곳곳에서는 아직 동제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서구 검암동, 신현동이나 남동구 운연동, 장수동의 동제가 대표적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이나 10월이면 좋은 날을 택해 산신제나 도당제 등의 동제를 지낸다. 제물은 예전보다 간소하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사라진 당집을 복원하거나 도당굿을 지역 축제 형태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인천시와 지역 문화단체가 함께 '도당제 복원사업'을 추진하기도 하며 주민들은 이를 계기로 마을의 역사와 정체성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과거 제의의 의미가 단순한 신앙의 틀을 넘어 지역문화의 자산으로 재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동제가 단순히 미신이나 풍속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문화적 기반임을 보여준다. 동제의 본질은 신앙의 형식에 있지 않다. '함께한다'는 그 행위 자체가 핵심이다. 제를 준비하고 음식을 나누는 과정에서 이웃의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의 삶을 위로하며, 마을의 연대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 정신은 오늘날의 마을 축제나 주민자치사업이 지향하는 공동체적 가치와 다르지 않다.

도시는 물리적으로는 가까워졌지만 마음의 거리는 오히려 멀어졌다. 빽빽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우리는 이웃의 이름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이런 시대일수록 마을의 기억을 다시 불러와야 한다. 동제는 신을 위한 제의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약속이었다. 서로의 안녕을 빌던 그 마음,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던 그 손길이야말로 오늘날 도시가 잃어버린 '공동체의 감수성'이다.

인천의 동제는 사라진 전통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삶의 태도이자 공동체를 회복하는 열쇠다. 당집에 걸린 금줄은 잡귀를 막는 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끈이었다. 산업화의 불빛이 아무리 밝아도 그 끈이 이어질 때 도시는 비로소 사람 냄새가 나는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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