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노인은 왜 선릉역에 갔을까?…‘흔적’이 남았다

서영민 2024. 10. 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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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 답을 아는 질문 :

지금 서울 어디를 가면 어르신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나요?

탑골공원이요. 어렵지 않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심지어 비가 올 때도) 탑골공원이다. 종로 3가, 탑골공원, 종묘, 안국역, 그리고 종로의 뒷골목들. 노인의 쉼터였던 그 공간 중 일부는 이제 젊은이들도 '노포'를 찾아 방문하는 거리가 되었다.

약간 덜 알려진 팩트 하나 말하자면, 이곳에는 '이발소'가 많다. 취재 중에 만난 한 노인, 종로3가 주변에 어르신 이발소가 200개는 된다고 했다. 탑골공원 주변을 돌아보면 실제로 한 집 건너 한 집이 이발소다.


왜일까? 우선 이유는 가격이다. 커트가 6,000원, 일반염색도 6,000원이다. (덜 가려운 염색은 8,000원) 가격은 거의 그 수준에서 대동소이하다. 믿을 수 없는 가격이 가능한 이유는 거꾸로 '수요'다. 고객이 많기 때문에 공급자도 가격을 내릴 수 있다.

다른 이유는 이발사도 '노인'이어서다. 인건비가 저렴한 편이다. 취재진이 방문한 이발소에서 근무하는 박근원 이발사는 안양에서 출퇴근한다. 올해 66세, 출퇴근 지하철이 무료다. 그는 "이 동네에서 내가 막내 이발사라고 소문났다"며 웃었다. 그는 노인들이 "사람 구경도 하고, 바람도 쐬고, 요금도 싸고, 무엇보다 동네에 이발소는 다 없어졌기 때문에 시간 보내러 온다"고 말한다.

은퇴한 노인들이 싼 이발소를 찾아오고, 또 은퇴한 이발사도 집에서 쉬느니 일한다고 이곳으로 나온다.

그럼, 이제 조금 더 어려운 문제를 내보자

■ 가난한 노인은 왜 선릉역으로 갈까?

배경 설명을 하자면 선릉역에서 나서면 고층 빌딩이 즐비하다. 테헤란로다. 건축학 박사인 김승범 VWL 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선릉역이 있는 테헤란로는 70년대 말 이후 개발된 지역입니다. 50년대에 많이 지어진 낮고 오래된 건물 가득한 강북과는 다르죠. 대부분 고층 빌딩입니다. 이런 곳은 노인이 없습니다. 특히 가난한 노인의 흔적이 있기는 어렵습니다."

선릉역 사거리 부감


그러니 의외다. 취재진이 빅데이터 분석을 해봤는데, 이 고층빌딩 숲인 선릉역에 노인이, 그것도 가난한 노인이 모인다. 분석 틀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가난한 노인들의 '출발지'와 '도착지' 정보를 활용한다. 휴대전화 데이터다. 동시에 일정 수 이상의 노인들이 모이는 지점을 찾는다. 그 결과 이른바 '거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숫자가 선릉역에 모인 것이다. 가난한 노인의 거점, 강남에서는 선릉역이 유일했다. (수서 등 임대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 제외)

잠시 이 빅데이터 분석을 소개하자면, (시간이 없다면 이 상자는 넘어가도 좋다)

빅데이터는 KT의 이동통신 데이터다. 이정숙 KT AI 빅데이터 사업본부 차장은 "하루 약 천억 건 정도의 데이터가 쌓인다"며 이를 생활 인구와 유동 인구, 관심사 인구 등의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KT의 도움으로, 이 가운데 60세 이상의 노인 데이터를 추출해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2021년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매년 5월 한 달의 평일 데이터를 이용했다. 노인이 어디에서 출발해 어떤 속도로 어떤 목적지에 들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지를 가로세로 250미터 격자 단위로 구분해 분석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다. 빅데이터 분석과 시각화 전문가인 김승범(건축학 박사) VWL 소장과 강범준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와 협업했다.

취재진은 특히 KT의 요금할인에 주목했다. KT는 정부 생계급여 수급자 등 정부 공적 이전지원 대상자(생계, 의료, 주거, 교육 급여 등)와 장애인 등에게 휴대전화 요금을 할인해주고 있다. 이 요금할인을 받는 60대 이상 연령을 '가난한 노인'으로 보고 분석했다.

*모든 데이터는 개인을 전혀 식별할 수 없도록 익명화 처리하여 활용했다*

@VWL의 데이터 시각화. KT의 ‘노인 이동’ 빅데이터를 수많은 붉은 직선으로 시각화했다. 밝을수록 ‘노인의 흔적’이 많이 겹쳐진 곳이다.

김승범 소장은 기지국 위치나 중복 데이터, 노이즈 등의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아니라고 판단했다. "어떻게 보면 (가난한 노인의 흔적은) 없어야 하는데 많다. 어떤 특정한 사회적 현상이 있기 전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모일 수 없다"고 조언했다.

직접 가 볼 수밖에 없었다. 답을 찾아서.

■ "어른들 피해 주는 것 알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예요? 지하 1층으로 가보세요"

노인들은 실제로 많았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어르신들이 왜 이곳에 오시는지 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아이고 이런 이런 (손사래)
=시간이 없어요. 우리 형님 만나러 왔어요.
=우리는 노인 아니에요.

손사래 치는 사람들 사이로 길을 찾는 노인들을 만났다. "회사가 이사를 해서 새 사무실을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60대로 보이는 여성, 그리고 70대 후반이 넘은 듯한 남성이었다. 그들은 길 찾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우리 회사는 글로벌 회사, 전자상거래로 잘 나가는 회사"라고 했다. 좁은 데서 넓은 곳으로 이사를 왔다는데 더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는 "네트워크 혁명을 일으키는 회사"라며 주력사업은 "블록체인과 전자상거래, 게임"이라고 했다.

지역 주민들과 직장인들은 익숙한 듯했다. "어르신들은 다 '다단계 사무실'로 들어가시겠죠."라고 했다. 취재진에게 "어른들 막 피해주고 그런 거 지금 알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냐고 물어봤다. 그러면서 "지하 1층으로 가보라, 지하에 많다 그러더라"고 했다.

지하에는 건강식품 회사처럼 보이는 곳의 사무실이 있었다. 그 앞에서 노인을 만났다. 그는 "너무 좋은 회사"라고 했다. "2시 반에 (수업이) 끝나면 떡도 준다. 돈 벌어가라고 바닥에 다 방석 깔아주는 거나 마찬가지다. 행운 번호도 나눠준다고 했다. "처음 오는 사람은 제품을 나눠주고 그다음에 주식, 그다음에는 현금도 봉투에 넣어서 준다"며 "특허도 있고 절대 불법이 아닌 회사"라고 강조했다. 활짝 웃는 노인은 그러면서 "살짝 들어보시고(웃음) 이따 떡이나 잡숴.”라고 했다.

답은 다단계였다. 놀랍게도, 선릉역은 어르신들을 상대로 한 다단계 사업의 중심으로 보였다. 찾아보니 언론에서도 '코인 다단계'나 '각종 생활용품 다단계' 사건으로 다뤘다. 한 언론은 '선릉역은 어떻게 노인들의 '핫플'이 되었나'를 다뤘다.

데이터 분석을 해보니 선릉역의 서쪽에 '가난한 노인'의 집결지가 관측됐다.


우리 데이터 분석은 바로 이 '사회적 현상'을 비추고 있었다. 이번 데이터 분석의 의미는 이곳에 오는 노인들이 '가난한 노인들'이라는 점을 특정했다는 점에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지만 '넉넉한 노인'이 노년에 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할 유인은 크지 않다. 생계비가 부족한 사람, 앞날이 걱정인 사람들이 이곳에 모일 수밖에 없다.

즉, 선릉역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가난한 노인'의 거점이다.

(다단계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처음부터 '속일 의도가 있었는가?' 등 복잡한 형사법적 조건에서만 처벌이 가능하다. 그래서 수많은 언론 보도에도 불구하고 '#선릉역_노인_핫플'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노인들을 상대로 한 교활한 영업행태도 여전하다. 이 실태가 궁금할 경우 KBS 시사 직격<지옥문이 열리다 - 노년을 노리는 코인 다단계의 덫> (145회, 22년 12월) 편을 참고할 것.
바로가기 : https://youtu.be/sOMTzpxB7dU?si=ZOwoQ0v_YrFyF-u4

■ 가난한 노인들, 밤이 되면 어디로 몰려가는가

빅데이터는 노인들이 밤에 있는 곳도 가르쳐 준다. 밤 10시에서 새벽 3시 사이, 5시간 동안 데이터가 멈춘 곳을 분석해 봤다. 단위는 가로세로 250미터다. (서울을 이 촘촘한 단위로 구분해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은 이 이동통신 데이터가 유일하다) 데이터가 이렇게 멈추는 곳, 즉 노인들이 밤에 쉬는 곳은 바로 '주거지 정보' 일 수밖에 없다. 서울대 강범준 교수는 이 데이터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특정 인구 그룹의 정확한 거주지의 위치를 찾는 게 사실은 쉽지가 않습니다. 밤 10시부터 그다음 날 새벽 3시까지. 그러니까 그 시간에 휴대전화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거주지에 계실 확률이 높죠. 행정적인 자료를 쓰지 않고 직접적으로 이분들이 어디에 실제로 거주하고 계시는지 그 위치 정보를 다른 어떤 데이터보다 정확하게 특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정부도 노인들이 어디 사는지 정확히 특정하기는 쉽지 않다. 주민등록지가 사는 곳이 아닌 경우가 부지기수다. 특히 가난한 노인들은 그렇다. 게다가, 이들은 행정사무 관청의 질의에도 잘 답하지 않는다.

물론 정부는 공식 통계로 이런 취약계층 노인들의 상태를 파악하긴 한다. 다만, 시차가 있다. 최소한 1~2년이 걸리고 때로는 3~4년에 한 번씩 발표해서 최신 경향을 즉시 알기는 어렵다. 따라서 빅데이터 분석은 '현실을 정확하게, 그리고 거의 실시간에 가깝게 빠르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지닌다.


이 내용은 오늘 밤 10시 KBS1TV 시사기획 창 <흔적>에서 전한다. 부제는 '가난한 노인들의 낮과 밤'이다. 가난한 노인이 낮과 밤에 어디로 이동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어려움은 왜 변하지 않는지 살핀다. 동시에 이 어려움이 얼마나 '한국적'인지, 우리는 왜 OECD 최악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을 십수 년 넘게 지속하는 불명예를 안고도 이를 바꾸지 못하는지 응시한다. 진지한 고찰 속에서 해법도 나오리라 믿는다.

■가난한 노인의 낮과 밤, 『흔적』
■방영 일자: 2024년 10월 29일 22시 1TV 시사기획 창
■취재: 서영민 / 촬영: 윤희진 / 편집 : 여동용 / 취재지원·리서치: 김예진/ 조연출 : 최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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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민 기자 (seo01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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