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연비까지 갖춘 준대형 하이브리드 SUV의 등장, 토요타 하이랜더
한국 자동차 시장은 날이 갈수록 인기 차종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고 경차나 소형차의 판매량은 줄고 있다. 예전에 비해 레저 등의 수요가 상승해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넓은 공간을 선호하는 것인데, 문제는 차가 점점 커지는 만큼 연비는 그에 반비례해 점점 떨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한동안 디젤 차량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환경 문제 등으로 인해 시장에선 점차 디젤 라인업을 줄여가는 추세. 그렇다면 유지비가 경제적이면서도 공간이 넓은 선택지는 없는 것일까? 공간이 넓은 선택지는 당연히 SUV일 것이고, 최근 상황에서 경제적인 운용이 가능한 선택지라면 단연 하이브리드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시장에선 중형급 이상의 하이브리드 SUV는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이번에 하이브리드의 명가 토요타에서 7인승의 준대형 하이브리드 SUV 하이랜더를 국내에 처음 출시해 선택지를 넓혔다.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 지난 28일 시승회 현장을 찾아 실물을 살펴보았다.
토요타 하이랜더는 장수모델이라 부르기엔 아직 이른 모델이다. 2000년 뉴욕 오토쇼에서 처음 데뷔했으니 이제 20대를 갓 넘긴 젊은 모델인 셈. 이번에 출시된 모델은 4세대째로, 전반적인 모습은 과거와 달리 많은 변경이 이뤄졌지만, 각보다는 곡선 위주로 구성된 특유의 디자인은 그대로 이어지며 오프로드 지향보다는 패밀리 SUV를 추구하는 모습이다. 전면부에선 RAV4에도 적용된 사다리꼴 형태의 그릴과 헤드라이트 조합의 토요타 SUV 패밀리룩을 이어간다. 아래 통풍구 안쪽으로 안개등을 달았는데, 원형보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의 세로 형태를 채택했으면 디자인적으로 더 낫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측면에서는 볼륨감을 살린 차체가 인상적인데, 3열 창문을 이전 세대보다 더 슬림하게 디자인해 전체적으로 훨씬 날렵해진 인상을 보여준다. 후면에선 테일라이트를 헤드라이트와 닮은 형태로 구성해 스포일러와 함께 스포티함을 살리며, 볼륨감을 더하는 리어 펜더와 하단 리플렉터로 강인함을 연출한다.
실내에서는 신형 NX 이후 도입을 이어가는 신형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기반의 인테리어 덕분에 드디어 토요타도 시대에 발맞추고 있다는 느낌을 보여준다. 센터 디스플레이는 12.3인치로 큼직해 주행에 필요한 내비게이션 등의 정보를 시원하게 보여주며, 아래로 공조장치 제어를 비롯한 각종 물리 조작계를 배치해 주행 중에도 사용이 편리하다. 계기판 역시 12.3인치 풀 컬러 디스플레이로, 다양한 주행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주행모드나 사용자 선택에 따라 디자인이 바뀐다. 플래티넘 사양에는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더해져 시선 이동을 최소화하고 도로 상황에 집중할 수 있다.
시트는 대부분의 7인승 SUV의 2-3-2 배열이 아닌 2-2-3 배열의 7인승 구성이어서 2열 탑승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2열의 경우 독립형에 시트를 앞뒤로 조절 가능해 3열에 탑승자가 없다면 다리를 쭉 뻗고 편안하게 탈 수 있다. 대신 3열 탑승자의 경우 2열 시트 중앙을 통해 이동하거나 2열 시트를 앞으로 바짝 당겨 좁은 틈으로 탑승해야 하는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3열 시트는 2열 탑승자가 앞으로 당겨주면 탑승은 가능하지만 장거리 주행용은 아니라는 느낌으로, 바닥면도 꽤 높아 자세가 불편해 비상용이나 아동용 정도로 만족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도 2열 시트 탑승자를 위해 독립적인 공조장치 제어부와 USB 포트도 마련해놓았고, 파워 아울렛도 갖추는 등 편의성이 높다. 파워아웃렛의 경우 국내 출시 사양이 미국에서 만들어져 미국 사양을 기반으로 하는지라 110V만 지원하지만 그래도 1200W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프리볼트 제품을 잘 선택하면 활용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시트는 2열과 3열을 모두 접으면 바닥이 평평해지기 때문에 짐을 싣거나 차박 등의 용도로 활용하기에도 좋겠다.
차량 내외부를 살펴봤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달려볼 차례다. 오늘의 시승코스는 파주를 출발해 인천 영종도까지 100km의 구간이다. 대부분이 고속도로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체 구간에서 빛을 발하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인 만큼 조금은 불리한 조건인 셈. 여기에 이번 시승에서는 연비왕을 선발한다고 하는데, 공인연비인 13.8km/L(복합)에 딱 맞춘 사람은 1등, 그 이상을 달성한 사람은 2등으로 선발한다고 해 조금 신경 써서 달려보기로 했다.
파워트레인은 188마력의 2.5L 자연흡기 가솔린엔진에 134kW MG2 모터를 결합해 시스템 총출력 246마력의 성능을 낸다. 수치상으로야 폭발적인 성능을 보여줄 것 같지만, 가솔린엔진이 성능이 아닌 효율 위주로 세팅된 앳킨슨 사이클의 엔진은 그리 시원한 가속감을 보여주진 않는다. 마치 차 후미에 고무줄이 걸려있는 듯한 가속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까? 꾸준하긴 하지만 일반적인 내연기관의 가속력을 기대한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효율’에 중점을 맞춘 만큼 연비에 있어서는 상당한 수준을 보여준다. 동승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교통 흐름에 맞춰 달렸을 뿐인데 코스 절반도 달리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공인연비를 훌쩍 뛰어넘어 15km/L에 도달해있다. 분명히 가속 테스트 때문에 두세 번 정도 급가속을 진행했음에도 연비는 끝없이 치솟는다. 연비왕 중 1등을 차지하려면 연비를 높이는 것이 아닌, 연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다니. 하이랜더가 보여주는 의외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 사실 연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려 해도 할 수 있는 건 고작 다른 차량들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속도를 최대한 낮춘 후 급가속을 반복하는 정도인데, 차가 아예 없는 도로가 아니다보니 그것도 쉽지 않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연비를 높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지만, e-CVT 변속기와 사륜구동 시스템 E-four도 적잖은 영향을 준다. e-CVT는 가속력을 희생한 대신 부드러운 변속감과 최적의 변속 타이밍 설정 덕분에 변속이 이루어지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였고, E-four의 경우 알아서 앞뒤 바퀴에 배분되는 동력을 100:0에서 20:80까지 알아서 조절해주기 때문에 연비와 함께 승차감까지 높여준다.
패밀리 SUV를 목표로 하는 만큼 전반적인 승차감은 부드러운 편이다. 하이랜더의 기반인 TNGA-K 플랫폼이 유니바디 구조로 되어 있고, 여기에 서스펜션 세팅을 통해 승차감을 부드럽게 다듬고 ‘피치 보디 컨트롤’이라는 기술을 더해 승차감을 극대화했다. 이는 주행 중 차체가 앞뒤로 쏠리는 현상(pitch)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토크 제어와 함께 서스펜션 댐핑을 최적화해 급가속이나 감속시, 혹은 노면에 고저차가 발생하는 구간에서의 흔들림을 제어하는 것이다. 주행에서의 흔들림은 특히 장시간 주행에서 피로나 멀미를 유발하는데, 시승 동안 총 2시간 가까이 운전했지만 확실히 허리나 몸 전체에 피로감이 느껴지거나 하지 않아 보이지 않게 이 기술이 적잖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토요타 커넥트를 기반으로 LG유플러스의 U+드라이브를 더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토요타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만큼 화면 표시나 터치 등 입력에 대한 반응 속도 역시 즉각적이어서 답답하지 않게 사용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 역시 국산차에서 경험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필요한 정보를 놓치거나 하는 일이 없다. 특히 내비게이션은 통신형이어서 실시간으로 교통 정보를 제공하는데, 가입일로부터 3년간 무료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이 외에도 팟캐스트, 모바일 TV 등에 가입했다면 음악 스트리밍 등의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으며, 집안에 설비가 구축된 경우 U+스마트홈으로 조명이나 가전 등 집 안의 전자기기를 제어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음성인식 시스템이 더해져 내비게이션 목적지 설정이나 실내 온도 제어 등을 음성으로 명령할 수 있어 주행 중 편리하게 쓸 수 있다. 또한 안드로이도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 등의 커넥티비티 기능도 갖추고 있으며, 이 중 애플 카플레이는 무선 연결을 지원하기 때문에 편리하게 쓸 수 있다.
안전기능은 토요타 세이프티 센스(TSS)가 적용되어 정차 후 재출발까지 지원하는 다이내믹 레이더 크루즈 컨트롤(DRCC), 차선 추적 어시스트, 긴급 제동 보조, 어댑티브 하이빔 시스템, 주차 보조 브레이크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특히 주차나 좁은 골목길 통과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파노라믹 뷰 모니터가 더해져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 편의 기능은 앞좌석 통풍시트, 앞/뒤좌석 열선시트, 열선 스티어링, 파노라마 선루프가 잇으며, 디지털 리어 뷰 미러, 킥-센서형 핸즈프리 파워 백도어, 스마트폰 무선 충전 패드 등이 있다.
결국 목적지에서 측정한 연비는 14.5km/L로, 일부러 멈춰서서 오랜 시간 공회전시키거나 하지 않아 공인연비를 맞추진 못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누구나 손쉽게 공인연비 이상은 뽑아낼 수 있을 만큼 하이랜더가 높은 효율성을 보여주는 모델이라는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20km/L 넘는 연비를 기록한 참가자도 있었다고 하니, 효율성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을 새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관건은 가격인데, 하이랜더 리미티드가 6,660만 원, 플래티넘이 7,470만 원으로 적잖은 수준이다. 하지만 내연기관과 전기차 사이에 있는 하이브리드가 현실적으로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많고 현재 비슷한 사이즈의 SUV 하이브리드 중에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은 모델임을 감안했을 때 많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 예상된다. 또한 토요타가 하이브리드 시장에서는 여전히 탄탄한 기술적인 신뢰도를 가지고 있고 국내에서도 내구성에 대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2023년 하반기 토요타가 몰아치는 신차 모델 중 하이랜더는 과연 얼마 만큼의 성과를 거두게 될지 성적표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