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강남에는 악마가 살아" 자기 몸에 불 지른 50대 경비원[뉴스속오늘]

이소은 기자 2024. 10. 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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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14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내에 분신한 경비원 이모씨의 분향소 모습. /사진=뉴스1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14년 10월 7일, 서울 대표 부촌으로 꼽히는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 단지에 근무하는 50대 경비원 이 모 씨(당시 53세)가 자기 몸에 불을 붙이고 분신자살을 기도한 것.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이 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받았지만 한 달 후 결국 사망했다. 이 씨에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입주민 차 안에서 몸에 시너 뿌린 뒤 불붙여


이 씨는 이날 오전 9시30분께 강남구 압구정동 S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세워진 그랜저 차 안에서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입주민들이 자신에게 맡긴 차량 열쇠 중 하나를 골라 그랜저 차량에 탑승, 자기 몸에 시너를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분신 직후 한 입주민이 차량에 불이 난 것을 보고 119에 신고했고, 동시에 다른 경비원들이 소화기를 들고 와 이 씨 몸에 붙은 불을 껐다. 이 씨는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씨는 사건 발생 2년 전부터 이 아파트에 근무하기 시작했다. 한 경비원은 "이 씨가 평소 A씨(70대 여성 입주민) 등 입주민들로부터 인격모독을 당하는 등 언어폭력에 시달려 심신이 미약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이 경비원에 따르면 해당 입주민은 경비원들이 화장실을 가면 왜 자리를 비우느냐고 따지고, 청소나 분리수거 상태가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인격모독을 했다. 실제 이 씨는 사건 당일에도 A씨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달 후 끝내 사망…"경비노동자 처우 개선" 목소리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분신 경비원의 죽음을 다룬 '경비원과 사모님' 편이 방송됐다. /사진=SBS 제공

이 씨의 분신자살 기도 사건은 당시 '경비노동자에 대한 입주민의 갑질 실태'로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같은 달 28일에는 민주노총 서울본부, 서울일반노조 등 12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분신 사건 해결과 노동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가 발족했다.

노동환경 건강연구소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 시내 아파트 경비원들의 근무 실태를 조사했고 경비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재발 방지 대책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런 노력에도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세 차례 수술받는 등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던 이 씨는 2014년 11월 7일 끝내 숨졌다. 분신을 기도한 지 꼭 한 달 만이다.

이 씨의 장례식장에 참석한 동료 경비원은 "폭언을 일삼던 A씨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이다. 이 씨가 항의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예, 예'하며 받아주다 보니 짓밟은 거다. 우리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실제 이 씨는 1차 수술 후 의식을 회복한 상태에서 가족에게 "사고 당일에도 A씨가 그 좁은 경비초소를 비집고 들어와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유족들은 근로복지공단 강남지청에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추후 근로복지공단은 이 씨의 사망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업무상 사망으로 인정했다. 공단은 "이 씨가 업무 중 입주민과의 심한 갈등과 스트레스로 인해 기존의 우울증이 악화하고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 떨어져 자해성 분신을 시도한 것"이라 판단했다.

이 씨가 사망한 지 3일 만인 2014년 11월 10일 이번 사건 가해자로 지목된 A씨가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사과했다. A씨는 고인의 영정 앞에서 "아저씨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며 통곡했다. 이에 이 씨의 부인은 "아빠가 편히 가시겠다. 앞으로 다른 사람들한테는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날인 11일에는 이 씨가 일했던 압구정동 S 아파트에서 노제가 진행됐다. 단지 내에는 민중가요 '민들레처럼'이 울려 퍼졌다. 이 씨의 친구는 추모글에서 "(이 씨가) 강남땅에는 악마가 산다고 말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전원 해고 통보에 경비원 폭행 사건까지 '갈등 격화'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입주민들의 언어폭력 등에 시달리다 분신, 사망한 아파트 경비원 고 이모 씨(53)의 민주노동자장이 열리고 있다. /사진=뉴스1

이후에도 해당 단지 내 경비노동자들의 어려움은 계속됐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로부터 경비원 78명이 모조리 해고 예고 통보장을 받은 것. 관리사무소는 용역업체와의 계약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새 업체와 계약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아파트와 용역업체 간의 계약이 15년 이상 이어져 왔던 터라, 이 씨의 분신 등으로 아파트 이미지가 실추되자 보복성 해고를 하는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그러나 계약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사건이 또 발생했다. 해당 단지에서 입주민이 경비원을 폭행해 코뼈가 내려앉는 사건이 발생한 것. 한 입주민은 이 아파트 정문 경비원인 50대 이 모 씨를 상가 근처로 불러 '왜 쳐다보느냐'고 따지고 이 씨가 '쳐다본 적 없다'고 답하자 마구잡이로 폭행했다.

연이은 사고로 아파트 이미지가 실추되자, 아파트 입주민들은 경비원들의 고용승계에 합의하기에 이른다. 경비원들이 "일부 입주민의 문제를 대다수 선량한 입주민의 문제로 언론에 비치게 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이에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원들의 정년을 당시 60세에서 1년 연장하고 고용을 승계해주기로 했다. 합의에 따라 경비원들이 당초 계획했던 파업도 없던 일이 됐다.

이소은 기자 luckyss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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