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호는 왜 '3부리그' 버밍엄시티와 계약을 연장했을까?
백승호가 현 소속팀인 버밍엄시티와 4년 장기 재계약을 맺었다. 7일 버밍엄시티는 공식 채널들을 통해 백승호와 2028년 여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고 발표했다.
의구심을 표현하는 팬들이 있었다. 의구심의 핵심은 3부리그. 현재 버밍엄시티는 3부리그인 리그1으로 내려가있다. 백승호는 버밍엄시티가 2부리그(챔피언십)에 있던 지난 시즌 중간에 자유 계약으로 이적했다. 팀은 강등됐고, 백승호는 버밍엄시티를 떠나지 않았다. 계약 기간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재계약을 하면서 3부리그 팀에 더욱 남아있게 됐다. 일부 국내 팬들은 백승호의 선택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백승호는 왜 버밍엄 시티와 계약을 연장했을까.
#원대한 꿈을 꾸는 버밍엄 시티
지난 9월 16일 영국 버밍엄 세인트앤드류스 스타디움. 홈팀인 버밍엄시티 팬들과 관중들은 한 남자를 주목했다. 미국의 전설적인 미식축구 선수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쿼터백이라고 불리는 톰 브래디였다. 그는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탬파베이 버캐니어스에서 뛰며 총 7번 슈퍼보울 우승을 차지했다. 3차례 정규리그 MVP 수상, 5차례 슈퍼보울 MVP 수상 등 엄청난 경력을 자랑한다. 축구로 치자면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합쳐놓은 성과를 거둔 선수라 할 수 있다.
미식축구 전설 브래디가 미국이 아닌 영국 버밍엄 세인트 앤드류스에 있었던 것은 그가 바로 버밍엄시티의 투자자 겸 전략 고문이기 때문이다. 미국 자본 나이트헤드 자산 운용(Knighthead Capital Management)이 2023년 7월 버밍엄 시티를 완전 매수했다. 브래디도 여기에 참여해 소수 지분(정확한 지분은 알려지지 않음)을 보유하면서 전략 고문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브래디는 새 판을 짜고 이를 향해 달려가는 버밍엄시티를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얼굴 마담이다.
나이트헤드는 자산 운용사이다. 버밍엄시티를 통해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수익을 내는 것이 최대 목표이다. 어떻게 수익을 낼까.
첫번째는 프리미어리그로의 복귀다. 2025~2026시즌 챔피언십으로 올라간 후 2026~2027시즌 프리미어리그 복귀를 천명했다. 챔피언십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올라갈 때 얻을 수 있는 수익은 방송 중계권료로만 최소 1억 7000만~2억 파운드에 달한다. 여기에 각종 스폰서 금액의 상승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두번째는 홈구장인 세인트 앤드류스 경기장 인근 수익 사업권이다. 이미 나이트헤드는 버밍엄 시티의 새로운 홈구장으로 현재 세인트 앤드류스 인근에 있는 버밍엄 휠스 부지 48에이커(약 5만 8000평)를 확보했다. 여기에 6만석 규모의 구장과 함께 훈련 시설과 커뮤니티 공간, 상업 지역을 지어올릴 생각이다. 2029년 완공을 목표로 한 이 사업은 전체 20억에서 30억 파운드짜리 프로젝트이다. 이 부동산 사업으로 나이트헤드가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아스널이 하이버리 스퀘어 프로젝트(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이전 후 예전 홈구장이었던 하이버리 자리에 700여실의 아파트 지어올림)의 수익은 1억 5000만 파운드에 달했다. 나이트헤드도 이 전례를 잘 알고 있다.
세번째로는 구단 가치의 상승이다. 프리미어리그로 올라간다면 구단은 더욱 비싸지게 된다. 이 때 만약 다른 인수자가 나타난다면 큰 돈을 받고 구단을 매각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스포츠 시장에서는 상당히 많이 일어났고 검증을 마친 이익 창출 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쉽게 말해 서울 강남 아파트를 5억원 주고 산 다음에 가치가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추후에 20억원에 주고 파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있다.
참고로 2022년 5월 미국의 사업가 토드 보흘리가 첼시를 인수할 때 들인 금액은 42억 5000만 파운드(클럽 지분 매각에 25억 파운드)였다.
나이트헤드는 2023년 7월 버밍엄 시티를 3500만 파운드에 인수했다.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프리미어리그로 올라간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인수 금액에 7배에 달하는 2억 파운드(중계권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위에서 말한 새 경기장 사업권이나 여러가지 구단 가치 상승분을 생각한다면 더욱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꿈의 중심 백승호
이같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경기력이다. 결국 모든 것의 전제 조건은 프리미어리그 복귀이기 때문이다. 에이스급 선수들의 잔류가 절실했다.
백승호가 핵심이었다. 2024년 겨울 버밍엄시티에 입단한 그는 팀의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단 6개월간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챔피언십 전체가 주목하는 미드필더가 됐다. 2023~2024시즌이 끝나고 리즈 유나이티드 등 수많은 2부리그 구단과 독일 분데스리가 구단 등이 영입 제안을 했다. 버밍엄시티도 백승호 설득에 나섰다. 사실 설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백승호와 버밍엄 시티의 계약서에는 '강등 시 이적 가능' 조항은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버밍엄 시티가 내줄 수 없다고 말하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잠깐 이 부분을 살펴보자. 강등 시 이적 가능 조항이 왜 없었을가. 이유가 있었다. 당시 백승호는 이적료가 없는 자유계약 신분이었다. 통상 4~5년 장기 계약이 관례다. 백승호로서는 장기 계약으로 발목이 잡히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때문에 강등 시 이적 가능 조항을 빼고 대신 2년 반 계약을 맺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팀이 예상 밖으로 강등당하면서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직면했을 뿐이었다.(2023~2024시즌 초반 버밍엄 감독으로서 팀을 망쳤던 웨인 루니 탓을 해야 할 것 같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온다. 버밍엄 시티로서는 계약 조항을 운운하면서 백승호를 무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버밍엄 시티는 진심으로 접근했다. 차근차근 자신들의 비전을 알렸고, 그 중심에는 백승호가 있다고 밝혔다. 결국 백승호도 이에 동의했고 버밍엄 시티에 남았다.
새롭게 팀을 맡은 크리스 데이비스 감독에 대한 신뢰감도 컸다. 1985년생으로 젊은 감독인 데이비스는 25세부터 브랜단 로저스 감독 사단으로 일하며 코칭 경력을 키웠다. 2023년 6월에는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수석 코치로 토트넘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버밍엄 시티 감독으로 왔다. 백승호는 데이비스 감독을 신뢰했다. 그와 함께 프리미어리그로 가는 여정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버밍엄 시티는 백승호와 계약 연장(주급 인상은 당연한)으로 보답했다.
이제 백승호와 버밍엄 시티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운명 공동체가 됐다. 버밍엄 시티는 2024~2025시즌에만 3546만 유로를 투자해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역대 리그 1 이적료 지출 최다였다. 리그1 급이 아닌 챔피언십과 프리미어리그에서 뛸만 한 수준의 선수들을 대거 데려왔다. 그만큼 리그1에서 챔피언십으로 그리고 바로 프리미어리그로 올라가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백승호 역시 버밍엄 시티와 함께 챔피언십으로 복귀하고 나아가 바로 프리미어리그로 올라가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