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스탄] ① 함박마을의 여름방학
올해 여름 역시 전속력으로 다가와 밤을 점차 사라지게 하더니 며칠 동안 멎지 않는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장마가 여름 하늘 적란운처럼 우뚝 선 지난 7월, 아이들 여름방학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침마다 학교 갈 의무가 사라지는 한 달. 일상의 규칙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여름방학이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이나, 앤드루 클레먼츠의 '여름방학 미스터리'를 보면 책 속 주인공은 여름방학을 배경으로 모험하거나 자아를 성찰했다. 문학산 자락 함박마을에도 공평하게 여름방학이 다가왔다. 아이들은 며칠 놀러 갈 시골 할머니 댁이나 친척 집은 없어도, 피아노나 태권도, 발레 등 넉넉한 사교육에서 멀어져 있어도, 마을 보살핌 속에서 무럭무럭 커 가고 있었다.
장마가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
마을에도 방학이 찾아왔다
놀러 갈 시골 할머니댁은 없다
몸과 마음을 채울 학원은 멀리 있다
한국말 하나 들리지 않는
피터팬 속 네버랜드 같은 그곳
좁은 마리공원에서 아이들은 꿈꾼다
▲1장-마리와 나
“함박마을 애들은 다 마리공원에 있다”고 한 활동가가 지나가는 소리로 한마디 한 게 가슴팍에 꽂혔다. 7월8일쯤부터 여름방학 시작한 7월20일까지 어떤 때는 매일, 바쁘면 사흘에 한 번꼴로 이곳을 찾았다.
함박마을 지도를 펴면 중앙쯤에 있는 마리어린이공원은 다른 동네 사람들이 보기엔 공영주차장 위의 작은 공원일 뿐이다. 산 중턱에 자리 잡아 비탈에 걸터앉은 모양새다.
#7월8일
입구부터 가파른 계단이었다. 애초에 산 깎아 만들어진 주차장 위에 있는 공원이다. 유모차라도 끌고 오려면 골목 따라 공원 위쪽으로 돌아 올라가야 하는 다소 불친절한 곳이다.
여름 한복판, 그것도 정수리 위에 해가 선 시각에 계단 하나하나 지르밟으며 공원에 올랐다. 처음 마주한 테니스장 반만 한 광장에는 스무명 정도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축구공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10살 무렵의 남자아이들. 광장 계단에서 축구공 무리를 내려다보는 그 또래 여자아이들. 그리고 그 여자아이들 옆에서 짓궂게 장난치는 어떤 남자아이들.
즐거움에 빠진 아이들 손에는 마리공원과 낡은 축구공 하나였지만 저마다 작은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아이들 챙기러 나온 부모님도 한 명 보이지 않아 꼭 피터팬에 나오는 네버랜드 같았다.
나 어릴 적 놀던 계양산 '산 놀이터'가 딱 저랬다. 배드민턴장이라고 만든 흙바닥에서 나무 기둥 골대 삼아 축구하고 미끄럼틀에서 '탈출' 놀이하던 30년 전 향수가 또렷한 형태로 엄습했다.
요즘 보기 힘든 아이들로만 가득 찬 놀이터였다. 심지어 비도 오락가락하던 날이었다. 후드득 비 떨어지면 정자 지붕 아래 숨었다가 빗줄기 잦아들면 다시 '우다다' 뛰노는 아이들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7월8일 마리공원에선 장담하는데 한국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마리공원 취재를 관찰로 방향을 잡아야겠다고 정한 순간이다.
#7월12일
한 주 작은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모처럼 갠 금요일이었다. 가만 보니 옆으로 길게 늘어진 공원은 크게 세 개 공간으로 나눌 수 있었다. 우선 공원 동쪽으로 놀이터가 있다. 2~3년 전 새로 단장해 우레탄 바닥도 있고 색색 미끄럼틀과 그네가 있는 요즘의 놀이터 모습이다. 주로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 그곳에서 어울린다. 계단 입구로 이어지는 광장은 공원 중앙에 있다. 10살 넘는 초등학생들이 공 가지고 많이 노는 공간이다. 공원 서쪽에는 나무 그늘 있는 벤치 존이 있다. 나중에 또 언급하겠지만 여긴 밤이면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이 모여 앉아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광장 계단에서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한 남자아이가 옆에 앉았다. 한 열살이나 열한살쯤. 머리카락이 잘 익은 바게트처럼 연한 노란색인데 따로 염색한 것 같진 않아 보였다. 이때다 싶어 “안녕”하고 인사하니 “안녕하세요”라고 답했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한국말이 부담처럼 보여 더 말은 잇지 않았다. 쭈쭈바 몇 개 손에 건네고 그날은 그렇게 자리를 떴다.
쭈쭈바 사며 얘기 나눈 근처 가게 주인은 “함박마을에 놀이터 있는 공원이라곤 거기가 전부다. 산 중턱에 장미공원이 있긴 해도 산속에 있다 보니까 어린 애들이 놀기가 쉽지 않다. 글쎄, 엄마아빠들 맞벌이하거나 혼자 많이 키우니까 애들끼리 잘 어울려 노는 거 같더라….”
어둠이 내려앉은 공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사라진 자리
왠지 모를 음산함이 주위를 감싼다
#7월15일
밤의 마리어린이공원은 전혀 어린이스럽지 않았다. 저녁 10시쯤 된 시각. 계단을 오르니 여기저기서 빨간 점들이 불을 켰다 껐다 했다. 그럴 때마다 담배 연기는 습기 찬 여름밤 하늘에 퍼졌다 사라졌다. 수군거리던 무리 중 몇몇이 화장실 불빛에 드러난 나를 흘깃 보더니 대화를 이어 나갔다. 공원 동쪽 끝에 'POLICE PATROL BOOTH'라고 적힌 연수경찰서 간판에 마음을 의지하고 한 바퀴 돌았다. 마리공원과 그 주변엔 길고양이들이 참 많은데, 어둠 속에서 그것들이 어기적어기적 걸어 나올 때마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힉-'하고 혼자 놀랐다. 얼마 전에는 공원서 누가 먹던 캔을 아래로 던져 지나가던 사람이 맞아 다쳤다는 얘기도 들렸다.
“함박마을 애들은 다 마리공원에 있다”던 활동가 얘기에서 '애들'은 유아, 어린이 그리고 청소년 등등을 얘기하는 거였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맛비
하굣길 아이들도 쏟아져 나온다
우산 들고 마중 나가고 싶은 부모님은
삶에 치여 그럴 시간이 없다
▲2장-여름방학 D-DAY, 교문 앞이 설렌다
#문남초 D-2·함박초 D-3
연수구 문남초 여름방학까진 이틀, 함박초 여름방학까진 사흘 남았던 지난 7월16일. 오후 4시쯤 되니 새끼손톱만 한 물방울이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날 아침이나 점심까지만 해도, 햇빛이 가끔 비쳐 대부분 비를 의심하지 않았다. 장마철 변덕은 정말 1분 앞 날씨도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
하필 문남초 아이들이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올망졸망 1학년, 2학년 아이들보다는 학교에서 나름 선배 격인 고학년 친구들이다. 옷과 가방이 초록색, 분홍색, 노란색 말고 검은색, 회색과 같은 무채색 계열이다. 덩치도 중학생 언저리에 있었다.
5명 중 한 명꼴로 손에 우산을 쥐었다. 우산 하나로 네다섯이 같이 쓸 순 없으니까 우산 주인 빼고는 다들 비를 맞기로 했는지 조잘조잘 떠들면서 교문 밖을 나와 함박마을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다문화 학생 비율이 60%를 넘긴 이 학교에는 나 어렸을 때보다 우산 마중 나오는 부모님이 훨씬 더 적어 보였다.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를 대화로
깔깔거리며 함께 장난치는 친구들
문학산 맞닿은 집으로 가는 길
산 넘고 물 건너는 듯 위험한 여정
아이들을 위한 세상은 마을 밖에 있다
#문남초 D-7·함박초 D-6
남자아이들 세 명 하굣길을 멀리서 따라가 보기로 했다. 러시아 말인지, 소련 연방국 중 한 곳 언어인지 몰라도 서로 연신 장난치며 가길래 저렇게 어디까지 가나 싶어서 잠깐 미행 아닌 미행을 따라붙었다.
문남초에서 함박마을까진 사거리를 두 개 지나야 닿을 수 있다. 함박뫼 사거리가 왕복 4차선, 수리봉 사거리는 왕복 10차선이다. 도합 14차선을 건너야 집으로든, 학교로든 간다.
수리봉 사거리 건너면 함박마을 진입이다. 상점가 많은 비류대로 앞쪽에 살면 그나마 학교에서 집까지 1㎞ 안으로 끊는다. 문학산 따라 동네 안쪽 집에 살면 함박마을 초입부터 집까지 언덕길 따라 몇백미터씩 더 올라가야 한다.
연수1동에서 공인중개사를 하는 박(56)씨 얘기를 들어보면 함박마을에서 문학산 쪽으로 갈수록 월세가 싸다고 했다. 보증금 없이 달 방을 빌려주는 데도 적지 않단다. 취업비자든 방문비자든 여기에서 주택 구입을 위해 대출을 받을 수 없으니 200만원 남짓 월급에서 월세로 낼 수 있는 함박마을 빌라, 주택단지가 외국인들에게 인기라고 박씨는 알려줬다.
하굣길을 따라갔던 남자아이들 3명은 사실 집으로 곧장 안 가고 학교 앞 아파트단지에서 조금 놀다 함박마을로 갔다. 아이스크림 무인점포를 들린 뒤 무리 중 한 명은 태권도 학원으로 들어갔다.
따져보니 애초에 함박마을엔 아이들을 위한 상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일단 수리봉 사거리에 영어학원을 제외하면 함박마을에 '학원' 종류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함박초나 문남초 50% 이상이 함박마을 학생인데 태권도, 피아노, 키즈카페 등등은 죄다 건너편 아파트 단지들에 밀집해 있었다.
함박초에서 얘기를 나눈 고려인 학부모 김씨는 “그래서 돈 좀 모은 집은 학교 근처 아파트 단지나 연수역으로 이사하고 있다. 역 주변에 애들 위한 가게들도 많고 부모 입장에서도 남동산단 출퇴근하기 더 쉽다”고 일러줬다.
#문남초 D-24·함박초 D-25
지난 6월24일 함박초 주변 육교 앞에선 이 학교 학생이 차에 치이는 사고가 있었다. 비류대로와 함박로가 이어지는 삼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기 위해 속도를 낸 차와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려던 함박초 학생이 부딪혀 벌어진 사고였다. 비류대로 큰길에는 육교가 있다. 십수년 전 초등학생이 이곳에서 차 사고로 숨져 육교가 만들어졌다고 주민들은 알려줬다. 정작 비류대로에서 함박마을로 올라가는 함박로에는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만 있다. 함박로에서 비류대로로 진출입하기 위한 차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려면 신호등이 꼭 필요하다는 건의들이 계속됐는데 결국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예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어서 연수경찰서에 신호등 요청을 몇 번이나 했다. 검토해 준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다”고 함박마을 한 활동가는 전했다.
설렘 가득 여름방학 시작하는 날
비온 뒤 고개 내민 햇살처럼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문남초 D-DAY·함박초 D-DAY
목요일이던 문남초 방학식에는 도로에 찬 물이 인도까지 넘실거릴 정도로 비가 왔고, 금요일 함박초 방학식에는 날이 맑게 갰다.
오후 12시40분쯤. 마중 나온 부모 중 70% 정도는 다문화 가정으로 보였다. 노란색 태권도학원 승합차 3대가 아이들을 픽업하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급식 먹고 나와 하나둘 교문으로 향했다. 한 아이가 교문 앞에 고인 물웅덩이를 보고 발로 차 친구들에게 한 방 먹였다. 뒤따라오던 친구들도 물웅덩이에 첨벙 발 담그고 마중 나온 엄마, 아빠 손을 잡았다.
이날 우즈베키스탄 출신 김따냐(가명)씨도 함박초에 다니는 둘째아들을 데리러 나왔다. 오후 4시엔 유치원생 막내아들을 마중 나가야 한다고 했다. 큰아들은 벌써 14살로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나이도 학교도 제각각인 삼형제
이 세 아들을 홀로 키우는 따냐씨
일과 육아 중 어떤 것도 집중할 수 없다
마을에는 따냐씨 같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살고 있다
▲3장 따냐씨의 유·초·중 여름방학 종합세트
따냐씨와 남편 관계는 우리 식으로 볼 때 좀 문제가 있다. 둘은 몇 년째 별거 상태다. 이유를 물으니 “남편에게 다른 부인이 있어서”란다. 남편의 여자친구를 말하는 건가 싶었는데 '다른 부인'이라고 재차 확인시켜 줬다. 이런 관계가 가능한 것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따냐씨는 한국말이 서툴다. 나는 우즈베키스탄말을 못 하니까 따냐씨와는 번역기를 빌려 간단한 얘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속 얘기를 물어볼 때 발생하는 문맥의 복잡함까지는 번역기가 서로에게 전달하지 못했다. 간혹 감정적인 느낌에 사로잡혀도 스마트폰을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에 우리는 더 깊은 대화를 포기하고 의사 전달에만 집중했다.
어쨌든. 따냐씨는 5년 전부터 남편과 따로 살면서 세 아들을 전적으로 돌보고 있다. 첫째는 14살 중학생이고 둘째는 초등학생, 막내는 이제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2024년 여름은 따냐씨에게 있어 유·초·중 여름방학 종합세트와 같은 셈이다.
“10년 전쯤 남편 먼저 한국으로 왔고 몇 해 뒤 나와 아이들도 따라 넘어왔다. 당시 김포에 살았는데 함박마을과 달리 한국말 알려주는 곳이 없었다. 한국 와서도 한참 동안 한국말을 몰랐다가 함박마을 활동단체들한테서 한국말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맘이 쓰이는 건 큰 애다
중학생부턴 아동센터에 갈 수 없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집에서 혼자 있거나 복싱 학원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별거 중인 남편은 근처 살면서 큰 아이 복싱 학원비를 내주고 이런저런 학비도 보탠다고 한다. 그 외 생활비로 따냐씨에게 보내는 돈은 매월 5만원 정도다.
“둘째나 셋째는 아직 애들이라 학교나 동네 친구들이랑 놀면서 그래도 잘 지낸다. 여름방학에도 학교나 함박마을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 대상 프로그램을 한다. 맘이 쓰이는 건 큰 애다. 중학생부턴 아동센터에 갈 수 없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집에서 혼자 있거나 복싱 학원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수학, 영어 이런 학원 보낼 형편은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모두 한국 학교에 다녀 한국어를 읽고, 쓰고, 듣는 건 잘하는 대신 말하는 게 서툴다. 워낙 고려인 친구들이 많았어서 한국말을 완벽하게 배우지 못했다. 요새는 사춘기에 접어들었는지 자꾸 비싼 옷을 사달라고 한다. 가진 것에서 최대한 쓰려고 하지만 한국 물가를 쫓아가기엔 상황이 넉넉하지 않다.”
따냐씨는 방문거주(F-1) 비자를 소지하고 있다. 법적으로 취업이 쉽지 않아 돈 벌기도 어렵고 더군다나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 셋을 집에 두고 매일 나가 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름방학에 아이들 데리고 바다나 이런 데 놀러 갈 계획이 있냐고 묻었더니 살면서 바다는 딱 두 번 봤다고 했다. 사실, 따냐씨는 뭐랄까 대화하면서 좀 시니컬한 사람처럼 보였는데 속초와 설악산, 월미도를 놀러 갔을 때를 얘기할 때는 조금 웃어 보이기도 했다.
“우즈베키스탄에 바다가 없다. 처음 본 바다는 디아스포라연구소에서 데려가 준 속초 바다였다. 설악산도 멋졌다. 아, 월미도도 데려가 줬다. 아이들이 바다 보고 정말 좋아했었다. 그 외엔 놀러 다녀본 곳이 없네... 인천이 좋다. 아이들 친구들이 있고 나도 여기서 나와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과 어울려서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7월 내내 '함박마을의 여름방학'을 쫓아다니다 보니, 이 동네엔 여성 혼자 아이를 키우는 집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따냐씨처럼 남편이 먼저 한국에 일자리를 구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가족들도 함께 넘어온 뒤 이런저런 이유로 이혼하거나 따로 사는 가정들이었다. 육아는 대개 여성 몫으로 남겨진다.
함박스탄 2편에선 남편 따라 한국에 왔다가 아이와 함께 함박마을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이혼 혹은 별거 여성들 얘기를 전한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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