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개막작에 칸까지 갔는데 국내에서는 청불이었다…지금도 걸작 소리 듣는 이유"

🔴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영화 — '나 다시 돌아갈래'는 어떻게 탄생했나

이창동 감독은 어느 날 거울 앞에서 자신의 망가진 얼굴을 보고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싶었다고 한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니, 영화라는 예술을 통해 그 욕망을 실현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구조가 영화의 결말에서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 서사다. 기차가 철로 위를 거꾸로 달리는 장면은 이 영화 전체의 선언이자, 한 남자의 인생을 20년치 역추적하는 엔진이 된다.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처음 공개됐을 때 관객들은 이 구조 하나만으로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 5.18, 고문, 외환위기 — 한 남자를 망가뜨린 것은 시대였다

순수했던 청년 김영호(설경구)가 파국을 맞는 건 그의 선택 때문만이 아니다. 1980년 5월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돼 실수로 여고생을 쏴 죽인 것이 그의 내면을 처음 균열시켰다. 이후 고문 경찰이 되어 폭력에 길들여지고, 1997년 외환위기의 파도에 모든 것을 잃으며 삶의 벼랑 끝에 몰린다. 영화는 이 과정을 역순으로 배치해 '어쩌다 이렇게 됐나'라는 질문을 관객 스스로 따라가게 만든다. 개인의 파멸이 동시에 한국 현대사의 상처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인물 드라마를 넘어선다.

🔴 설경구라는 이름이 탄생한 순간 — 첫 주연에 트로피 네 개

'박하사탕'은 설경구에게 데뷔작이자 출세작이었다. 첫 주연을 맡은 작품에서 대종상 신인남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신인연기상,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동시에 거머쥐는 전무후무한 성과를 냈다. 신인상과 주연상을 같은 작품으로 함께 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영화 자체로도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시나리오상, 여우조연상(김여진) 등 주요 5개 부문을 석권했다. 그 이름 없던 배우가 이 영화 한 편으로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신뢰받는 배우의 자리에 올라섰다.

🔴 새 천년 첫날 개봉, 청불인데 수도권 29만 — 이게 왜 이례적인가

2000년 1월 1일, 새천년의 첫날에 이 영화가 극장에 걸렸다.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무거운 사회비판 영화가 당시 멀티플렉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시장에서 수도권에서만 29만 명을 불러모았다. 칸 영화제 감독주간, 체코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에도 진출하며 이창동 감독을 국제 무대에 본격적으로 알리는 발판이 됐다. 씨네21 전문가 별점은 8.20, 관객 별점은 8.55로 25년이 지난 지금도 높은 평가를 유지하고 있다.

🔴 마지막 장면이 가장 밝다 — 그래서 더 잔인한 이 영화의 구조

역순 서사의 진짜 위력은 영화의 끝에서 드러난다. 7번째 챕터, 1979년 가을. 사진작가를 꿈꾸던 스무 살 청년 영호가 첫사랑 순임에게 박하사탕을 건네받으며 환하게 웃는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가장 순수하고 밝은 장면을 가장 나중에 배치함으로써, 이미 그 이후의 파국을 전부 알고 있는 관객에게 가장 깊은 타격을 입히는 구조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말하는 그 순간이, 동시에 가장 슬픈 순간이 된다. 조PD와 YB(윤도현밴드)가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각각 동명의 노래를 만들 만큼 이 결말의 여운은 오래도록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