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 팟캐스터와 유대인 랍비의 현실로코, '우린 반대야'
아이즈 ize 조성경(칼럼니스트)
로맨틱 코미디는 클리셰를 피할 수 없다. 다만 얼마나 잘 변주했느냐가 관건이다.
넷플릭스에서 로맨틱 코미디를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지난달 말부터 해외 신작으로 추천되고 있는 '우린 반대야'(원제 Nobody Wants This)가 눈에 띄었을 것이다. 마주 보고 있는 커플의 얼굴 사진 위로 적혀진 한글 제목이 뭘 의미하는지 좀처럼 와닿지 않기는 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보면 뻔한 듯 뻔하지 않은 이야기가 시청을 멈출 수 없게 한다.
미국 LA를 배경으로 하는 '우린 반대야'는 두 남녀가 한 친구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만나 연인이 되는 이야기. 여기까지는 참신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듯하지만, 19금 라이프스타일 팟캐스터와 유대교 랍비의 만남이라고 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살아온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르고 무엇보다 종교적인 이유로 삶의 가치관이 너무 다른 두 사람이어서 주변의 모두가 '우린 (두 사람 연애/결혼) 반대야'를 외치는 드라마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호기심이 커지게 된다.
여주인공 조앤(크리스틴 벨)은 팟캐스트에서 마치 성 상담이 메인 토픽이라 착각할 만큼 자신의 연애담을 거침없이 공개한다. 청취자들을 더 편안하게 대화에 유도하겠다는 분명한 취지가 있지만, 당당하고 자존감이 높다고 보기보다는 자유분방하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기 십상이다.
반면 남자 주인공 노아(애덤 브로디)는 가뜩이나 종교색이 짙은 유대인 중에서도 지도자인 랍비여서 늘 모범이 되어야 하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유대인이 아닌 여성과 사귀는 것부터 터부시되는 위치라 조앤과의 로맨스는 처음부터 가시밭길이 예정돼 있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애써 부정하다가 끝내 거부할 수 없는 끌림으로 사랑에 푹 빠지고, 반대하던 가족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얻어나가는 '우린 반대야'의 전개는 뻔한 로맨틱 코미디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며느리 자리를 놓고 극성을 부리는 시모의 존재는 동서를 불문하고 구태의연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전 여친의 질투심과 그로 인한 오해 등도 식상하다. 섹스 도구 판매점에서 벌어지는 어색한 듯 웃긴 에피소드는 전형적인 미국 로코의 클리셰다.
그럼에도 '우린 반대야'는 차별화 포인트가 분명하다. 유대교에서 출발한 이색적인 이벤트들과 유쾌하고 통쾌한 대사들이 잘 버무려져 색다른 재미를 주는 것이다. 그 덕분에 오히려 클리셰는 지겨운 관습이 아니라 '우린 반대야'만의 독특함을 감싸주는 편안한 매력이 된다.
'우린 반대야'는 신데렐라 스토리 같은 전형적인 로코보다는 훨씬 더 현실적인 이야기이긴 하다. 실제로 결혼을 위해 유대교로 개종한 배우 겸 코미디 작가인 에린 포스터가 자신의 실화를 바탕으로 대본을 쓴 것이어서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결혼 전 종교 때문에 갈등을 겪었다거나 아니면 개종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드물지 않다. 그만큼 종교라는 문제는 민감하면서 보편적인데, 로코에서 그것도 유대교에 대해 본격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국내 시청자들에게는 색다른 재미를 주기 충분하다.
결국 '우린 반대야'는 단순히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 종교, 문화에 대한 화두를 던져준다. 그렇다고 해서 묵직한 고민에 짓눌릴까 겁먹을 필요는 없다. 종교적 갈등이 다뤄진다고는 해도 로코다운 발랄함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호연이 빛나고, 드라마 곳곳에 배치된 유머와 위트는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당장 여주인공의 몰입도가 상당하다. 크리스틴 벨은 '가십걸'(2007~2012)의 내레이터로 총 6개 시즌을 모두 소화하고, 영화 '겨울왕국' 시리즈(2014/2019)에서는 안나 역으로 나서며 목소리만으로도 존재감이 남다르다. 그런 그가 유쾌한 연기로 놀라운 흡인력을 보여준다.
또한, 'The O.C' 시리즈(2003~2007)로 일약 스타가 됐던 애덤 브로디는 오랜만에 자신의 매력을 제대로 빛내는 역할을 만났다. 자상하고 매력적인 로맨스남으로 여심을 홀리면서 '핫 랍비'라는 닉네임으로 미국 내 인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로코의 핵심은 역시 배우들의 케미스트리인데, 영화 '스크림4'(2011)에 함께 나선 바 있는 크리스틴 벨과 애덤 브로디는 이번 드라마까지 하면 벌써 세 번째 인연이어서 호흡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케미스트리는 팬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이끌어내며 일찌감치 시즌2에 대한 요청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많은 미국 매체들이 제목을 패러디해 '모두가 다 원해(Everyone Wants This)'라면서 드라마의 인기를 전하고 있다.
조앤의 여동생 모건으로 등장한 저스틴 루프과 노아의 남동생 사샤 역의 티모시 사이먼스의 깨알 같은 감초 연기도 드라마를 더욱 맛깔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짜임새 있는 대본과 훌륭한 배우에 걸맞게 연출까지 손색 없다. 회당 30여분의 분량이라 부담도 없다. 총 10부작을 주말이면 뚝딱 몰아볼 수 있다.
이렇듯 강추할 만한 새로운 로코가 등장해 반가운데, 마지막까지 내내 아쉬운 점이라면 매력 어필을 전혀 하지 못하는 한글 제목이다. '아무도 이 만남을 원하지 않아'라는 직역이 어색했다면 '온 우주가 반대해'쯤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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