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서 죽은 이가 많은데 ‘유족’이 없는 이유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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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국회에 천막을 친 아버지는 니트 셔츠에 얇은 겉옷만 걸치고 있었다.
그는 "정말 많은 사람이 쿠팡에서 일하다가 죽었다는데 정작 유족은 없다. 유족이 산업재해 신청을 못 하게 쿠팡이 뒤에서 합의해, 산재로 인정돼 드러난 죽음이 없는 것"이라며 "쿠팡과 싸움이 고작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일지라도 우리 아들처럼 일하다 죽어선 안 된다는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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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국회에 천막을 친 아버지는 니트 셔츠에 얇은 겉옷만 걸치고 있었다. 곧 다가올 겨울을 대비해선 배낭에 있는 패딩조끼 하나뿐이었다. 그는 5월28일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씨엘에스) 남양주2캠프 굿로지스대리점에서 택배기사로 “개처럼 뛰고 있다”던 고 정슬기씨의 아버지 정금석(69)씨다. 아들이 숨진 지 5개월째지만, 아직 사과를 듣지 못한 아버지는 23일 국회 앞에 섰다.
정씨는 방글라데시에서 10년째 선교사로 활동했다. 그는 “그때가 방글라데시 시간으로 오후 4시30분였다. 아들이 떠났다는 전화를 받았던 시간이”라며 그날을 떠올렸다. 이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눈 앞이 캄캄했다. 여권 하나 들고 부랴부랴 한국에 왔다”며 “한국에 오면서 내 하나님께 ‘왜 내게 이런 아픔을 주시느냐’고 외쳤지만, 지금도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고 뒤 이틀 만인 5월30일 한국에 겨우 도착한 정씨의 삶은 이날부터 멈췄다.
그는 “아들이 떠나기 20일 전인 어버이날에도 아들과 통화했다”며 “아내가 ‘몸 조심하라’고 하니까 아들이 “제가 아들이 넷이에요. 일 열심히 해야죠’라고 하길래 그땐 그저 대견해했다”고 했다. 뿌듯해하던 마음은 이젠 후회로 남았다. 그는 “알고 보니 쿠팡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더라. 한번만 검색해볼걸…. 그걸 안했다”며 “그런 곳인 줄 알았으면 일 못 하게 뜯어말렸을 텐데, 지켜주지 못했다”고 고개를 떨궜다.
슬기씨는 지난해 4월부터 쿠팡 심야 로켓배송 택배기사로 주 6일, 1주 평균 73시간 이상(야간근로 가산) 일하다, 지난 5월28일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10일 슬기씨가 주 6일 고정 야간근무를 하면서,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를, 배송마감으로 인한 정신적 긴장상태에서 했다는 점을 들어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떠난 뒤 살아갈 가족들도 걱정이다. 그는 “손주 네명 모두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며 “가족 중 한 사람이 없어지면 그 가정은 무너진다. 누가 대신해줄 수가 없다. 어린 손주들이나 며느리의 상실감은 어떻겠냐”고 했다.
정씨는 아들의 죽음 뒤 쿠팡의 책임을 묻기 위해 싸워왔다. 2020년 대구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숨진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지난 8월 쿠팡 시흥2캠프에서 두 사람이 할 일을 홀로 하다 숨진 고 김명규씨 아내 등 유가족을 만나 연대하고 있다. 그는 “정말 많은 사람이 쿠팡에서 일하다가 죽었다는데 정작 유족은 없다. 유족이 산업재해 신청을 못 하게 쿠팡이 뒤에서 합의해, 산재로 인정돼 드러난 죽음이 없는 것”이라며 “쿠팡과 싸움이 고작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일지라도 우리 아들처럼 일하다 죽어선 안 된다는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정씨도 쿠팡 대리점으로부터 합의금 1억5천만원과 함께 산재를 신청하지 말라는 취지의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이후 유족급여 신청을 했고, 아들의 죽음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아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쿠팡에게서 이버지는 아직 사과를 듣지 못했다. 홍용준 쿠팡씨엘에스 대표는 지난 1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쿠팡과 관련된 업무를 하시다가 돌아가신 고인과 유가족분께 진심으로 애도의 말씀과 함께 죄송하다”고 했다. 홍 대표의 말에 정씨는 “허공에 한 사과가 무슨 사과냐. 우리 가족에겐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쿠팡은 이제라도 사과하고 사람들이 더이상 죽지 않도록 재발 방지를 약속해달라”고 했다.
매서운 추위가 예고된 한국의 겨울이 아버지에겐 10년 만이다. 그는 “여름옷만 달랑 들고 왔는데 곧 겨울이 온다”며 “쿠팡에 사과를 듣는게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고 했다. 이어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는데, 정부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며 “국회라도 관심을 가져달라. 쿠팡 청문회를 열어 쿠팡에서 다시는 사람이 죽지 않도록 묻고, 대책 마련을 요구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는 지난 10일부터 쿠팡 청문회 개최를 위한 국민청원을 받고 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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