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의 절규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 이제는 답해달라”

윤기은·이유진 기자 2022. 11. 2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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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24일 만에 첫 기자회견
“정부, 유족 모임 구성 등 회피
우리가 반정부 세력이라도 되나
대통령·정부에 사과 받아야겠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마지막으로 희생된 모든 아이들에게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한다 아이들아. 사랑한다. 우리 아들 남훈아.”

22일 오전 11시 ‘이태원 핼러윈 참사’ 유가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이 열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은 회견 시작부터 흐느낌으로 가득찼다. 희생자 유족이 언론 앞에서 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을 마친 6명의 유족은 차례로 참사에 대한 심경과 입장을 밝혔다.

희생자 이남훈씨의 어머니 A씨는 “이 순간, 이 자리, 이 시간에도 비참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아들의 영정사진 대신 살아생전 웃고 있는 사진을 가슴에 품고 왔다”고 했다. 그는 아들의 사망진단서를 들어 보이며 “사망일시 ‘추정’, 이태원 거리 ‘미상’. 사인은 ‘미상’이라고 쓰였다. 이게 말이 되나. 우리 가족은 아들이 죽은 원인을 이제는 알아야겠다”며 흐느꼈다. A씨는 정치권을 향해 “유족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진정성 있게 생각한다면 솔직해져라. 우리 아이들에게 사과하라. 책임 있는 자들, 대통령은 공식 사과하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희생자 이상은씨(25)의 아버지 B씨는 이 자리에서 딸을 향한 애끊는 심정을 드러냈다. B씨는 “오늘 여기서 (딸에게) 편지를 부친다”며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사랑하는 우리딸을 먼저 보낸 미안함, 지키지 못한 미안함에 가슴 치며 통곡해본다”라고 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공인회계사에 붙어서 ‘아빠, 나 합격했어’ 말하는 네 목소리를 듣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며 “좋은 소식 문자가 날아왔는데, 넌 갈 수가 없구나”라고 말했다. B씨는 “마지막으로 우리 딸 상은이 대신해 절규해본다”라며 “국가에 묻고 싶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가 어디 있었는지, 국가가 뭘 했는지, 이제 국가가 답을 해달라”라고 호소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온 이태원 참사 희생자 김인홍씨의 어머니 C씨도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아들은 30년을 빈에 살며 외국인이라는 신분으로 외로운 삶을 살았다. 그러다 연세대 어학당에 공부하러 한국을 찾았고, 이태원 참사로 희생을 당했다”며 “가장 힘든 건 나라를 이끄는 분들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C씨는 “지난 15일에야 아들을 데리고 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병원에서 사망 시각이 틀리게 적혔다. 외국인이다 보니 우리가 공증을 받아야 하는데 그 서류를 해결하는 데만 6일이 걸렸다”고 했다. 그는 “사과 한마디가 없어서 제가 아들을 데리러 가서 (병원의) 사과를 받아냈다”며 “이제는 정부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희생자 이민아씨(25)의 아버지 이종관씨는 “이번 참사에 고인의 명복을 빌며 함께 슬퍼해 준 여러분께 감사하다. 저희 딸은 방송통신대학 컴퓨터학과에 재학하며,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던 평범한 딸이었다”며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이 참사, 이 비극의 시작은 13만명이 모이는 인파 군중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며 “법률적 인과관계를 떠나 집회 대처와 대통령실 경호경비에 우선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경찰에도 참사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대규모 인파가 운집할 것으로 예상했음에도 미온적으로 대처한 행정안전부, 서울시청, 서울경찰청 등 관련 부서는 마땅히 비난받아야 한다”며 “158명이 사망한 것을 돌이켜 볼 때 누군가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고심 끝에 얘기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씨는 “참사 이후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유족들 모임 구성, 심리적 안정을 위한 공간 확보도 없었다. 사고 발생 경과 내용, 수습 진행 상황, 피해자의 기본 권리 안내 등 기본적 조치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참사와 관련해 가장 공감하고 서로 위안받을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유가족”이라며 “이를 차단한 것과 다름없는 정부 대처는 비인도적”이라고 꼬집었다. 이씨는 이어 “희생자 명단 공개 문제로 갑론을박하게 만든 것도 결국 유족이 만나는 공간을 (정부가) 제공하지 않아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족들이 무슨 반정부 세력이라도 되는 것이냐. 장례비·위로금은 그렇게 빨리 지급하면서, 정작 우리가 필요로 한 유족이 모일 공간은 참사 24일이 넘도록 마련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참사로 희생된 배우 이지한씨의 어머니 D씨도 “이 참사는 초동 대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일어난 인재이며 부작위에 의한 살인사건”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참사 당일 오후 6시34분부터 조치가 이뤄졌다면 희생자가 한 명도 없었을 것”이라며 “(책임자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려 숨만 쉬는 식물인간들로 이뤄졌다”고 했다. 희생자 송은지씨의 아버지 E씨 역시 “위에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안전 불감증에 의한 간접 살인”이라고 했다. 그는 “거짓말이나 일삼고 경찰, 소방 인력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 아니었다고 떠벌린 이상민 (행안부 장관), 보고 받은 적 없다고 일관하는 박희영 (용산구청장), 용산서장 이임재, 112 치안종합상황실장 류미진 등에게 꽃다운 우리 아들딸의 생명이 꺼져갈 때 뭐 했느냐고 묻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민변 ‘10·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지원 태스크포스(TF)’가 지난 15일과 19일 유가족과 두 차례 면담을 진행한 후 마련됐다. TF 소속 오민애 변호사는 “희생자 일가족이 이 자리에 서기까지 참사 24일이 지났다”며 “유족들은 정부로부터 참사와 관련해 어떤 설명도 들을 수 없었고, 서로 만날 방법과 기회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오 변호사는 이어 “참사 피해자는 지원 대상에 그쳐선 안 된다.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고, 재발발지 과정에서 관련 정보에 접근하고 의견을 개진할 주체여야 한다”며 “이는 재난참사 피해자 당연한 권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지원책을 일방 공표할 게 아니라 참사 당일 어떤 일 있었는지, 어떤 지원을 할 건지를 정확히 설명해야 했다. 유족 아픔과 어려움을 직접 들었어야 했다”며 기자회견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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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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