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깅노트] 삼성·한화 빅딜이 10년 뒤 던지는 질문

'삼국지'의 조조는 한중(漢中) 땅을 두고 닭의 갈빗대(鷄肋)에 비유했다. 관리 부담은 큰데 당장 얻을 실익은 제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유비는 그 땅을 발판삼아 세력을 확장했고 촉한 건국의 기반으로 만들었다. '서유기'의 동해 용왕 역시 바다 밑을 누르던 거대한 쇠기둥이 무겁고 거추장스럽다며 애물단지 취급했지만 손오공의 손에 쥐어지자 그것은 천하를 호령하는 여의금고봉으로 재탄생했다.

이처럼 가치는 절대적이거나 고정적이지 않다. 본질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이의 전략과 시대 감각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최근 한화가 롯데와 포스코를 제치고 국내 재계 5위에 올라선 장면은 자연스럽게 2015년 삼성의 방산 빅딜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당시 삼성은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 등 방산 계열사를 한화에 매각했다. 이를 두고 시장의 평가는 엇갈렸다. 누군가는 "삼성이 미래 먹거리를 포기했다"고 평가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비주력 사업을 정리한 선택과 집중"이라고 해석했다.

삼성에게 방산은 핵심 성장 전략과 결이 다른 사업이었다. 국가 안보 산업이라는 상징성은 컸지만 수익성은 제한적이었다. 정권 변화와 정책 변수, 반복되는 방산 비리 수사 등 높은 관리 리스크도 뒤따랐다.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삼성테크윈의 내부 논란을 두고 "삼성의 자랑이던 깨끗한 조직문화가 훼손됐다"며 격노했다는 일화는 방산업을 바라보는 삼성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삼성의 시선은 글로벌 기술 산업으로 향하고 있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한 첨단 기술 경쟁이 그룹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판단했고 자본과 인재, 경영 역량 역시 이들 사업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방산은 자연스럽게 전략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반면 한화의 판단은 달랐다. 한화에게 방산은 단순한 사업군이 아니라 그룹의 산업 DNA와 맞닿아 있는 영역이었다. 화약, 기계, 중공업 기반을 가진 한화에게 삼성으로부터 넘겨받은 정밀 기계·엔진 기술은 기존 지상무기 체계와 빠르게 결합할 수 있는 자산이었다. 이후 이는 항공우주와 에너지 사업으로까지 확장됐다.

지정학적 환경 변화까지 맞물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 각국의 재 무장 흐름이 본격화되면서 한화 방산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유럽과 중동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수주 확대는 결과적으로 한화를 재계 5위로 끌어올린 동력이 됐다.

그렇다면 지금의 결과는 삼성의 뼈아픈 오판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과거 방산이 화약, 철강, 기계장비 중심의 산업이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AI)·반도체·센서·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첨단기술 패권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더 많은 포탄을 생산하는 능력 못지않게 데이터를 빠르게 수집·분석하고, AI로 정밀하게 판단하며, 고성능 반도체로 연산 능력을 뒷받침하는 힘이 중요해졌다.

공교롭게도 이는 삼성전자가 가장 강점을 가진 영역이기도 하다.  삼성이 지닌 고성능 반도체와 AI 인프라는 무기체계의 지능화와 데이터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로 자리 잡았다.

결국 과거의 선택은 한쪽의 실수와 다른 한쪽의 혜안으로 단순하게 정리내릴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화는 삼성이 덜어낸 방산업으로 성장 사이클을 열었다. 삼성 역시 그만큼 자본과 역량을 반도체와 AI 사업에 집중하며 기업가치와 시장 지위를 끌어올렸다. 이처럼 성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

모든 꽃이 같은 계절에 피지 않듯 기업의 선택도 같은 시간표 위에서 평가될 수 없다. 한화는 방산으로, 삼성은 반도체와 AI로 자신의 계절을 열었다. 10년 전 갈라졌던 두 기업의 전략은 AI와 방산이 결합하는 새로운 산업 지형에서 다시 맞물리고 있다. 과거의 빅딜이 여전히 현재형의 질문으로 남는 이유다.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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