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 '자금줄' SVB 파산 쇼크... '13일 블랙 먼데이' 오나

민재용 2023. 3. 1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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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6번째 규모 실리콘밸리의 돈줄
자금난에 금융당국 전격 '폐쇄' 결정
스타트업 줄도산 금융위기 확산 우려
미 재무장관 "구제금융은 없어" 일축
미 금리 인상 '빅스텝'보다 줄일 수도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앞 전경. SVB는 10일 파산했다. 연합뉴스

40년간 미국 스타트업(신생 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 왔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다.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인 SVB의 붕괴 소식에 전 세계도 파장을 우려하며 적극 대응에 나서는 분위기다. 미국 정부의 개입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스타트업들이 줄줄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경고음도 나온다. 3월 중 ‘빅스텝’(0.5%포인트 금리 인상)을 예고한 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금리 인상폭을 줄일 수 있다는 관측마저 제기된다.


미 금융당국, '폐쇄' 결정 후 자산·예금 몰수

1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BC방송 등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전날 SVB에 폐쇄 명령을 내리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예금 지급 업무를 하도록 했다. FDIC는 ‘샌타클래라 예금보험국립은행’이라는 이름의 새 은행을 설립하고, SVB의 모든 자산과 예금을 몰수해 이 은행으로 이전했다.

지난해 말 기준 SVB의 보유 자산은 2,090억 달러(약 276조 원), 총예금은 1,754억 달러(약 232조 원)에 각각 달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무너진 워싱턴뮤추얼 은행 이후 최대 규모의 은행 파산이라는 게 미 언론들의 설명이다. 1982년 설립돼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신생 기업들에 자금 지원을 해 왔으나, 자금난 끝에 결국 파산하게 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 시장에서도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가상화폐 가격이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12일 서울 서초구 빗썸고객센터 모니터에 가상화폐 실시간 거래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예금보호 초과분 조기 지급"... 펀드 조성도 검토

미 정부도 후폭풍을 우려, 발 빠른 대응에 착수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대책을 논의했고, 뉴섬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미 규제당국은 SVB에서 예금자들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예금 보호 한도 초과분의 일정 부분을 조기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기준 SVB의 총 예금 가운데 ‘개인별 예금보호 한도’인 25만 달러를 웃도는 예치금 총액은 95%(1,515억 달러)에 이른다. 다른 중소은행들로 여파가 확산돼 뱅크런(대규모 인출 사태)이 생길 가능성에 대비, 새로운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미 정부의 구제금융 등 적극 개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비등하다. SVB 예금자 대부분이 스타트업이라 이들의 자금이 묶이면 줄도산과 수천 명의 무더기 해고가 불가피하다는 이유다. 벤처 투자가 데이비드 삭스는 트위터에 “SVB 예금을 상위 4개 은행에 분산 배치해야 한다”며 “월요일(13일) 전에 이것을 하지 않으면 위기는 확산할 것”이라고 썼다. 은행과 주식 시장이 문을 여는 13일이 ‘블랙 먼데이’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구제금융 요구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옐런 장관은 12일 CBS방송에 나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대형은행 투자자와 소유주들이 구제금융을 받은 적이 있다"면서도 "이후 개혁은 우리가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의미한다"며 연방정부 개입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은행 시스템은 안전하고 자본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건물 출입구가 공지문이 붙은 채 굳게 닫혀 있다. 실리콘밸리=로이터 연합뉴스

WSJ "규제당국 무방비 상태" 비판.. 책임론 제기

SVB 파산 여파는 영국과 캐나다 등 이 은행 지점이 있는 다른 나라로도 번지고 있다. 영국 내 180개 정보기술 업체는 “월요일에 위기가 시작될 것”이라며 재무부의 조치를 촉구했고, 제러미 헌트 영국 재무장관도 신속한 대책 추진을 약속했다. 이르면 13일 SVB 거래 기업 유동성 지원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에선 규제당국의 책임론이 거세지는 모습이다. WSJ는 SVB가 단기 자금을 끌어모아 장기 자산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초고속 몸집 불리기’를 했다며 “규제당국이 무방비 상태였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월가에 정부 자금, 곧 국민 세금을 대거 투입한 것을 두고 쏟아진 대중의 분노가 재현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미국 통화 정책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준은 21일부터 이틀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결정할 예정인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이미 ‘빅스텝’을 예고한 상태지만 SVB 사태로 속도 조절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연준은 13일 오전 이사회를 소집한다고 밝혔다. 현재로선 이번 사태가 미국 금융기관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미국 대형 은행들의 재무 사정은 양호하고 스타트업계에도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작년 말 300억 원 주식 보유

한편 국민연금이 지난해 연말 기준 SVB금융그룹 주식 10만795주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말 주가(주당 230만 달러) 기준으로 2,300만 달러(약 304억 원)어치를 보유한 셈이다. 12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은 국민연금이 지난해 SVB금융그룹 주식 2만7,664주를 추가 매입했다고 보도했다. 이 중 1만9,884주는 주가 하락기였던 지난해 4분기 매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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