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신 한 줄이 불러온 ‘군 파견설’ 논란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대상 범죄 사건이 외교적 긴장으로 번지고 있다. 태국 유력 일간지 방콕포스트가 “한국이 캄보디아에 군대를 파견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고 보도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주태국 한국대사관은 즉각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한국 정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군사적 행동이 아닌 외교적 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보도는 현지 시간 15일 방콕포스트가 게재한 기사에서 비롯됐다. 해당 매체는 “한국이 국경을 넘나드는 온라인 사기 조직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며 “스캠 조직 소탕을 위해 군 파견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공식 입장과 전혀 무관한 내용”이라며 즉각적인 정정 요청에 나섰고, 이후 방콕포스트는 관련 문구를 삭제했다.

대사관 “전혀 사실 아니다”… 즉각 대응 나서
주태국 한국대사관은 같은 날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성명을 발표했다. 대사관은 “한국 정부는 해외 체류 자국민 보호를 위해 모든 외교적 수단을 활용하고 있으나, 군사적 개입이나 파견은 검토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매체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며, 이미 정정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대사관의 신속한 대응은 외신 보도로 인한 오해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실제로 캄보디아 현지에서는 최근 한국인을 겨냥한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었다. 외신의 자극적인 표현이 자칫 한국 정부의 강경 대응으로 오인될 경우, 외교 관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정치권 ‘강경 발언’이 불씨로 작용
이번 사태가 불거지기 전부터 일부 정치권 인사들의 발언이 긴장을 높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지난 13일 “캄보디아 경찰의 협조만 기다릴 게 아니라, 선전포고에 준하는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캄보디아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면 군사적 조치도 검토해야 한다”며 “국제공조를 통한 합동 작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강경 발언이 외신 보도의 단초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정치적 수사로 나온 발언이라도 외신이 맥락 없이 인용할 경우, 실제 정책 변화로 오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한-캄보디아 관계가 민감한 시기에 외신 보도가 확대되면서 군사 개입설로 비화된 셈이다.

외교가는 “현실성 낮다” 한목소리
실제로 국제법상 타국에 군을 파견하는 것은 ‘무력 개입’으로 간주된다. 이는 유엔 헌장상 명백한 침략 행위로 분류될 수 있으며, 상대국 동의 없이 이뤄질 경우 국제 제재 대상이 된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논란이 실질적 가능성이 전무한 ‘보도 해프닝’에 가깝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군사력 대신 외교 채널을 통한 협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외교부는 캄보디아 정부와의 협조 체계를 확대하고, 현지 경찰과 공조 수사를 진행 중이다. 또한 온라인 사기 조직에 연루된 한국인 피해자 구출 및 송환 절차를 위해 외교부, 경찰청, 법무부가 공동 대응 체계를 가동 중이다.

캄보디아 당국, 대대적 단속 나섰지만 불안 여전
캄보디아 정부는 최근 온라인 사기 및 인신매매 조직에 대한 대대적 단속을 실시했다. 현지 경찰은 지난 3개월 동안 총 3,400여 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 중 2,800여 명이 외국인으로, 한국을 포함한 20여 개국 국적자가 포함돼 있다. 당국은 이 가운데 476명의 여성 피해자를 구조했으며, 관련 조직의 자금 흐름 차단에도 착수했다.
그러나 단속 이후에도 범죄 재발 가능성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북부 및 태국 접경 지역에서는 여전히 온라인 불법 도박과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이 활발히 활동 중이다. 현지 언론은 “캄보디아의 경제난과 부패한 행정 구조가 범죄 재생산의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 자국민 보호 외교 강화
한국 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동남아 지역 내 자국민 보호를 위한 외교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은 최근 캄보디아 프놈펜을 방문해 훈 마네트 총리와 면담을 가졌다. 김 차관은 현지에서 구금 중인 한국인 약 60명의 송환 문제와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했다.
훈 마네트 총리는 “최근 발생한 한국인 관련 사건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안타까움을 느낀다”며 “한국 정부와 협력해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외교부는 앞으로 캄보디아뿐 아니라 미얀마, 라오스, 태국 등 동남아 국가들과도 협력 체계를 확대할 방침이다.
한 외교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오보가 아니라, 정치적 발언이 외신을 통해 외교 문제로 비화된 사례”라며 “정부는 사실 확인과 함께 외교적 신중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