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 NG 사례 탐구, 하지 말아야 할 조명
조명이 그저 어두운 곳을 밝히는 장치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거주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높일 수도 있는 것이 조명이다. 조명설계전문가 차인호 교수를 통해 매월 조명설계의 세계와 실제를 만나본다.
나날이 부드러워지는 기온에 햇살이 싱그럽던 어느 봄날. 거실 통창 밖으로 넓게 펼쳐져 눈부신 한강의 파노라마 때문이었을까 첫 현장미팅의 실내공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교수님, 그러면 여기에는 설치할 수 없다는 말씀이죠? 큰일이네. 이미 계약하고 비용도 다 지불했는데.” 건축주는 반쯤 포기한 듯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누군가 며칠 전 이사를 나간 흔적인지 바닥에 구르고 있는 먼지를 바라보며 대안을 고민하던 필자가 해줄 수 있는 말이 그저 단순한 위로에 그치기에는 상황이 다소 심각했다.
의뢰인의 사연은 이러했다. 긴 해외 생활 끝에 귀국을 앞두고 새롭게 국내에서의 삶을 시작하기 위해 어린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친정집을 고친 의뢰인. 이제 정말 가족이 함께 살아갈 자신의 공간을 꾸미기 위해 고심을 거듭해 몇 달 전부터 설계 가능 여부를 이메일로 우리 연구소에 문의하고 있었다. 어떤 요소보다도 조명부터 고민하고 싶어 전체 인테리어를 위한 공간기획과 전문건축조명설계를 의뢰한다고 전했다. 문제는 내친김에 의뢰하기 전, 명품 조명을 판매하는 서울 방배동 인테리어 소품 숍에서 3천만원이 넘는 대형 펜던트 조명을 계약한 것이었다. 단품으로 8천만원에 달하는 10인용 대형식탁에 어울리는 좋은 조명을 놓고 싶었다는 것이 건축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를 우리 설계에 용인하기는 어려웠다.
문제의 대형 펜던트 조명은 건축주가 운영하는 골프장의 클럽하우스로 옮기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LDK(거실-식탁-주방, Living-Dining-Kitchen)의 주간과 야간 씬을 예상하면서 10인용 식탁에 어울리는 전문건축조명시스템을 새로 구축하기로 했다. 프로젝트 완료 후, 건축주는 넓은 거실에서 식탁 조명만 켜놓고 우두커니 창밖 야경을 보면서 시간 보내기를 좋아한다며 이따금 고맙다는 안부를 사진과 함께 전해 온다. 참으로 보람 있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 코로나 시기를 전후하여 사람들이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난 탓인지 주택 건축이나 인테리어를 다루는 TV 프로그램이 꽤 늘었다. 그러다 보니 유명 연예인들의 호화로운 집안이 공개되는 영상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마침 앞선 사례에서 언급한 그 브랜드의 식탁 펜던트 조명을 화면으로 만났다. 그리고 역시나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렇게 대형 펜던트 조명을 사용하려면 적어도 집 안의 LDK 공간에 대한 조명환경을 먼저 갖추고 그 고가의 조명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런 고려는 없어 보였다. 마치 실력 좋은 중견 주연배우만 캐스팅하고, 다른 조연들과 연기 호흡과 조율 과정 없이 체계적인 촬영장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영화를 촬영하여 개봉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어색한 공간의 주연이 되어버리는 고가의 해외 브랜드 조명은 대개 유럽에서 디자인한 제품들이다. 당연하지만 한국 주거공간에 특화된 사용 환경을 고려한 디자인의 조명이 아니다. 높은 천장고와 다양한 실내 마감재라는 특성을 가진 유럽 주택과 획일적이지 않은 빛의 균형을 고려한 조명 시스템 및 공간환경에 두었을 때 어울리도록 디자인된 조명작품들이다. 일반적인 다수의 건축주는 유럽의 공간문화를 체험하며 성장하지 않았다. 좋은 조명만 사서 달면 매장에서 보았던 멋진 카탈로그 속 조명이 우리 집에도 그대로 구현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건축조명 설계현장에서 많은 건축주를 만나다 보면, 고가의 조명을 잘못 구매하는 것을 포함해 기존 조명설계의 다양한 문제를 현실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주거공간에서 가장 많이 건축주와 함께 고민하며 해결해 나가고 있는 문제 두 가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스칼랍(Scallop)’이란 조개의 양쪽 입이 맞물리는 곳에서 볼 수 있는 물결무늬를 지칭한다. 조명설계에서는 잘못된 조명의 배광을 벽이나 복도에 사용하여 마치 박쥐의 날개처럼 보이는 그림자가 형성되는 것을 ‘스칼랍 현상’이라 말한다.
전문적인 건축조명설계자 사이에서는 건축가의 작품에 빛이나 그림자로 낙서하는 행위처럼 여겨져 금기시하는 조명의 NG 사례이다. 명백한 디자인 의도를 가지고 구현한 것이 아니라면 가급적 피하고 조심하며 설계하는 것이 마땅한 연출이다. 하지만 상업 공간이나 주거 공간뿐 아니라 공항과 같은 공공 시설물까지 우리 주변에서 아직도 큰 문제의식 없이 자주 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스칼랍 현상은 뉴스에서 보여주는 용산의 대통령실 기자회견장이나 국가 중요 시설물에서도 보인다.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설계해도 저런 문제는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조명쟁이의 생각이다. 한국의 국제적 입지를 생각해서라도 앞으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간에는 국격에 맞는 건축 조명이 적용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조명기구의 배광을 정확하게 계산, 분석하지 않고 대충 조명등을 설치하면 이런 박쥐 날개 그림자를 만나기 십상이다. 대형 벽면과 기둥이 많은 공간에서 이러한 불쾌한 느낌의 스칼랍 현상을 피하려면 설계자가 벽면이나 기둥을 비추기 위한 효율적이며 체계적인 배광을 계산한 최적의 조명기구를 선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에 그 공간의 전체적인 빛의 인상, 이미지가 건축의 성격이나 사용자 환경에 적정한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어두우니 밝히면 된다’는 수준에서는 풀 수 없는 문제 설정과 해법이다.

박공지붕 천장에 기존 다운라이트를 설치하는 것도 NG 사례로 꼽을 만하다. 전문조명기구가 아니기에 눈부심도 심한데 이것을 사선 배광구조로 고민 없이 설치하는 경우를 국내 기존 사례에서 많이 보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많이 유통되는 조명기구는 불쾌한 눈부심(글래어)이 많은 조명기구가 일반적이기에 설계자나 건축주가 조명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면 전체적으로 눈부시게 밝은 공간에 쉽게 노출되고 만다.
박공지붕 천장이 같은 집은 단 하나도 없다. 심지어 같은 각도의 박공지붕이라도 건축가의 설계에 따라 그리고 건축주의 요구나 마감재 성격 등 현장 여건에 따라 다르다. 마찬가지로 모든 공간조건에 맞는 획일화된 조명 또한 있을 리 없다. 아니, 있다면 그것이 더 문제이다. 그러니 치열하게 고민하며 현장별로 실험하면서 박공지붕 천장을 분석하며 대응하고 있다.
박공지붕 천장을 가진 실내에서 중심부의 최고 높이가 5m를 넘는 경우라면 더욱 신중하게 조명설계에 임해야 한다. 공간의 높이가 휴먼스케일을 벗어나 평균신장의 3배에 육박하게 되니 자연광 유입이 잘 되는 경우라도 공간 입면 상부에는 커다란 음영이 형성된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강해진다. 대형 건축에서 로비 공간과 같은 공용부의 상부에 주간 조명설계가 필요한 이유이다. 천장고가 높은 상태에서 공간의 자연광이 평면상 길게 유입되는 구조라면 인공광을 통한 충분한 배려가 요구된다. 필자는 일본에서 수학하는 기간, 석사과정부터 공간의 주간조명에 대한 중요성에 집중해 왔으며 이러한 연구와 설계프로젝트를 지금도 이어오고 있다.


조명은 이처럼 알면 알수록 설계 분석 요인이 복잡다단해지므로 어렵고 힘들다.
모르면 무책임하게 용감해질 수 있다. 그 조명을 설치하기 위한 조건을 갖추는 것,
이것은 전문건축조명으로 하는 것이 최적이다.”
조명은 이처럼 알면 알수록 설계 분석 요인이 복잡다단해지므로 어렵고 힘들다. 모르면 무책임하게 용감해질 수 있다. 그 조명을 설치하기 위한 조건을 갖추는 것, 이것은 전문건축조명으로 하는 것이 최적이다. 조명에서는 최고보다는 최적이 더욱 중요하다. 특히 건축주 입장에서 건축가에게 건축설계를 의뢰하고 시공도 전문 시공사에 맡겨 완성하는 것처럼 적어도 필자에게 상담하는 건축주는 조명도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공감하는 경우이다. 최근에는 이 같은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외출하기 전 화장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깨끗하게 얼굴을 씻고 피부를 진정시키는 세안이다. 물론 평소에 피부관리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겠다. 우리 집, 나의 공간에 어울릴지 생각하지 않고 명품이라고 비싼 조명을 설치하려는 것은 세수도 안 하고 색조 화장부터 올리는 것과 비슷하다. 자동차나 시계라면 원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사면 되지만 조명은 값비싼 조명만 사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조명은 공간에 두는 것이기에 제대로 하고자 한다면 환경에 대한 전문 분석과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운전면허가 있다고 아무나 F1 레이싱 머신을 전용 트랙에서 몰거나 프로 경주에 나갈 수 없는 것과 같다. 같은 곡의 노래라도 노래방에서 반주 기계의 소리에 흥에 겨워 막 부르는 취객의 노래와 공중파의 음악 생방송 무대에서 오래도록 전문적인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가수가 전문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섬세한 소리 변화를 느끼고 집중하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부르는 노래는 음원의 질적 차원이 전혀 다를 것이다.
조명은 지금까지 누구나 계획하고 설치해 왔다. 하지만 적어도 정말 소중한 가족과 함께 살아갈 주거 공간을 기획할 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해 볼 수 있을 만한 작은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고가의 조명은 사용하기 쉽지 않다. 비전문가 일반인이 체계적인 설계 과정 없이 공간에 적용하면 실패하게 되니 전문적인 고급 조명 장비라면 주변 공간을 충분히 그에 상응하게 조건을 맞출 수 있는 전문가와 상담하며 공간을 설계하고 설치하기를 적극 권장한다.
글과 사진_ 차인호 교수 :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

구성_ 신기영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5년 2월호 / Vol.312 www.uuj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