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승계 방정식] ‘4세 경영’ 본격화…두각 나타낸 ‘직계’ 허정구家 | GS
GS그룹은 가족경영을 이어온 대표적인 기업집단으로 오너일가 수십명이 지분을 분산 보유하고 있다. 그만큼 차기 총수를 예단하기 어려워 대외적으로 치열한 승계 레이스를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들어 허만정 GS그룹 창업주의 장남 고(故) 허정구 일가 4세의 그룹 장악력이 눈에 띄고 있다.
GS그룹은 2025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GS리테일 신임 대표이사에 허서홍 경영전략SU장(부사장)을 내정했다. 이에 따라 GS그룹의 주요 사업인 정유, 건설, 유통 등에 오너 4세가 전면 배치됐다.
허준구家 3세대서 허정구家 4세대로 ‘무게중심’ 이동
GS그룹은 지난 2005년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한 뒤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해왔다. GS그룹의 효시인 허만정 창업주는 8형제를 뒀는데 이 중 첫 부인 사이에서 얻은 허정구, 허학구, 허준구, 허신구, 허완구 일가가 주로 GS그룹과 계열사를 이끌어왔다.
고 허준구 전 GS건설 명예회장은 허만정 창업주의 3남으로 LG그룹과 동업 관계였을 때부터 GS의 성장을 이뤄냈다. 허씨와 구씨 일가가 LG그룹을 경영했던 당시 구씨 일가는 외형을, 허씨 일가는 재무 등 내실을 담당했다. 허준구 전 명예회장은 창업 1세대를 도와 현재 GS그룹의 토대를 만든 인물로 평가된다. 이어 지금까지도 그의 아들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과 허태수 GS그룹 회장 등 3세가 사실상 그룹을 장악한 실세다.
그러나 4세 경영에 접어들면서부터는 허만정 창업주의 장남인 허정구 일가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다. 고 허정구 삼양통상 창업주는 허남각, 허동수, 허광수 등 3남을 뒀다. 이 중 차남 허동수 GS칼텍스 명예회장의 장남 허세홍이 2019년 GS칼텍스 대표이사(사장)에 올랐다. 3남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2남 허서홍은 올해 임원인사에서 GS리테일 대표이사(부사장)에 선임됐다. 오너 3세에서 4세로 넘어가면서 허정구 일가가 두각을 나타내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최근 1남 허남각의 장남이자 GS그룹 종손인 허준홍 삼양통상 대표이사(사장)는 ㈜GS의 지분을 적극 매입하고 있다. 허준홍 사장은 2022년 말까지만 해도 ㈜GS 지분 2.8%를 보유했으나 2023년과 2024년 지분을 매집해 현재는 3.38%를 가지고 있다. 단일주주로는 허용수 GS에너지 대표(5.16%), 허창수 명예회장(4.59%)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일가별로 보면 이달 9일 기준 허준구 일가의 ㈜GS 지분율은 15.82%, 허정구 일가의 지분율은 14.5%로 아직 허준구 일가가 1.32%p 앞선다. 다만 허정구 일가의 4세가 그룹 요직에 배치되면서 균형을 이루는 구조다.
GS그룹의 또 다른 주요 계열사인 GS건설은 지분구조상 허준구 일가가 지배하고 있다. 허창수, 허윤홍, 허진수, 허태수 등 허준구 일가 특수관계인 14인이 보유한 지분만 23.61%다. GS 계열에 속해 있지만 ㈜GS의 지분이 없어 현재 회장을 맡은 허창수의 개인회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부터 허창수 회장의 장남 허윤홍 대표가 경영 전면에 나섰다. GS건설은 경영구조상으로도 사내이사부터 기타비상무이사까지 허준구 일가가 장악하고 있다.
4세 리더십 이동 마무리…허세홍·허윤홍‧허서홍 3파전
GS그룹은 중요 사항을 가족회의에서 결정하는 만큼 인사나 지분확대 등 승계작업 역시 합의를 거쳐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4세 경영에 접어들면서 6촌 관계인 가족 간 결속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장기적 관점에서 GS건설은 허준구 일가가 경영하는 수순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허세홍 GS칼텍스 대표는 1969년생으로 GS그룹 4세 경영인 중 맏형이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다. 그는 일본 오사카전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뱅커스트러스트 한국지사와 IBM 뉴욕본사를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허 대표는 2007년 GS칼텍스 싱가포르 부법인장을 맡으며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석유제품 수출 등을 담당했고 신시장을 개척하기도 했다. 이후 여수 공장 공장장, 윤활유사업본부장을 맡으며 석유화학 부문에서 전문성을 강화했다. 2016년에는 오너 4세 중 처음으로 GS칼텍스 등기이사가 됐다. 이후 2017년 GS글로벌 대표를 거쳐 2019년 GS칼텍스 대표로 선임됐다. 4세 중 처음으로 핵심 계열사 대표에 오르면서 승계 레이스에서 선두를 차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GS칼텍스는 그룹의 핵심 캐시카우이자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담당하는 만큼 상징성이 큰 회사다. 허 대표는 취임 첫해부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고,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BSSR 석탄광 지분 인수 등 자원개발 사업을 주도했다.
허윤홍 GS건설 대표는 1979년생으로 4세 승계 후보 중 가장 젊은 나이에 대표를 맡았다. 그는 세인트루이스대에서 국제경영학 학사, 워싱턴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 GS칼텍스에서 시작해 2005년 GS건설 대리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2010년 플랜트기획팀 부장, 2012년 경영혁신·IR담당 상무보, 2013년 플랜트공사지원담당 상무, 2016년 사업지원실장(전무) 등을 거쳤다. 2019년에는 신사업추진실장(부사장)에 올랐고 2020년 신사업부문이 만들어지면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수처리 업체인 GS이니마와 모듈러주택 사업의 자이가이스트, 대서양 연어양식사업 에코아쿠아팜 등 신사업 분야에서 성장을 이끌어내며 경영능력을 입증했다. 이후 2023년 자이 검단 사고 이후 GS건설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허 대표는 무너진 브랜드 이미지와 신뢰를 회복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GS리테일은 허연수 부회장이 용퇴하면서 허서홍 부사장이 맡게 됐다. 허 신임 대표는 1977년생으로 스탠퍼드대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고 삼정KPMG 금융부 애널리스트를 거쳐 2005년 GS홈쇼핑 신사업팀 대리로 입사했다. 2009년 셰브런 비즈니스애널리스트로 에너지 관련 업무를 시작해 2012년 GS에너지 LNG개발·구매팀에 합류했다. 이후 가스프로젝트추진TF장, 경영지원본부장, 경영기획부문장을 지냈다. 2021년부터는 ㈜GS 미래사업팀장을 맡았으며 지난해 11월 GS리테일 경영전략서비스 유닛장(부사장)을 맡아 유통 업계에 발을 들였다.
허서홍 대표는 GS그룹에 입사한 후 줄곧 에너지 관련 부서에서 일하며 전문경영 수업을 받다 2023년 정기 인사에서 GS리테일로 이동했다. 외부 애널리스트 경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력을 에너지 분야에서 쌓아온 인물이 유통 업계로 옮겨간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급변하는 유통환경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최근 유통 업계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격변하는 만큼 재무와 경영전략 역량을 두루 갖춘 허 대표를 선임했다는 분석이다. GS리테일은 9년간 오너 3세인 허연수 전 대표가 이끌었던 만큼 그의 공백을 메워야 하는 허 대표의 어깨가 무겁다.
김수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