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기 vs 물대포…비명 속 끌려나온 서울대 학생들[뉴스속오늘]

채태병 기자 2024. 10.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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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서울대 학생들이 2016년 10월부터 대학본부를 점거한 뒤 시흥캠퍼스 설립 추진 중단을 주장하자, 이듬해 3월 대학 측이 직원 400여명을 동원해 학생들을 강제 해산하는 도중 건물 안에서 소화기가 분산돼 혼란스러운 상황이 만들어진 모습. /사진=뉴시스, 서울대 영상 캡처

8년 전인 2016년 10월 10일 밤 10시쯤 국내 최고 상아탑인 서울대학교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재학생 1000여명이 한밤중 대학본부에 진입해 4층 총장실을 점거한 것.

당시 서울대 학생들은 오후 6시부터 관악캠퍼스 중앙도서관 앞 아크로 광장에서 학생총회를 열고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목표로 대학본부 점거를 결정했다. 학생총회 참석자 1900여명 가운데 1097명이 '대학본부 점거 투쟁'에 찬성했다.

점거 사태 약 2개월 전 서울대는 경기 시흥시, 한라건설(배곧신도시 지역특성화 사업자)과 시흥캠퍼스 조성을 위한 실시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두고 학생들은 "대학의 기업화만 가속할 뿐 아무런 교육적 비전이 없다"며 "학생 구성원 의견을 배제한 비민주적 사업 추진"이라고 반발했다.

대학본부 점거라는 강수를 둔 학생들은 100~150명 규모의 인원을 남겨두고 밤샘 농성을 이어갔다. 이들은 시흥캠퍼스 추진 철회가 이뤄질 때까지 무기한 농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설득 실패하자 물리력 동원한 대학…비명 얼룩진 캠퍼스
2016년 10월 서울대 학생들이 시흥캠퍼스 설립 중단을 요구하며 대학본부를 점거한 뒤 밤샘 농성을 준비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서울대 학생들의 점거 농성은 약 5개월간 이어졌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동안 대학 측과 교수진은 학생들 설득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

2017년 2월 7일에는 점거 농성 사태 해결을 위해 학생들과 서울대교수협의회가 한자리에 모이기도 했다. 이날 자리는 학생들의 요청으로 마련됐다. 교수 700여명이 참여한 '대학본부 점거 해제를 위한 호소문' 발표 전 대화해 보자는 취지였다.

간담회는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2시간가량 진행됐지만, 학생과 교수 양측은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헤어졌다. 결국 학생들은 대학본부 점거 농성을 지속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스승들마저 학생들을 설득하지 못하자 대학 측은 물리력을 동원해 학생들을 강제 해산시키는 극단적 방법을 계획했다. 2017년 3월 11일 대학 측은 오전 6시부터 직원 400여명을 소집해 학생들이 점거 중인 대학본부 강제 진입에 나섰다.

서울대 학생들이 시흥캠퍼스 설립 중단을 요구하며 대학본부를 점거해 농성하던 중 학교 직원들에게 물대포를 맞는 모습. /사진=뉴시스


학교 측은 사다리차를 3대나 동원해 대학본부 건물 옥상 등을 통해 강제 진입에 나섰고, 이를 막으려는 학생들과 충돌하면서 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다.

충돌 과정에서 학생들은 소화기를 분사하며 저항했고, 학교 직원들은 이에 대응해 소화전으로 물대포를 쐈다. 인권 탄압 논란이 일자 서울대 측은 "학생들이 먼저 소화기를 난사해 (공기 중) 분말을 진정시키고자 방어적으로 (물대포를)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학 직원들은 점거 농성을 벌이던 학생 30여명의 사지를 붙잡아 건물 밖으로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학생 2명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학생 10여명은 총장실이 있는 건물 4층에 남아 점거를 계속하려다 안전 문제 등으로 자진 퇴거했다.

서울대가 강제로 학생들을 대학본부에서 퇴거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민사회단체와 학생단체 등이 잇따라 규탄 성명을 내놨다. 고려대 총학생회와 한양대 총학생회 등 90여개 단체는 "학생들의 요구에 폭력으로 응답했다"며 서울대를 비판했다.

두 달 뒤 재점거 나선 학생들…75일간 '2차 농성'
2017년 5월 서울대 학생들이 시흥캠퍼스 추진 중단을 요구하며 대학본부 재점거에 나서는 모습. /사진=뉴스1

대학본부에서 강제 해산된 학생들은 이후 교내 시위 등을 추진하며 학교 측과 갈등을 이어갔다. 그러다 2017년 5월 1일 오후 8시쯤 학생 300여명이 대학본부 재점거에 나섰다.

현관을 통해 건물에 진입하려던 학생들은 1층 출입문이 폐쇄되자, 사다리를 활용해 2층 창문을 깨고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선발대가 건물 안에서 1층 문을 개방해 다른 학생들을 내부로 불러들였다.

학교 측의 신고로 현장에는 경찰까지 출동했다. 경찰은 "재물손괴는 형사처벌 대상의 범법 행위", "다칠 우려가 있으니 자제해 달라" 등 경고 방송을 전했으나 학생들을 체포하진 않았다.

두 번째 점거 사태는 75일 만인 2017년 7월 14일에 마무리됐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이날 낮 12시 대학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점거 해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총학생회는 학교 측과 갈등 해결 협의회를 구성했다며 "협의회는 시흥캠퍼스 추진을 위한 기구가 아니고, 학생들의 문제 제기를 검토하고 뼈저린 평가를 남기기 위한 기구"라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대학과 학생들의 갈등이 이어졌으나 시흥캠퍼스 설립은 계획대로 추진됐다. 2017년 12월 기공식 개최 후 첫 삽을 뜬 서울대 시흥캠퍼스는 2020년 3월 1단계 준공 후 업무를 개시했다. 시흥캠퍼스에는 △교직원 및 대학원생 숙소 △자율주행 테스트 트랙 △서울대 시험수조(한화오션) 등이 조성돼 있다.

2017년 12월 경기 시흥시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예정 부지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시흥 스마트캠퍼스 선포식 및 자율주행자동차 기반 미래도시 모빌리티 조성 협약식'에서 참석자들이 시삽하는 모습. /사진=뉴스1


채태병 기자 ct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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