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저는 연고 하나 없는 강릉으로 훌쩍 넘어와 7촌 지역살이를 시작한 지 이제 갓 1년이 넘은 프리랜서 마케터입니다. 이전에는 서울에 위치한 가구 회사에서 브랜드 마케터로 5년여간 근무하면서 사무실부터 거실, 침실, 아이방, 심지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라이프스타일까지 제안해왔는데요. 정작 저 자신은 서른이 넘도록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전형적인 캥거루족이더라구요.
저를 닮은 공간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 지역살이, 주택살이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도면

저희 집은 방 4개, 주방 겸 거실, 복도 공간, 보일러실 겸 화장실, 그리고 창고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인테리어 업체와 논의 후 측면에 나있던 현관을 정면으로 끌어오기 위해 앞마당과 가장 가까운 방 일부를 할애해 현관 및 현관 전실을 새로 냈고, 대신 미닫이문으로 연결되어 있던 옆방과 합쳐 하나의 작은 게스트룸을 만들었습니다.
기존 기름통 보관실은 게스트룸 전용 화장실로 용도를 변경해 집에 손님들이 놀러 왔을 때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끔 했구요. 뒷마당에서 가장 가까운 좁은 방 또한 드레스룸과 화장실로 용도를 변경, 마스터 베드룸과 연결된 하나의 큰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구옥 수리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도, 변수가 많을 수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상상 이상의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지금은 그토록 원했던 마당 있는 집에서의 삶을 네 달째 이어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집을 구하기까지

평생을 도시에서 그리고 아파트에서 살아왔기 때문인지 이왕 결심한 지역행, 내 집은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으면 했습니다. 마당 있는 집은 도시인의 로망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2개월간 100여 개의 매물을 확인했고, 그중 70여 개 정도는 부동산에 컨택해 추가 정보를 받았으며, 실제 방문으로 이어진 매물은 50여 개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돌고 돌아 만나게 된 저희 집의 첫 모습입니다.

전 주인인 할머니의 할아버지가 손수 지어 4대가 100년에 걸쳐 살아왔다고 전해 들은 이 집은 정면에서 봤을 땐 마치 반쪽짜리 집처럼 보였는데요. 왜 반쪽짜리 집처럼 보이나 했더니 현관이 측면에 나 있더라구요.
복도 형식으로 깊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들어서니 마치 비밀의 정원 같은 뒷마당이 펼쳐졌고, 수선해야 할 것이 많은 집이긴 했지만 드디어 내 집을 찾았다는 직감에 온몸이 저릿했습니다.

강릉은 집마다 감나무 한 그루씩은 갖고 있다더니. 저희 집 역시 적어도 50살은 되어 보이는 키 큰 감나무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어요. 이마와 목덜미가 뜨거워질 정도로 집안 곳곳을 데우는 햇살에 감나무, 심지어 목련나무도 있는 마당과 이미 머릿속에 그려지는 집안 구조까지.
치열했던 임장 생활 덕에 이런 집은 하루 이틀 새 빠져나갈 거라는 예감이 들어 다음날 가계약, 다다음날 바로 계약을 해 잔금까지 치른 후 집 열쇠를 받게 됩니다. 잔금 외에도 부동산 중개 수수료, 법무사 수수료까지 모두 이체하고 나니 통장에는 이례 없던 잔액이 찍혔지만.. 그래도 그 순간 만큼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인테리어 과정

매수 후에는 한 달 정도 시간을 들여 공간 내, 외부로 원하는 집의 모습을 직접 그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겁지만 따뜻한 느낌의 짙은 브라운과 화이트 중심, 컨셉은 형광등 없는 집으로 잡았어요.
전체 컨셉 / 공간별 세부 컨셉 / 희망 공정 범위 / 가용 예산 / 입주 희망 일자까지 모두 담아 스무 페이지가 넘는 의뢰서를 만들었고, 그간 리스트업 해두었던 업체들에게 컨택하기 시작했습니다.

연락이 닿은 업체 몇 군데와 현장 미팅을 하고, 공사 범위를 조율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지지부진했습니다. 계약 직전까지 논의가 되었다가 무산된 경우도 있었구요.
최종 한 군데의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기까지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천장 서까래 등 내부 컨디션 확인을 위해 1차 철거를 해둔 저희 집은 뼈대만 남긴 채 겨울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집이 무너지는 꿈을 정말 많이 꿨던 것 같아요..
외관 Before

외관 After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비정형 현무암 길을 따라 현관으로 들어설 수 있게끔 했어요. 현무암 주변으로는 잔디를 심으려다 주변의 적극적인 만류 끝에 파쇄석을 깔았습니다.
옆집과 맞닿은 담벼락 아래에는 기다랗게 화단도 만들었는데요. 가을이 되면 여러 종류의 야생화를 심어 저희 집에서 나고 자란 꽃들로 집안을 가득 채울 계획을 갖고 있답니다.

현관 우측으로는 작은 툇마루를 두어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반려견 무늬가 마당에서 뛰어 노는 걸 구경하곤 해요.
현관 Before

이 집을 처음 봤을 때, 뒷마당까지 이어지는 복도 공간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이 구조를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앞마당과 가장 가까운 첫 번째 방의 1/3 가량을 할애해 현관과 현관 전실을 새로 만들었고, 현관문에 이어 중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서면 길게 뻗은 복도가 첫눈에 담기도록 했죠. 방 하나를 포기해가면서 만든 공간이기에 활용도는 크게 줄어들었지만 후회 없는 선택이랍니다.
현관 After


중문에는 간살 디자인을 넣어 집안의 전체적인 무드와 어우러지도록 했어요. 별도 제작으로, 뒤이어 소개할 안방의 미닫이문과 함께 추가 비용을 들여 만들었습니다.
주방 Before

철거를 해보니 부엌 천장이 다른 곳보다 유독 낮았고, 서까래와 돌출보 등 구조물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업체와 논의해 드러낼 수 있는 구조물은 모두 드러내고 대신 낙엽 송판을 덧대 천장 모양과 우드 고유의 느낌을 살려 가기로 했어요.
주방 After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기에 주방 타일 및 싱크대는 올화이트로 깔끔하게 통일했고, 대신 싱크대에 들어가는 가전은 블랙으로 선택해 너무 밋밋해 보이지 않도록 했어요.


집안의 전체적인 무드가 짙은 브라운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질 수 있어 곳곳에 파스텔 계열로 포인트를 주었습니다.

기존 현관문이 있던 위치에요. 상부에는 픽스창을 내 채광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했고, 하부에는 수납장을 두어 수납력이 부족한 주방 공간을 보완 했습니다.

픽스창은 오로지 채광에만 초점을 맞춰 진행된 공사였는데, 뜻밖의 장점으로는 창문 밖 담벼락으로 지나다니는 고양이들을 이따끔씩 만날 수 있다는 거에요. 오늘은 또 언제 지나갈까, 생각하며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여유라니. 서울에 살 적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이에요.
복도 Before


복도 After



작은 핸드폰 속 캘린더가 아닌 창문을 통해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살고 싶었기에 복도만큼은 제가 원하는 그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원래는 창가 밑에 폭이 좁은 긴 책상을 놓을 생각이었지만 제작 비용이 만만치 않기도 했고, 또 창틀에 책을 올려 봤더니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아 창틀 자체를 책꽂이로 사용하고 있어요.

복도 한 켠에는 내부에서도 뒷마당으로 출입할 수 있게 미닫이 샤시를 냈어요. 샤시 바로 앞에 일룸 스톤 1인 소파를 두었더니 또 하나의 오브제 겸 둘도 없는 힐링 스팟이 되었답니다. 살갗에 닿는 햇볕의 감촉을 느끼는 맛도 있구요.

사실 저보다도 반려견 무늬가 더 애용하는 소파랍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잎사귀도 구경하고, 달콤한 낮잠도 즐기느라 제가 앉을 틈을 잘 안 주기는 해요 ㅎㅎ.
안방 Before

안방은 뜯어보니 정말 신기한 공간이었어요. 천장 높이도 제각각이고, 돌출된 구조목도 가장 많이 발견 됐구요.


이런 특징을 최대한 살리려다 보니 전체 공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된 공간이기도 합니다.
안방 After

이 집으로 이사를 오기 전, 이미 유기견 센터에서 무늬를 입양한 상태였기 때문에 마스터룸 포함 모든 공간은 반려 생활에 적합한 환경으로 고려되었어야 했어요.
개인적으로 반려견과 한 공간에서 자는 것이 서로의 정서에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제가 주로 머무는 공간에 들어가는 가구 또한 당연히 반려동물 친화적인 기능을 지녔거나 그런 소재인지를 최우선으로 따졌습니다.

일룸은 펫 전용 카테고리가 따로 있을 정도로 반려 생활에 대한 고민이 깊은 브랜드이기 때문에 소파와 펫 방석 또한 일룸 제품으로 선택했어요.

'블루 포그' 라는 파스텔 컬러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방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고, 사이즈 또한 컴팩트해서 저희 집에 정말 찰떡이랍니다. 서울에서 가끔 개동생이 놀러 오는데, 그때마다 저희 집 소파는 개동생들의 사랑방이 되곤 해요.

안방 침대와 드레스룸의 옷장까지 모두 일룸 제품! 침대로 일룸 헤이즐 평상형을 선택한 이유는 우드 계열의 침대이면서도 집안 메인 컬러보다 밝아 역시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는 것을 완화시켜 줄 것 같았어요.
침대가 들어갈 공간이 특히 층고가 낮고 또 곳곳에 노출된 구조물이 많기 때문에 헤드가 없는 평상형으로 개방감을 주고 싶었구요.

침대는 KK 사이즈, 매트리스는 Q 사이즈로 혼자 쓰기에 좀 크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웬걸요. 침대는 크면 클수록, 넓으면 넓을수록 좋은 것이었어요!
마치며

2개월 무렵 강릉 어느 공장에서 발견되어 개린이 시절 대부분을 센터에서 보낸 무늬는 겁도 많고 소심한 편이지만 저와의 생활에, 그리고 새로운 집에서의 삶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어요. 아파트 키즈로 평생을 살아온 저도 매일같이 생겨나는 거미줄과 돌아서면 또 떨어져 있는 설익은 감을 줍느라 몸이 바쁜 나날을 보내며 주택살이에 스며들고 있구요.
무엇하나 쉽게 흘러가지 않는 공사 기간 내내 한 가지 다짐한 것이 있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저는 이 집을 아껴주며 살아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제게는 충분하고, 어디 한 군데 제 손길이 닿지 않은 곳 없는 애정어린 저만의 공간이니까요.

100년의 세월이 뭍은 집에 저와 반려견 무늬가 새롭게 남길 무늬가 궁금하다면 '집, 무늬'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도 종종 놀러와 주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