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있어, 잘 지내왔어"…순직 유족이 건네는 위로[인터뷰]
20년전 경찰 살해 후 도주…'이학만 사건' 유족
심 경위 사망으로 순직 공무원 예우·지원 강화
"'피해자다움' 편견·시선에 힘들었던 나날들"
[서울=뉴시스]임철휘 기자 = 황옥주(59)씨는 지난 2004년 8월1일 '이학만 살인 사건'으로 남편 심재호 경위(당시 경사·32)를 잃었다. TV를 켜보라는 친정 아버지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뉴스를 틀었더니 '피의자(이학만)가 휘두른 칼에 서울 서부경찰서 소속 심모 경사가 숨졌다'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서부서에 전화하니 "죄송합니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후 병원을 찾아가고 남편의 사망을 확인하고 장례를 치렀던 기억은 희미하다. 숭늉만 간신히 넘기며 오열과 실신을 반복했던 게 당시 기억의 대부분이다.
반면 사건 전날 밤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심 경위가 "내일 검거하러 가는 피의자(이학만)가 흉기를 들고 다닌다"고 말했다고 한다. 남편은 그날 밤 거실에 따로 이불을 깔고 황씨를 옆에 두고서야 간신히 잠들었다고 한다. 평소와 달리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선 그는 그날 밤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세 살배기 아들과 돌이 채 안 된 딸을 둔 가정주부였던 황씨에게서 남편을 앗아간 건 '이학만 살인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04년 8월1일 서부서 소속 강력반 형사로 근무하던 심재호 경위와 이재현 경장이 폭력 사건 피의자였던 이학만을 검거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 소재 커피숍에 함께 출동했다가 이학만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순직한 사건이다.
이학만은 범행 후 도주해 일주일 후인 8월8일 경찰에 붙잡혔다. 1심 재판부는 이학만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다. 이후 항소심 재판부는 이학만에게 살해 계획이 없었으며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있어 교화 가능성이 있다는 등 이유로 이학만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두 형사의 순직은 위험한 직무 수행 중 사망한 공무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위험직무 관련 순직 공무원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 등 예우·지원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이들의 희생을 기려 두 형사에게 각각 1계급 특진과 함께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최근에는 '2024년 경찰 영웅'으로 뽑혀 제79회 경찰의날이었던 지난 21일 경찰 영웅패가 수여되기도 했다.
남겨진 황씨는 극심한 우울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운전대를 잡으면 아이들과 남편을 따라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 운전하기가 두려웠다.
"제가 소심하고 마음이 여려요. 신랑이 예전에 저한테 그랬어요. '다른 건 걱정이 안 되는데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갈래'라고. 자기 성격을 반 떼어서 주고 싶다고…"
황씨가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황씨는 '피해자다워야 한다'는 주변의 시선에 20여년을 주눅들어 살아야 했던 것도 범죄 피해자 유가족이 겪어야 하는 아픔이라고 토로했다.
"우리 같은 사람은 화장을 조금만 진하게 해도, 손톱 관리만 받아도 다 흉이 되고 대화 소재가 돼요.그러니까 매일 주눅 들어 살았어요. 초라해도 신경 쓰이고, 깔끔하게 다녀도 신경 쓰이는 거죠."
아픔을 털어놓을 곳을 찾아 다른 순직·공상 경찰 가족들을 만났다. 다른 이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도 이들 앞에선 할 수 있었다.
"처음엔 내가 위로받고 싶어서 다른 순직·공직자 가족들한테 연락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저희 아픔을 알 수 없잖아요."
순직·공상 가족들이 겪고 있을 어려움을 알기에 경찰이 순직했다거나 크게 다쳤다는 소식이 들리면 연락처를 수소문해 구하고 그들에게 위로와 안부를 전하려 했다. 길게는 20년 동안 이어온 관계도 있다.
"엊그제에는 부산에 있었는데 남편을 잃은 부인이 김해에 있다면서 '언니, 제가 좀 만나러 가도 될까요'라고 만나자고 했어요. '꼭 한번 봤으면 좋겠다'고요."
"가족한테도, 가장 친한 친구한테도 못하는 얘기가 있어요. 그래도 우리끼리는 아니까…서로 '훌륭해, 잘하고 있어, 잘 지내왔어'라고 하고 왔어요. 여전히 마음의 상처가 커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많아요. 밤중에도 전화가 와서 받으면 '언니가 힘이 많이 돼'라는 말을 들어요. 그러면 저도 같이 위안을 받아요."
내년이면 황씨는 정년을 맞아 퇴직한다. 이후 시간은 오는 11월이면 군 복무를 마치는 경찰을 꿈꾸는 아들과, 엄마를 살뜰히 챙기는 대학생 딸과 가능한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동시에 그간 힘이 돼 준 이들에게 받은 도움을 돌려주고 싶다.
"순직·공상 가족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어요. 저를 많은 분들이 열심히 도와주셨으니까요."
☞공감언론 뉴시스 f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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