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를 밀어내고, 괴테의 마음으로
괴테가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한 건 1786년 11월1일이다. 그날, ‘티롤 산맥을 도망치다시피 넘었다’고 일기에 적었다.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의 고위 관료를 지냈지만 저지대가 그립다. 높이 솟은 것들은 비바람에 깎이고, 낮은 곳에서는 이것들이 퇴적하여 화석이 된다. 1782년에는 영주 카를 아우구스트에게 귀족 신분을 받는다. 잉크병들이 자기들끼리 머리를 박는다고 달그락댄다. 영원한 것이 매일 순식간인 심장을 찌른다. 젊음이 바스러진다. 서른일곱의 괴테가 영주의 총애와 탄탄한 관직을 버린 건 기적이다. 로마를 열망한 건 회복이다. ‘파우스트’가 완성된 건 행운이다. 그리하여 로마의 자갈길이 우리의 머리맡으로 와 영혼이 살찌는 소리를 연주할 수 있게 됐다.
로마의 자갈길이 연주하는 소리
핑계는 자기 위로와 후회를 합친 단어다. 위로와 후회는 실패를 막을 수 있으나 성취를 보장하지 못한다. 둘 다, 시작도 못한 상황에서 나온 단어다. 핑계는 잠 속에서부터 옆구리를 찌른다. 덥다. 오늘 쉬면 내일 더 잘 달릴 수 있을 거야. 핑계는 베개 밑에 숨어 있다가 새벽녘 고개를 내민다. 비가 온다. 좀더 쉬어. 오후에는 그칠 거야. 핑계가 자명종 소리를 붙잡아 반으로 자른다. 소리는 잘못한 것이 없다. 반쪽이 그만 입을 다문다. 핑계는 무성생식이라 이유 없이 이유를 만든다. 그냥 놔두면 2의 거듭제곱으로 번식해 삶을 가둬버릴 가능성이 크다. 물론 핑계 몇 개를 매달고 사는 일은 나쁘지는 않다. 가령, 더러운 일을 피하고 싶을 때 한두 개 건네면 된다. 이럴 때 핑계는 기지라 불리기도 한다. 문제는, 자기 혼자 던지고 받는 핑계다. 나 아니면 누가 나라를 다스릴까, 낯선 것이 두려운, 가진 자들의 핑계다.
핑계가 가장 싫어하는 건 행동이다. 눈을 뜨는 것, 이를 닦는 것, 운동화 끈을 매는 것, 문 밖으로 나서는 것, 잠시의 이별을 전하는 것, 여행을 가는 것. 그저 작은 행동이었는데 변화가 있다. 변화를 느낀 것만으로도 극적이다. 핑계를 덜어낸 효과를 쉽게 알아채는 방법은 달리기다. 핑계가 땀과 상극인 줄 알지만 의외로 땀을 미치도록 좋아한다. 땀이 기화할 때 땀을 쫓아 공중에 흩어지는 핑계를 보는 일은 꽤나 상쾌하다. 핑계와 끝내 헤어질 수 없더라도 열 중 아홉은 서열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 해보지도 않은 채 좌절해서도 안 되고, 시작도 없는 포기란 어불성설이다. 굳이 ‘파우스트’의 결과를 말하지 않아도 좋다. 무엇인지도 모를 역사적 성취를 미리 아쉬워할 이유도 없다. 자신에게 건네는 말에 핑계가 끼어들지 않는다면 차가운 새벽 공기 속을 달리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제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었음에 놀라게 된다.
시간이 첩첩이 쌓인 ‘세계의 수도’
괴테는 ‘오로지 포폴로 성문 아래서야 비로소 로마에 왔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남겼다. 2021년 10월 로마에 가면서, 로마로 도착하는 괴테의 심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피렌체에서 겨우 세 시간 머물고 발길을 재촉했던 괴테, ‘오래된 것들이 그토록 확고하고 생생하게, 그렇게 한데 모여 있으니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던 그 로마, 피곤하다는 핑계 대지 말고 일찍 밀비오 다리까지 달린 다음 괴테의 속도에 맞춰 서둘러 포폴로 성문을 지나보기로 했다.
밀비오 다리는 로마의 북쪽, 테베레강을 건너는 다리다. 집정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가 기원전 206년 건설했다. 메타우루스 전투에서 카르타고 군대를 격파한 기념이다. 역사적으로는 밀비우스 다리 전투로 유명하다. 막센티우스를 이긴 이 전투로 312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제국을 통치하게 된다. 기독교 공인과 콘스탄티노플 건설을 생각해보면 성지로 삼아도 될 듯하다. 괴테도 이 다리를 건넜을 터다. 화가를 꿈꾸는 파리의 소년과 바티칸을 향한 마드리드의 신실한 노인도 다리 위에서 노을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르네상스의 따뜻하지만 거센 바람 또한 이 다리를 반대로 건너 유럽 대륙을 휘몰아쳤음에 분명하다.
보르게세 공원을 지나 5㎞를 달려 밀비오 다리에 도착한다. 아침 해가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인다. 용암 같아 가슴이 놀란다. 나무들 사이에서 빛이 바스락 소리를 낸다. 거대한 타임머신처럼 해가 역사를 오늘로 불러온다. 마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부터 창과 방패가 맞부딪치는 소리, 자동차 달리는 소리 사이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은 기도 소리까지 들린다. 공간은 첩첩이 쌓인 시간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이 기억하고, 구술하고, 기록하는 한 현재란 저 홀로 고고하게 존재할 수 없다. 테베레강이 잠에서 깨어나자 붉은 옷을 벗는다. 푸른빛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동안 발길을 돌린다. 이제 어제와 내일이 오늘 포폴로 성문을 향해 간다.
포폴로 광장에 들어서면 ‘마침내 세계의 수도에 도착했다’는 감격, 젊은 날의 모든 꿈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득 찬다. 괴테는 ‘로마에 뒤이어 어떻게 다시 로마가 나타나는지, 그것도 옛 로마에 뒤이어 새로운 로마가 나타나는 것만이 아니라, 옛날 로마에 뒤이어 새로운 로마의 여러 시대가 어떻게 포개져서 나타나는지’ 궁금하다. ‘온전히 감각적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 도덕적으로 치유되는 기분도 느낀다. 젊은 베르테르처럼 유럽은 새롭기 위해 파괴하는, 노도와 같은 시절을 관통하는 중이다. 괴테는 로마의 건축과 그림과 음악을 일궈낸 부류들 사이에서 파괴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건설하기로 마음먹었을 것, 펜을 본격적으로 드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은 물론 인류에게도 고결한 도덕성을 부여하게 된다.
포폴로 광장에는 아우구스투스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플라미니오 오벨리스크가 우뚝하다. 지중해를 둘러싼 인간들의 고투가 고스란하다. 남쪽으로는 세 개의 길이 쭉 뻗어 있다. 어떤 길을 가려는지 골라보라는 듯, 인간에게는 언제나 자신의 길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말해준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로마가 내게 새로운 길을 갈 수 있게 용기를 불어넣어주길 간절히 바랐다. 온전히 감각적인 친구들이 내게는 없다. 그렇지만 내 삶도 도덕적으로 치유되길 기원했다.
임기 말 대통령의 뒷모습
사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마지막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위해 로마로 오기까지 좀 지쳐 있었다. 청와대는 새로운 기운으로 늘 꿈틀대는 곳이지만, 대통령 임기 초부터 봐온 입장에서는 처음 같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앓이를 하게 된다. 새로온 분들은 새로운 정책으로, 대통령의 지지율을 걱정하는 분들은 그분들 나름대로 또 새로운 정책으로 분위기를 바꾸려 한다. 그러다보면 대통령의 통치철학이 흔들린다. 선거를 위해, 당을 위해, 이런 설득이 국민을 위해, 라는 초심을 순간적으로 망각하게 한다. 이때쯤 대통령 역시 지치고 외롭다. 회의를 마치고 집무실로 향하는 대통령의 뒷모습을 한동안 쳐다보게 된 것도 이쯤이지 싶다. 임기 초기에 했던 말을 다시 끄집어내고, 그 말 가운데 어떤 것이 잘되었고 어떤 것이 부족했는지를 써봤지만 새로운 것에 밀린다. 옛것과 새것이 따로 논다. 대통령 성정하고도 맞지 않는다. 청와대는 사람이 자주 바뀌는 곳이다. 이어질 것은 이어지고, 새로운 것은 잘 녹아내도록 해야 한다. 차기 정부에 임기 앞과 뒤, 수미쌍관을 담당하는 ‘서사비서관’이 필요한 게 아닌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문학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우려했다. “한쪽으로 찍히면 책도 반쪽이 돼요”라던 한 친구의 절망이 떠올랐다. 괜찮은 정부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야 누군들 갖지 않을까마는 내 편, 네 편이라는 영원한 낙인이라니, 그러기에는 인생이 너무 비루하다. 그나마 달리기가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서도 살 수 있을 것이라 알려준다. 어차피 내 몸으로 가는 것이니 누구 핑계 댈 것도 없다. 준비된 만큼 도달하는 것이니 어떤 핑계도 허락되지 않는다. 함께 달릴 수 있으나 겨룰 필요가 없느니 남 탓 할 이유도 없다. 새벽에 집 밖으로 나서 달리기가 늘 쉽지 않았지만 해왔다. 다른 일이라고 아무튼 시작하면 안 될 것도 없다. 설사 정치라도 하던 대로, 한편에서, 고루한 집단의 이념으로 할 필요는 없다. 불편하지만 로마에 남겨진 옛 자갈길이 또 다른 시도의 근거였단 생각이 든다. 괴테가 목격한 로마의 번번한 재탄생, 그건 괴테 자신의 재탄생이기도 했다.
운동화를 뚫고 들어온 기억
달리기는 기억의 시공간이다. 운동화를 뚫고 들어온 기억들은 다시 나가지 않는다. 로마의 자갈길은 발바닥을 점점이 자극해 하루하루를 기록한다. 황제와 이름 없는 병사. 궁전과 폐허의 하루하루다. 몸이 기억하는 길들은 머리로는 잊히지만 다시 그 길에 섰을 때 신기하게 재생한다. 달라진 풍경 사이에 마음의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어둠에 잠긴 콜로세움, 테베레강 너머로 바라본 바티칸 시티가 이상하게 마음을 진정시킨다. 위대한 것이 이토록 지척이다. 몸도 마음도 달려야 한다. 누구든 위대함에 다가갈 수 있다. 이 기억의 시공간에 발걸음 하나, 흔적 하나 더해놓은 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글·사진 신동호 시인·전 대통령 연설비서관
*연재 소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58번의 순방으로 40개 나라를 방문했다. 신동호 시인은 연설비서관으로 참모 가운데 유일하게 모든 순방 일정을 보좌했고, 새벽 시간을 활용해 낯선 나라를 달렸다. 그때 보고 느낀 감정은 문 전 대통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떠나며’ 시리즈에 고스란히 담기기도 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시인의 달리기에 대한 생각과 함께 묵혀놓았던 순방지의 새벽 이야기들을 4주마다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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