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는 비싸서 못 산다"는 말이 이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기아가 2026년형 EV5에 파격적인 가격 정책을 적용하며 내연기관 중형 SUV 시장에 정면 도전장을 내밀었다.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모두 끌어당기면 서울 기준 실구매가 3,400만 원 중반대까지 내려온다. 테슬라 모델 Y를 겨냥해 기아가 작정하고 꺼내 든 카드, EV5를 들여다봤다.

외관은 기아의 디자인 철학 '오퍼짓 유나이티드'를 바탕으로 정통 SUV의 강인한 실루엣을 재해석했다. 전면부의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과 수직형 헤드램프는 차폭을 실제보다 넓고 웅장하게 보이게 하며, 야간에는 더욱 존재감이 빛난다. 다만 차체를 길게 늘린 탓에 측면 중앙부가 다소 밋밋하고, 후면부 역시 트렁크 부분이 가장 돌출된 구조 탓에 전체적으로 다소 움츠린 인상을 주는 것이 아쉽다. 완성도 면에서 90점짜리 디자인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19인치 휠은 블랙 도장과 다이아몬드 컷팅으로 차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지만, 연비와 승차감 모두 손해를 보는 만큼 18인치 선택도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이다.

실내는 라운지를 연상케 하는 감성으로 꾸며졌다. 세 개의 화면이 하나로 이어진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가 시선을 압도하고, 운전 모드에 따라 색이 바뀌는 앰비언트 라이트가 감성을 더한다. EV5의 진짜 경쟁력은 공간 활용에 있다. 2열 시트를 완전히 눕히면 풀플랫 공간이 완성되어 차박이나 캠핑에 최적이다. 앞좌석 등받이에 달린 접이식 시트백 테이블은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특히 유용하다. 반면 스티어링 휠 사이에 배치된 공조 컨트롤은 운전 중 시선 밖에 있어 매번 고개를 숙여야 하고, 스마트폰 무선 충전이 이 가격대에서 옵션으로 분류된 점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성능 면에서 롱레인지 2륜 모델은 81.4kWh NCM 배터리를 탑재해 복합 기준 460km, 도심 기준 507km 주행이 가능하다. 중국 내수용 LFP 배터리가 아닌 NCM 배터리를 국내에 적용한 것은 한국의 혹독한 겨울을 고려한 현명한 선택이다. 350kW 급속 충전기 이용 시 10%에서 80%까지 30분이면 충전이 끝난다. 주행 감각은 EV3·EV4보다 다소 단단한 편이며, 칼럼식 MDPS 채택으로 스티어링 직결감이 다소 아쉽다. 그러나 스포티지·투싼 하이브리드와 비교하면 승차감은 확연히 우세하다. 날카로운 운전 재미보다 편안한 이동과 넓은 공간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잘 맞는 차다.

가격 구성을 보면, 기본 에어 트림은 스탠더드 배터리 기준 세제 혜택 후 4,310만 원에서 시작하며, 보조금까지 더하면 서울 기준 3,400만 원 중반까지 내려온다. 롱레인지 기준 국고 보조금은 최대 723만 원 수준이다. 연간 주행거리 1만 5,000km 이상이라면 고속도로 통행료 50% 할인 등을 포함해 스포티지 하이브리드 대비 실질적인 경제성 우위도 기대할 수 있다.

EV3는 작고 EV4는 디자인 호불호가 강한 상황에서, EV5는 중형 전기 SUV를 원하는 소비자에게 현재로선 국산 브랜드 내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다. 디자인 완성도와 일부 편의사양 구성에 아쉬움이 남지만, 3,400만 원대라는 실구매가와 풀플랫 공간, 안정적인 배터리 성능, 탄탄한 AS 네트워크는 이를 충분히 상쇄한다. 기아가 당분간 이 세그먼트를 주도할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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