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평 나온 ‘밸류업 지수’에 기관들 투자할까
PBR 높아 기관에게 부담…흥행 불투명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밸류업 지수를 두고 투자 매력에 물음표가 붙고 있다. 금융주 등 대표적인 저PBR(주가순자산비율)주들이 편입되지 않은 가운데 수익성과 거리가 먼 종목들이 다수 포진하면서다. 향후 보완이 가능하지만 연내 밸류업 지수를 활용한 ETF(상장지수펀드) 출시 등도 앞둔 만큼 흥행을 위해선 대규모 자금 유입이 필수적이다.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연기금과 공제회 등 기관 투자자의 역할이 흥행에 핵심일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실제 기관들이 얼마나 나설지는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4일 밸류업 지수가 발표됐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지수가 발표된 다음날 구성 종목에 이름을 올린 종목들은 대부분 힘을 쓰지 못했다. 금융지주를 대표해 밸류업 지수에 이름을 올린 신한지주와 우리금융지주는 이날 각각 5.14%와 1.33% 하락했다. 지수의 상승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된 건강관리 등 업종도 2~3%대 약세를 보였다. 26일 일부 종목이 전날 낙폭을 회복하고 있지만 미국 반도체 훈풍에 따른 영향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증권가에서도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종목 구성과 관련해 의아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주주환원과 더불어 밸류업 측면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며 시장의 기대를 받았던 은행주. 통신주 등이 대거 탈락했다. 일반적인 밸류업 종목으로 여겨지는 이들 저PBR 종목 보다 이미 시장에서 제값 이상으로 쳐주는 고PBR 종목이 주로 포함됐다. 이렇다 보니 거래소가 내세운 선정 기준의 적정성에 설왕설래가 오가는 것이다.
신희철 iM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종목 선정 기준은 과거 데이터만을 기준으로 종목을 선정하는 경우가 있어 현재 시장상황을 잘 대변하지 못하거나 주요 종목이 미포함되는 경우가 발생했다"며 "수익성 측면에서도 과거 적자 여부만 판단하며 성장성이 고려되지 않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올해 당기순이익 기준 역성장이 전망되는 기업 개수는 17개이고, 성장률 20%를 하회하는 종목 수 비율도 42%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해외 투자은행 등에선 보다 강도 높은 혹평이 나왔다. 홍콩계 크레디리요네(CLSA)는 '밸류 다운?(Value-down?)'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구성 종목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투자자들의 피드백을 반영해 구성 종목을 바꾸지 않는다면 (밸류업) ETF로 자금 유입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위스 투자은행 UBS 역시 "시장 참가자들이 (밸류업 지수와 관련해) 귀중한 조언을 했지만,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논란은 밸류업 지수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거래소와 시장의 차이가 존재한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거래소는 PBR이 높은 종목을 주로 편입하면서 우수한 기업엔 자금이 투입되고, 미포함 된 기업은 참여를 위해 밸류업 노력을 유도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상했다. 반면 저평가 기업을 편입해 주가를 부양하기 위한 지수로 여겨 온 시장의 판단과는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흥행의 핵심 기관, 고PBR 종목 다수에 참여 미지수
거래소는 올해 11월 중 밸류업 지수를 추종하는 선물과 ETF 상장도 진행할 예정인 만큼 흥행의 고삐를 당겨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출발부터 삐걱대자 흥행에 먹구름이 꼈다는 전망이 나온다. 거래소는 연기금을 비롯해 국내외 기관 투자자 등 큰손들을 대상으로 지수 세일즈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들이 밸류업 지수를 벤치마크로 활용하거나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내놓아야 지수가 흥행할 수 있어서다.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와 각종 상품이 만들어지면 기계적으로 밸류업 종목들을 담게 돼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기관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지는 불투명하다는 분석이다. 지수 편입 종목 선정에서 높은 PBR과 높은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중요한 요소가되면서 저평가 주가 많이 탈락했기 때문이다. PBR이 낮은 저평가주를 선호하는 기관이 밸류업 지수에 대규모 자금을 집행할지는 불투명한 것이다.
특히 국민연금의 경우 국내 주식 운용 규모를 줄이는 추세다. 2017년 20% 수준이던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 목표치는 올해 15.4%로 줄었다. 국민연금은 중기 자산 배분안에 따라 2029년 말엔 국내 주식 비중을 13%까지 축소할 계획이다. 수익률을 제고해야 하는 국민연금 특성상 기대수익률이 높은 해외 주식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 매력이 떨어지는 밸류업 지수를 활용할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다만 국민연금은 밸류업 지수를 연기금의 수익성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활용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입장이다.
거래소는 일단 기관 투자자들의 참여에 기대감을 갖는 모습이다. 정은보 이사장은 지난 24일 밸류업 지수를 직접 발표하며 "해외에서 IR을 해보면 국내 밸류업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며 "11월, 12월이 되면 국내 기관 투자자 및 연기금 투자자만이 아니라 해외 투자자들이 많이 지수나 ETF 쪽으로 투자를 유치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밝혔다.
기관의 자금력에만 의존할 것이 아닌 투자자와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 밸류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윤정 LS증권 연구원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패는 결국 기업,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도가 좌우할 전망"이라며 "향후 밸류업 지수 ETF 출시 성과와, 밸류업 우수기업 인센티브 시행에 따른 기업 참여도 개선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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