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특유 PF’, 롯데를 뒤흔들다

이종태 기자 2026. 5. 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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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금 수억 원의 시행사가 수천억 원을 조달하고, 그 위험은 건설사 보증을 거쳐 그룹 전체로 번진다. 부동산 PF가 어떻게 기업의 성장 여력을 잠식하는지 추적했다.
서울 강서구 마곡MICE 복합단지 풍경. ⓒ시사IN 박미소

진짜 주인공은 연간 매출이 8조원 규모에 달하는 롯데건설이다. 이 회사는 주기적으로 ‘유동성 위기’설에 노출되어왔다. 그러나 이 기사는 자본금이 수억 원에 불과한 작은 개발회사의 이야기로 출발한다. 그들이 고작 수억 원의 밑천으로 수천억 원을 조달해서 어떤 경우에는 자본금 대비 수백 배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부동산 시장의 모순이, 거대 건설회사 및 해당 그룹 나아가 국가경제 차원의 시스템 리스크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밑천’의 수백 배를 빌리는 방법

2010년대 말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마치 엘도라도처럼 보였다. 돈을 빌리기 쉽고 금리도 저렴했다. 주택이든 상업용 건물이든 일단 사고 보자는 투기성 수요가 차고 넘쳤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이 시장에 뛰어들어 일생일대의 기회를 실현하고 싶은 모험가가 많았다. 그중 일단의 모험가가 서울과 부산 등 핵심 요지의 홈플러스 매장 몇 곳을 인수해 그곳에 수십 층 규모 건물을 세우려고 기획했다.

그러나 이 기획을 실현하려면 1조원 이상이 들어간다. 부지 매입에만 3000억~4000억원, 공사비로도 8000억원 이상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어느 은행이 밑천 없는 모험가들에게 수천억 원을 빌려줄까? 한국에서는 가능했다. 한국 특유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라는 금융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모험가들은 우선 부동산 개발 법인(이하 A사)을 설립했다. A사 임원은 건설사들을 찾아다니며 개발 일정이나 자금조달 계획 등을 논의했을 터이다. 롯데건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건설사는 2022년 7월 A사와 8200억원 규모의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완공일은 8년 뒤인 2030년 6월. 그러나 이 8년 중에서 3~4년은 부지 매입과 인허가, 명도 등으로 흘러갈 기간이었다. 롯데건설은 남은 4~5년 동안 실제 시공을 진행하며 그 진도에 맞춰 공사비를 받고, 그 돈은 이 회사 공시 장부에 매출로 기록될 터였다.

이로써 A사는 ‘시행사’로서 기나긴 장도의 첫발을 내딛는다. 그것은 부지 매입 자금의 조달이다. 이를 위해 빌리는 돈을 ‘브리지론(실제 공사에 들어갈 때까지 필요한 다리를 놓는 돈)’이라고 한다. 부지 매입과 인허가 등이 끝나면 비로소 본공사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 단계에서 시행사는 다시 자금을 조달해(‘본 PF’) 브리지론 상환, 공사비 지급 등에 사용한다.

브리지론 조달부터 ‘한국 특유의 PF’ 기법이 적용된다. 밑천 수억 원으로 3500억원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이다. A사는 자금조달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의 컨설팅을 받아 페이퍼컴퍼니(SPC·특수목적법인)를 설립한다. 그리고 이 페이퍼컴퍼니(이후 B사)가 시행사(A사)에 3500억원을 빌려줬다고 ‘가정’한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혀를 찰지도 모른다. B사라는 ‘허구의 기업’이 시행사에 거액을 빌려준 것으로 치자고? 그게 어떤 의미란 말인가. 그러나 이른바 ‘고도 금융 기법’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믿으면 ‘허구’가 현실이 된다. 동화 〈피터팬〉에서 치명적 독약을 마시고 스러져가던 요정 팅커벨이 수많은 어린이들의 ‘나는 요정의 존재를 믿어요’라는 환호와 갈채에 활짝 웃으며 날아오르는 광경을 연상해도 좋다.

그냥 B사가 시행사에 돈을 빌려줬다고, 따지지 말고 무조건 믿어라. 그렇다면, ‘B사는 앞으로 원금 3500억원과 이자를 시행사로부터 돌려받을 채권자’라는 믿음이 따라온다. B사는 비록 종이 속 허구에 불과하지만 자본금 수억 원 규모의 시행사(A사)보다는 훨씬 믿음직스러운 존재가 된다. B사(사실은 A사와 증권사)는 ‘나에게 앞으로 들어올 자금을 담보 삼아 아주 매력적인 조건으로 돈을 빌리겠다’라며 시장에 채권을 내놓는다.

이 채권의 매력은 놀라울 정도다. 만기가 1~3개월에 불과하다. 더욱이 초단기 채권인데도 금리가 매우 높다. 심지어 증권사에서는 ‘B사가 돈을 갚지 못하면 내가 당신에게 그 채권을 되사겠다(매입 확약)’라는 약속으로 채권의 신용도를 높인다. 단기간에 높은 이자를 받는 데다 미상환 리스크도 거의 없다. 이런 채권을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이라고 부른다. ABCP를 전산망으로 거래하는 전단채(전자단기사채, ABSTB)도 있다.

투자자들이 이 ABCP 내지 전단채를 매입하면, 그 돈은 B사를 거쳐 시행사로 이전된다(〈그림 1〉 참조). 그 순간 팅커벨은 날개를 치기 시작한다. ‘B사가 A사에 빌려줬다’는 당초의 ‘믿음’이 어느새 현실이 되었다. 믿음엔 복이 있다.

환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자금조달 기법이지만 부동산 활황기에는 잘 작동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일부러 언급하지 않은 배후의 주인공이 있다. 대규모 건설사(시공사)다. 시공사와 앞서 언급한 시행사(A사)가 수주 계약서에 다음과 같은 보증 조항을 넣어둔 것이다. ‘시행사가 상환하지 못하면 시공사가 대신 갚는다(자금 보충·연대보증·이자 제공·채무인수 등 신용 강화).’ ‘시행사가 망하거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경우엔 시공사가 책임지고 완공한다(책임 준공).’

이 ‘믿음의 우주’는 시공사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투자자들이 페이퍼컴퍼니인 B사 발행 채권을 매입하는 것은 거대 건설사의 보증 때문이다. 흔히 PF는 ‘미래에 실현될 사업 프로젝트의 수익성에 기반한 투자 기법’으로 정의된다.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진짜 주인공’의 보증 덕분에 겨우 수억 원 규모 자본금을 가진 개발회사가 수천억 원을 조달할 수 있다. 투자자들이 철석같이 ‘믿는’ 것은 건설사의 보증이다. 

그 시행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 건설사(시공사)는 ‘진짜 주인공’답게 보증으로 인한 ‘미래의 부담’을 짊어지게 되었다. 다만 이 부담을 해당 시기의 재무제표 본문에는 반영하지 않는다. 재무제표는 투자자나 채권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부다. 보증한 금액을 비용이나 부채로 장부에 올리면 시공사 수익은 크게 떨어지고 부채비율은 치솟는다. 이로 인해 투자를 받거나 돈을 빌리기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발부채’라는 명목으로 사업보고서의 어딘가에 처박아둔다.

그러나 시행사 프로젝트가 흔들리면 시공사의 장부도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전단채의 만기가 예컨대 2개월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행사가 2개월 주기로 돈을 갚고 다시 빌려야(차환) 한다는 의미다. 브리지론 단계가 3년이라면 30차례 넘게 차환이 이뤄져야 한다. 부동산 시장의 전망이 밝을 때는 괜찮다. 그러나 시장이 경색되면 전단채를 매입하려는 투자자들이 사라지면서 차환마저 끊기고 만다. 시행사는 본 PF 단계로 넘어가지 못해 들어오는 현금도 없는 상황에서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차환의 순간을 두려워하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결국 부도를 내면 브리지론에 붙어 있던 우발부채(보증, 채무인수 약정 등)는 시공사의 장부에 확정채무와 손실로 이전된다(〈그림 2〉).

이미 착공한 프로젝트(본 PF 단계)에서도 리스크는 사라지지 않는다. 차환의 위험은 그대로 남고, 이런저런 이유로 공사가 지연되거나 완공 이후 분양이 부진하면 시공사는 공사비를 제때 회수하지 못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공사 미수금 등이 장부에 누적되면서 시공사의 현금흐름은 악화된다. 장부상으로는 매출과 이익이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현금이 들어오지 않는다. 이 부담은 시공사의 재무제표를 넘어 그룹 계열사로까지 전이될 수 있다.

이제 기사의 서두에 등장했던 부동산 개발회사인 A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해볼 차례다. A사는 시공사인 롯데건설과 수주 계약을 맺은 2022년, 2개월 만기의 전단채로 약 3500억원을 브리지론 용도로 조달했다. 이 브리지론에는 ‘기한이익상실’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시행사(A사)가 원리금을 갚지 못하거나 부도 사유가 발생하거나 혹은 롯데건설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원금과 이자를 즉시 상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당시의 채권-채무 관계를 둘러싼 분위기는 비교적 낙관적이었던 것 같다. 롯데건설이 약정한 신용 보강 수단은 ‘자금 보충’이었다. 시행사가 일시적 자금 부족으로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면, 부족분의 일부를 대여금 형태로 메워준다는 의미다. 비교적 가벼운 의무다.

그러나 이후 사업보고서를 연도순으로 읽어나가면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완공 예정일은 당초 2030년 6월에서 2031년 7월로 늦춰졌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은 2024년에는 롯데건설의 신용 보강 약정이 ‘자금 보충’에서 ‘연대보증’으로 한층 강화된다. 연대보증은 시행사의 채무를 사실상 시공사 자신의 채무로 떠안겠다는 것이다. 시행사에 대한 롯데건설의 보증 한도도 3610억원에서 4300억원대로 늘어났다. 시행사의 차환이 원활하지 않고 이자도 제때 지급되지 않자 채권자들(대주단)이 보증인 롯데건설의 멱살을 쥔 것으로 보인다.

시행사의 자금조달 수단도 만기 2개월짜리 전단채에서 3년 만기의 ‘사모사채’로 바뀌었다. B사(페이퍼컴퍼니) 명의로 발행한 전단채가 시장에서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짧은 만기와 높은 금리로도 금융시장에서는 전단채로 돈을 빌리기 힘들어졌다. 그러자 ‘특정 채권자를 골라 개별 협의(사모사채)’로 만기를 연장한 셈이다. 대신, 금리는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을 가능성이 크다.

2025년 말 시점까지도 A사는 이 프로젝트의 첫 삽조차 뜨지 못했다. 여전히 미착공 브리지론 단계다. 기한이익상실 조건은 한층 더 강화됐다. 이른바 ‘이자자금 보충 제공자’의 장기 신용등급이 A– 이하로 하락하는 경우에도 원리금 전액을 즉시 상환해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여기서 이자자금 보충 제공자는 호텔롯데·롯데물산 등 롯데그룹의 다른 계열사로, 시행사가 이자를 내지 못할 때 자금을 지원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 계열사들의 신용도까지 차입 유지의 조건으로 들어온 셈이다. 시행사 PF의 리스크가 시공사의 계열사로까지 전이되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시행사(A사)는 3개월 만기의 전단채로 98억원을 추가 조달했다. 착공 이전 단계이므로 이 돈은 공사비가 아니라 이자 및 시행사 유지 비용을 메우는 데 사용되었을 공산이 크다. 롯데건설은 이 자금에 대해서도 자금 보충 약정을 제공했다.

서울 서초구 롯데건설 본사. ⓒ연합뉴스

롯데건설이 시공 및 보증에 그치지 않고, 직접 시행사로 참여해 개발이익을 노린 경우도 있다. 대표 사례가 서울 마곡MICE복합단지 개발사업이다.

이 사업의 시행사는 마곡마이스PFV(이하 마곡PFV)라는 법인이다. 롯데건설과 금융기관 등이 주주로 법인을 설립했다. 롯데건설 지분은 29.9%다. 사업이 성공하면, 마곡PFV의 순이익 가운데 약 30%가 롯데건설 몫이 된다. 롯데건설은 이 사업에서 시행사 주주이자 시공사이고 보증인 역할까지 겸한 것이다. 롯데건설 컨소시엄이 마곡MICE복합단지 사업권을 확보한 것은 2019년이다. 저금리와 부동산 가격 상승이 맞물리며 PF 사업에 대한 기대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다른 대형 건설사들도 시행 단계에 직접 뛰어들고 있었다.

건설사가 시행사 주주라면 큰 장점이 있다. A사 같은 소규모 개발회사와 달리, 별도의 페이퍼컴퍼니 법인을 만들어 복잡하게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없다. 건설사가 대주주라는 이유만으로도 마곡PFV는 비교적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을 터이다. 실제로 마곡PFV는 브리지론 단계를 빠르게 넘기고 2021년 5월 착공에 들어갔다.

그러나 외부 환경이 급변했다. 2022년 초부터 금리가 급등하고, 같은 해 말에는 이른바 ‘김진태 사태(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자금조달 여건이 급속히 악화되었다. 시공은 비교적 순조로워 2024년 여름과 가을 사이에 주요 블록의 공사가 상당 부분 마무리됐다. 문제는 그 무렵에 터졌다. 정부의 ‘생활형 숙박시설’ 규제 강화와 시장 냉각, 계약해지 및 잔금(분양 대금의 대부분) 미납 문제가 겹치면서 현금 회수에 차질이 생겼다.

잔금이 들어오지 않자 시행사(마곡PFV)의 금고는 말라붙었다. 이 시점에, 돈을 빌려준 대주단들이 마곡PFV에 유입된 현금 중 원리금 1조2000억원을 우선적으로 챙겨 빠져나갔다. 이로써 2025년 말 기준, 마곡PFV는 순자산이 –1593억원으로 완전 자본잠식에 빠지게 되었다.

롯데건설은 마곡PFV의 대주주이지만, 법적으로는 별개 회사다. 롯데건설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경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주주로서 받는 배당금이고, 다른 하나는 시공사로서 받는 공사비다. 그러나 채권자들이 PFV의 자산보다 더 큰 규모의 원리금을 먼저 쓸어가 버렸으니 배당금은 0원이다. 2025년 말 기준, 공사비 약 3000억원도 회수하지 못한 상태다(공사 미수금).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마곡PFV에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 중에는 고금리를 받는 대가로 상환 순위를 뒤로 미룬(후순위) 캐피털사가 있다. 롯데건설은 이 부채 1030억원에 대해 ‘이자자금 보충’ 보증을 섰다. 즉, 롯데건설은 배당금은커녕 공사비마저 못 받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잠식에 빠진 마곡PFV를 대신해 고금리 이자까지 납부해야 한다.

2025년 말 기준 롯데건설은 PF 사업 79건의 보증을 서고 있다. 비교적 안정적인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제외한 수치다. 앞서 나온 A사와 마곡PFV는 그 사례 가운데 두 건에 불과하다. 물론 모든 우발부채(보증)가 한꺼번에 폭발해서 그 부담이 오롯이 롯데건설에 전가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롯데건설의 신용등급이 하락하거나 부도 사유가 발생할 경우, 이 회사가 시행사들을 대신해 갚아야 할 금액은 10조3271억원에 이른다.

A사와 마곡MICE로 인한 우발부채들은 미래의 롯데건설 장부에 충격을 가할 수 있다. 이는 롯데건설의 현 재무제표를 과거 PF 사업의 결과로 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룹으로 전이되는 PF 리스크

〈시사IN〉이 2018~2025년 롯데건설 사업보고서(연결 기준)를 살펴본 결과, 이 회사의 재무 흐름은 부동산 경기가 꺾이기 시작한 2022년을 경계로 극명하게 갈라진다. 이 붕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영업활동현금흐름(OCF), 순차입금, 이자보상비율 등이다.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제공

OCF는, 회사가 본업을 통해 실제로 금고에 넣거나 뺀 ‘진짜 현금’을 의미한다. 이 지표가 마이너스라면 그 업체는 채무상환이나 협력업체 결제 같은 필수적 지출도 어려운 상태다. 건설업체 OCF가 급격히 악화되었다면, PF 관련 지원 부담과 공사 미수금 증가 등이 시공사 장부를 압박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롯데건설의 OCF는 2018~2020년에는 2000억~3700억원 수준이었지만, 2021년에 돌연 –1640억원대로 떨어졌다. 다음 해(2022년)에는 1780억원대로 잠시 개선되었으나 이후엔 다시 급락해서 2025년에는 –6220억원대까지 추락한 상태다(〈그림 3〉).

현금유입이 줄면 외부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롯데건설의 순차입금(총차입금-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2018~2021년의 2000억~7000억원 수준에서 2022년에는 3조3000억원 안팎으로 급등했다. 2025년에도 1조9000억원에 이른다.

빚이 늘어도 본업의 수익성이 이자비용을 압도한다면 버틸 수 있다. 이를 나타내는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이자비용)’은 높을수록 좋다. 해당 기업이 영업활동만으로 이자를 감당할 정도로 ‘기초체력’이 우량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롯데건설의 이자보상비율은 2021년에도 무려 1777%(영업이익이 이자의 약 18배)에 달했다. 그러나 2022년엔 436%로 급락하더니, 2024년 97%, 2025년에는 64%까지 쪼그라들었다. 영업이익으로 금융권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한다.

과거라면, 그룹의 캐시카우 노릇을 하던 롯데케미칼이 롯데건설의 유동성 충격을 큰 무리 없이 흡수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롯데그룹의 대표 제조업체인 롯데케미칼마저 경영난에 처한 상태다. 롯데케미칼은 2018~2021년만 해도 매년 1조원대 영업이익을 올리며(2020년만 3570억원), 우량한 현금흐름을 자랑했다. 그러나 2022년, 영업손실 7626억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하더니, 2025년에는 손실 규모가 9400억원대까지 추락했다. 4년 연속 적자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몇 년 동안 매년 2조~3조원대의 유형자산투자(CAPEX)를 이어왔다. 그러나 이 투자가 집중된 영역은 에틸렌·폴리프로필렌 등 석유화학산업 부문의 중간재 생산 시설로 평가된다. 중국 업체들과 가격경쟁이 치열한 ‘범용 석유화학 제품’의 생산능력 확대에 집중한 것이다. 배터리 등 신성장 동력에 사활을 건 LG화학 등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셈이다. 롯데케미칼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R&D) 비중은 2018~2025년 내내 0.5~0.7%에 머물렀다.

많은 돈을 썼지만, 그것이 장기 성장동력으로 돌아올지는 의심스러운 상태다. 그러나 이 대규모 투자가 롯데케미칼의 현금흐름에 이롭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투자와 운영비를 모두 지출하고 남은 ‘실질적인 현금 잉여’는 2022년부터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대체로 –7000억에서 –2조9000억원 수준이었다. 롯데케미칼은 더 이상 그룹을 떠받치는 캐시카우가 아니라 스스로 대규모 자금을 소모하는 회사로 체질을 바꾼 것이다.

더욱이 이런 와중에도 롯데케미칼은 2022년 10월 롯데건설에 5000억원을 빌려주고, 같은 해 11월에는 876억원을 유상증자에 출자했다. 이미 영업적자로 돌아선 이후의 시기였다. 2025년 현재 롯데케미칼의 순차입금은 7조5000억원, 이자비용은 6000억원 수준에 이른다. 그룹의 한 축이 무너지는 동안, 다른 한 축도 그 충격을 완화할 만큼 건강하지는 않았던 셈이다.

이것은 단지 롯데라는 한 그룹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체질적 문제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제조업과 기술혁신으로 미래 경쟁력을 키우기보다, 부동산 개발과 신용 팽창을 통해 단기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향이다.

‘한국 특유 PF’는 그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다. 외형적으로는 시행사와 건설사, 금융기관이 협력해서 부동산을 개발하고 이에 따른 위험을 나눠 갖는 기법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투기 성향을 자극해서 미래 리스크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부풀렸다. 더욱이 건설사의 부실화는 그룹 내 다른 계열사로 전염되기도 한다. 부동산 PF는 건설사의 사업 리스크에 그치지 않고 그룹 전체의 성장 능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자본이 기술과 연구개발(R&D)을 통한 장기 성장동력 구축 대신 손쉬운 부동산 지대 추구와 걷잡을 수 없는 우발부채의 늪으로 흘러가는 것은 치명적인 시스템 리스크다. 롯데의 위기는 한국 자본주의 전반이 앞으로 직면할 수 있는 최악의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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