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슐랭 스타들]⑨온지음,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품고 미래로 흐르는 한 상
전통의 뿌리와 깊이를 오늘의 식탁에 올리다
전통(傳統)이란 말을 들으면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전통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그 단어를 이루고 있는 한자 풀이를 보면 그 의미가 보다 명확해진다. 전할 전에 거느릴 통, 과거로부터 이어진 것들이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현재도 언젠간 과거로 기억되듯이, 전통이란 단어는 과거, 현재, 미래가 유기적으로 흐르는 하나의 갈래와도 같다.
이런 계승 정신을 잘 갖고 있는 레스토랑을 하나 꼽자면 바로 미슐랭 1스타의 온지음이다. 온지음은 과거에 대한 경외를 바탕으로 현재에 그 아름다운 문화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자처한다. 위치도 과거와 현대가 조화롭게 숨 쉬는 곳, 바로 종로구 효자동에 있다. 온지음 레스토랑에 자리 잡고 창문 밖을 바라보면 조선 500년의 숨결을 간직한 덕수궁과 근대 한국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청와대가 보인다. 과거와 현재가 맞닿은 전통의 흐름을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온지음이란 ‘바르고 온전하게 짓는다’는 의미를 갖는다.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 두 의미가 있다. 먼저 과거에 대한 존경이다. 또 지금 이 순간, 그 과거를 접하는 분들에게 대한 존중도 뜻한다. 올바른 것을 내놓지 않으면 과거의 문화가 왜곡될 위험이 있고, 그릇된 것을 대접하면 지금 이 순간 이를 접하는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지음을 이끌고 있는 조은희, 박성배 셰프는 과거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조리 도구만큼이나 그들의 손때가 묻은 것은 고(古) 조리서, 서적 등이다.
치밀한 고민으로 탄생한 온지음 레스토랑의 메뉴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오롯이 숨 쉬고 있다. 바로 온고지신의 정신. 과거의 것을 통해 지금에 맞게 조리하고, 또 현재가 미래의 교본이 되는 것, 바로 온지음의 지향하는 바다. 지금도 예부터 귀하게 여겨진 재료들이 오래된 조리법과 만나 새롭게 빛을 보고 있다.
특히 옥잠화 꽃에 표고버섯, 소고기 등을 넣고 만든 ‘옥잠화 꽃 요리’를 주목할 만하다. 먼저 아른거리는 옥잠화 향 사이로 달고 짭짤하게 양념된 고기의 맛이 함께 난다. 표고버섯은 쫄깃하게 씹히며 한때 꽃이 몸담았던 대지의 흙 맛도 첨가해 준다. 한입 크게 넣어 씹다 보면 맑은 청주 생각이 간절하다. 실제로도 우리 조상들은 옥잠화 요리를 안주로도 즐겼다고 한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빚어낸 게구이도 별미다. 경단과 비슷한 식감을 가진 이 요리는 마치 게 한 마리가 통째로 담긴 듯한 맛을 낸다. 짙은 점성이 만든 꾸덕함 속에 게 내장의 고소한 맛이 퍼져나간다. 고려 시대 문인 이규보가 즐겼던 게구이를 먹고 있자면 아득한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마저 든다.
이 외에도 현대식으로 풀이한 메뉴들도 많다. 스페인 뽈뽀 식으로 조리한 문어 절육, 뇨끼같이 풀어낸 감자병. 떡 위에 버터를 섞고 머스터드를 올린 퓨전 증편 등. 온지음에선 시간의 흐름뿐 아니라 동서양의 조화도 느낄 수 있다. 다만 전통의 맛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다.
이번 가을 역시 한국 냄새가 물씬 나는 진귀한 재료들이 식탁 위에 올라가고 있다. 송이로 만든 만두, 개성식 물경단 등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음식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해삼, 전복과 같은 단골 재료들도 빼놓지 않았다. 온지음을 책임지는 조은희, 박성배 셰프는 어제를 내일로 이어가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오늘에 집중하고 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온지음에 대해 설명해달라.
조은희 (이하 조) : “한국의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공간이 아닌, 우리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봐줬으면 좋겠다.”
박성배 (이하 박): “온지음은 ‘온전히 짓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국의 옛 문화를 연구하고 시대에 맞게 풀어나가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온지음이 추구하는 음식 철학은 무엇인가.
박: “담백함을 추구한다. 옛말에 첫맛에 맛있는 맛은 싫증 나기 쉽다는 말이 있다. 자극적이기에 계속 넣기엔 부담스럽다는 의미다. 온지음은 담백함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싶다.”
조: “고유한 역사를 통해 발전한 한식을 이곳을 통해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싶다. 이를 위해 궁중 조리서 등을 많이 읽어보고 공부한다. 안타깝게 조리법이 소실된 경우에는 상상력을 가미하기도 한다.”
―한식의 매력은 무엇인가.
조: “요즘 드는 생각인데, 한식은 건강함이 매력인 것 같다. 한국 식문화를 보면 채소를 다양하게 조리하는 방법이 많다. 또 한국의 대표 음식 김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랜 시간 발효해서 먹는 문화도 발달돼 있다. 느끼하지 않아 편히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박: “한식은 완벽하지 않기에 더 아름다운 식문화라고 생각한다. 우리 어머님들의 조리법을 보면 눈 대중으로 재료를 넣는 속히 말하는 ‘손맛’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렇다 해서 간이 꼭 엄청 세지도 않다. 순박하지만 그 안에서 편안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한식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조: “사실 어떤 음식이든 식재료가 중요하다.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는 좋은 음식의 필수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절마다 가장 맛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재료에 맞는 간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가령 가을은 버섯이 맛이 좋다. 풍부한 버섯의 맛을 내기 위해 여러 메뉴를 준비했다.”
―한식에도 이를 접목할 수 있는가.
조: “당연하다. 한식은 식재료의 품질에 따라 음식의 맛이 결정된다. 또한 그 재료의 맛을 극대화하기 위한 간도 중요하다. 간을 적절하게 맞추는 것이 한식의 핵심 중 하나다.”
박: “동의한다. 간은 한식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더 넓게 말하자면 감칠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끔 역설적이지만 몇몇 한식 메뉴 중에서는 간을 하지 않는 게 간이 맞을 때가 있다. 이러한 미묘함을 잡아내는 것이 한식의 핵심 중 하나다.”
―음식을 만들 때의 철학도 있는가.
박: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교감이 중요하다. 손님은 만드는 사람의 정성을 느낄 수 있고, 요리사는 손님의 감사함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교감이 중요하다. 가령 나이 많은 손님에겐 재료를 좀 더 잘게 잘라주는 세심한 배려, 이러한 것들이 식문화를 보다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다.”
―온지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조: “일부 재료를 우리 힘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고추장, 간장, 된장 등 만들고 있는 재료는 10가지 넘어간다. 또한 지역 명인, 장인들과도 협업해 최고의 재료를 공수해 오고 있다.”
박: “잊혀가는 옛 음식도 우리는 새롭게 살리고 있다. 가령 은행을 이용해 만든 죽은 옛 서적엔 적혀 있지만 요즘 사람들에겐 친숙하진 않다. 이런 연구와 고민을 통해 우리 식문화를 보다 폭넓게 다루고 있다. 또한 온지음에선 김치를 이용한 페어링을 맛볼 수도 있다. 각 주 요리에 맞는 김치를 추천하는 식이다.”
―한식을 새로 접하는 외국인에게 추천해 줄 만한 음식이 있다면?
박: “백화반이라는 음식을 추천하고 싶다. 한국의 대표 요리 중 비빔밥의 한 갈래다. 백은 흰색을 의미한다. 보통 비빔밥이면 빨간 고추장이 가운데 담긴 요리를 떠오느라 백화반은 다르다. 한국에는 가을부터 흰 뿌리채소가 나오는데, 이를 만들어서 비빔밥을 만든 것을 백화반이라 한다. 또한 고기 음식을 싫어하긴 힘들기에, 전통 음식 중 하나인 너비아니도 추천한다.”
조: “추천하고 싶은 음식이 너무 많지만 하나만 고르라면 나물 요리를 추천하고 싶다. 특히 묵은 나물은 우리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문화다. 나물 요리의 재밌는 점은 각기 다른 채소로 나물을 만들 때 각각의 다른 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다 함께 먹을 때에도 조화로울 수 있도록 간을 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한국스럽다고 생각한다. 온지음에 온다면 대표적인 한식 외에도 한식을 새롭게 해석한 그런 음식들도 먹을 수 있다.”
☞조은희, 박성배 온지음 셰프는
조은희 ▲온지음 現 수석 셰프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 ▲배화여자대 전통조리과 前 겸임 교수 ▲궁중음식연구원 前 교육팀장
박성배 ▲온지음 現 수석 셰프 ▲문화당 前 헤드 셰프 ▲스시 오제키(Sushi Ozekii) 前 헤드 셰프 ▲신라호텔 서라벌 前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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