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에서 시작해 시장을 장악하기까지. ‘메이드 인 차이나’의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DJI 드론 하나, 빌트록스 렌즈 한두 개, 고독스 조명까지. 카메라 가방 안에 중국 브랜드 제품으로 가득한 것이 이제는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중국 제품은 기능적으로 불완전하지만 저렴해서 구매하는, 즉 ‘싼 맛에 쓰는’ 제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시장 표준으로 자리할 만큼 중국 브랜드는 글로벌 카메라 시장의 중심에 있다. 드론 시장을 장악한 것을 넘어 지상의 촬영 기기까지 점령하는 DJI의 행보, 그리고 가격뿐 아니라 성능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중국 브랜드의 행보를 짚어본다.
DJI, 드론을 넘어 카메라 생태계로
카메라 시장 속 중국 브랜드를 논하면서 DJI를 빼놓을 수 있을까. DJI는 2006년 창업한 중국의 드론, 카메라 전문 제조사다. 물론 후술할 빌트록스 등의 렌즈 제조사, 그리고 스몰리그 등 여타 브랜드도 각자의 위치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DJI는 드론에 한해선 경쟁 상대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자랑한다.
국제무인항공기시스템협회(Association for Uncrewed Vehicle Systems International, AUVSI)의 조사에 따르면, DJI 드론으로 대표되는 중국산 드론은 미국 취미용 드론 시장의 90%, 산업용 드론 시장의 70%, 응급구조 드론 시장의 80%가량을 차지한다. 업계에 따르면 DJI는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약 80% 이상으로, 압도적인 1위다. 앞서 언급한 통계는 ‘중국산 드론’으로 통칭하지만 사실상 DJI가 막대한 지분을 가진 셈이다. 하늘에 뜨는 거의 모든 드론이 DJI 제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DJI는 고해상도 센서 기술, 3축 짐벌 안정화 기술, 고신뢰성 무선 영상 전송 기술, 이 세 가지 기술력이 장점이다. 특히 짐벌이라는 하드웨어 영상 안정화 장치 측면에선 초격차 기술력을 갖춘 탓에 타 제조사와 경쟁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DJI의 이런 기술력을 지상 촬영 기기에 이식하며 시장에 파란을 일으킨 제품이 있는데, 바로 ‘오즈모 포켓’과 ‘오즈모 액션’ 시리즈다.

오즈모 포켓 시리즈는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짐벌 촬영 기기다.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고 가벼운데, 그 자체로 짐벌인 촬영 기기라 1인 촬영 또는 브이로그 촬영에 유리하다. 특히 디지털카메라에 비하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1인치 센서에 4K 60p 촬영까지 가능한 덕에 유튜버와 브이로거 사이에선 사실상 ‘국민 카메라’로 꼽힐 만큼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한편 오즈모 액션 시리즈는 전면 스크린을 과감히 도입하는 등 제품이 나올 때마다 혁신적인 기능을 탑재하며 액션캠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액션캠이 익스트림 스포츠 촬영 용도라는 고정관념을 허물고, 브이로그와 셀프 촬영까지 사용 범위를 넓히는 전략이 적중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지난 10월 중국의 시장조사업체 주첸 컨설팅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글로벌 액션 카메라 시장 매출 점유율에서 DJI가 66%로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DJI가 액션캠 시장에서 정상을 차지한 이유가 오즈모 액션 시리즈의 혁신 때문만은 아니다. 액션캠 시장의 선두 주자였던 고프로는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별다른 기술혁신 없이 가격과 성능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기면서 대부분 소비자에게 신뢰를 잃었다. 변화하는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한 것이 DJI의 성공 비결인 셈이다.
애플의 전략으로 시장을 지배하다
각각의 제품마다 뛰어난 성능을 탑재하기도 했지만, DJI의 시장 장악력은 근본적으로 철저한 전략에서 비롯된다. DJI의 전략은 자사 제품 간 ‘호환성’이다. 테크 기기에 관심이 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기업이 떠오를 것이다. 호환성은 애플이 테크업계를 장악한 핵심 전략이다. 흔히 ‘사과 농장을 키운다’는 표현처럼, 애플은 자사 제품의 연동성을 극대화해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을 고수해 왔다. DJI도 이 같은 전략으로 자사 촬영 기기 생태계를 갖추며 시장점유율을 높였다.

DJI 연동성의 핵심은 의외로 촬영 기기가 아닌 ‘마이크’다. DJI 마이크는 작고 가볍고 성능도 뛰어난, 기기 자체로도 경쟁력을 갖춘 무선 마이크다. 그러나 DJI 마이크의 진정한 강점은 DJI 촬영 기기와 수신기 없이 블루투스로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초기 설정만 해놓으면 번거로운 과정 없이 촬영 기기와 마이크가 연동된다. 이런 편리함 덕분에 오즈모 포켓, 오즈모 액션 시리즈 사용자가 DJI 마이크를 구매하거나, DJI 마이크 구매자가 DJI 촬영 기기를 구매하는 순환 고리가 형성되었다.
향후 지속될 DJI의 영향력
DJI의 거침없는 행보는 현재진행형이다. 매해 DJI의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업계 판도가 흔들릴 정도다. 지난 10월 출시한 ‘DJI 드론 미니 5 프로’는 약 250g의 초경량 설계에도 불구하고 1인치 센서를 탑재해 드론 시장의 최강자 자리를 공고히 했다. 소형 촬영 기기의 다음 세대인 오즈모 포켓4, 오즈모 액션6도 연내에 출시된다는 소문에 업계가 술렁이는 중이다.
가장 주목할 대목은 미러리스 카메라 시장 진출이다. DJI는 2017년 스웨덴 명품 카메라 브랜드 ‘핫셀블라드’를 인수했다. 당시만 해도 업계는 드론 카메라 고급화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했으나, DJI는 그 이상을 바라본 것. 핫셀블라드의 카메라 제작 노하우에 DJI의 촬영 기술력이 만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대중의 기대와 업계의 긴장이 공존하는 시점이다. 캐논, 소니, 니콘 등 기존 전통 강자 브랜드가 구축한 카메라 시장에 DJI가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해도 좋다.
빌트록스, 가성비에서 프리미엄까지
DJI의 행보가 압도적이어서 그렇지, 시장을 뒤흔드는 건 DJI만이 아니다. 카메라 렌즈 업계에서도 중국 브랜드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경쟁 제품 대비 터무니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가성비’ 영역을 장악하고, 점차 성능을 높여 고급 제품 라인업까지 경쟁력을 확보해 가는 중이다.
흔히 대중에게 익숙한 카메라 브랜드, 즉 소니, 캐논, 니콘 등의 브랜드에선 카메라와 함께 렌즈도 제작한다. 카메라와 동일한 브랜드의 렌즈를 ‘퍼스트 파티’ 렌즈라고 부른다. 퍼스트파티 렌즈는 성능은 물론 동일 브랜드의 제품인 만큼 카메라와의 일체감이 장점이다. 다만 높은 가격이 단점인데, 이를 보완하는 것이 별도의 렌즈 제작 브랜드 제품, 즉 ‘서드파티’ 렌즈다. 서드파티 렌즈는 성능 면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감수한다면, 퍼스트파티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준수한 화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 덕분에 입문자부터 중상급자, 때론 프로 사진작가도 서드파티 렌즈를 애용한다.
서드파티 렌즈 시장의 대표 주자는 시그마, 탐론 그리고 국내 기업 삼양이다. 이들의 3파전 형국이 오래도록 유지되어 왔으나 최근 빌트록스, 시루이, TT아티산, 라오와 등의 중국 렌즈 브랜드가 이 구조를 완전히 뒤흔들고 있다.
두각을 드러내는 브랜드는 빌트록스다. 기존의 렌즈 제작사 대비 저렴한 자동초점(AF) 렌즈를 만들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수동이 아닌 AF 렌즈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데, 빌트록스의 AF 렌즈 제작은 중국 제조사들도 광학기술을 넘어 정밀한 소프트웨어 기술을 확보했음을 시장에 증명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서드파티 렌즈 브랜드를 향한 일종의 선전포고인 셈이다.

2021년 첫 AF 렌즈를 선보였을 당시에는 10만원대로 가격이 저렴한 만큼 렌즈의 성능도 떨어지는, 말 그대로 ‘싼 맛에 쓰는’ 렌즈였다. 상황이 뒤바뀐 건 빌트록스 ‘프로(Pro)’ 라인업이 시장에 나오면서부터다. 2022년 출시한 ‘AF 75mm F1.2 Pro’는 F1.2라는 밝은 조리개와 뛰어난 선예도를 보이며 빌트록스의 하이엔드 렌즈 라인업의 포문을 알렸다. 이를 시작으로 빌트록스의 렌즈는 기존 서드파티 3사의 하이엔드 렌즈와도 견줄 만큼 뛰어난 성능을 보인다. 여러 중국 렌즈 브랜드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화질과 디자인, 가성비까지 두루 갖춘 덕에 렌즈 시장에서도 빌트록스의 움직임을 주목한다.
호환성에서 틈새시장까지.
중국 카메라 브랜드는 각자의 무기로
시장 질서를 뒤흔든다.
가장 무서운 건 이 모든 전략의 바탕에
깔린 압도적인 가성비다.
서드파티 렌즈 틈새시장을 공략하다
그 외 중국 브랜드는 각각의 개성으로 승부한다. 시루이는 원래 카메라 삼각대 판매 브랜드로 인지도를 쌓아왔는데, 2019년 무렵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아나모픽 렌즈를 처음 선보였다.
아나모픽 렌즈는 흔히 영화 촬영용 카메라 렌즈로, 수동 렌즈이면서도 일반 카메라 렌즈 대비 매우 고가에 판매된다. 그런데 시루이에선 이를 저렴하고 가볍게 출시, 심지어 최근에는 AF 렌즈를 선보이면서 자사만의 독자 노선을 걷는 중이다.
7아티산스와 TT아티산은 레트로 디자인에 수동 초점 렌즈로 승부한다. 렌즈 가격도 대부분 20만원 전후로 저렴한 편이다. 빈티지 느낌을 경험하고 싶은 사용자층에게 매력을 어필한다. 라오와는 특수 렌즈 전문 브랜드로, 독특한 렌즈를 출시하는 브랜드다. 보통 초광각 렌즈는 볼록렌즈처럼 왜곡이 심한 어안렌즈로 출시하는 것이 보통인데, 왜곡 없는 10mm 렌즈를 출시하거나 피노키오처럼 코가 긴 접사렌즈를 선보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독특한 행보를 통해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브랜드다.


카메라 세계관을 통째로 장악한 중국
중국 브랜드의 확장은 카메라와 렌즈에서 멈추지 않는다. 조명과 액세서리 그리고 필름 시장까지 ‘촬영’이라는 행위를 둘러싼 인프라 자체를 장악하려는 모양새다.
고독스는 조명 시장의 판도를 뒤집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 조명업계는 프로파일과 브론컬러 같은 유럽 브랜드가 지배했다. 뛰어난 성능과 신뢰도를 갖춘 브랜드지만 역시나 높은 가격이 대중에겐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고독스는 여타 중국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가성비로 업계를 장악해 갔다. 기존 브랜드 가격의 5분의 1 수준으로 준수한 성능을 갖췄으며, DJI와 마찬가지로 ‘연동성’을 무기로 내세웠다. 하나의 동조기로 자사 제품 전체를 제어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조성한 것. 저렴한 가격과 편리함 덕에 아마추어 촬영자 사이에선 합리적인 제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스몰리그는 카메라 케이지 등 액세서리로 유명한 브랜드로, 스몰리그 또한 케이지를 중심으로 자사 제품 간 연동성을 강점으로 내세우며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카메라와 렌즈를 넘어 촬영 생태계 대부분은 이미 중국 브랜드가 장악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중국의 필름 제조 회사 럭키필름이 2012년에 단종된 35mm 컬러 네거티브 필름 ‘럭키 C200’을 13년 만에 재출시했다. 올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생산 라인을 가동해 필름을 대량생산할 예정이며, 추후엔 중형 필름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언뜻 다른 이야기 같지만, 중국이 최근 카메라에 얼마나 진심인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카메라업계가 아니어도 중국 제품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중국 브랜드 제품이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적어도 카메라업계에선 체감하는 바가 다르다. 머지않은 미래의 일이거나 혹은 이미 다가온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ㅣ 덴 매거진 2025년 12월호
에디터 정지환 (stop@mcircle.biz)
일러스트 장인범
Copyright © 저작권자 © 덴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