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간첩이 ''교수로 위장해'' 방송에 나왔다가 MC에게 들통난 사건

아랍인으로 위장, 학계에 스며든 북한 파견 고정간첩

정수일 교수는 평양외국어대학 아랍어 교수 경력과 이국적인 외모, 박식한 아랍어 실력으로 ‘무함마드 깐수(Muhammad Kansu)’라는 이름의 외국인으로 위장해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그는 단국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사학과 교수를 역임하는 등 한국 사회 내 ‘이슬람문화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방송 등 다양한 학술행사에 전문가로 초대되며, 유창한 한국어와 깊은 지식을 뽐내 MC와 시청자들에게 신분 의혹을 받기도 했다.

4년 5개월간 대남 간첩 교육, 남파와 10년간 첩보 활동

정수일은 1974년부터 4년 5개월 동안 북한에서 고도로 훈련받으며 남파 간첩으로 변신했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동안 단파라디오 등 첨단 수법을 활용해 161회에 걸쳐 평양에서 온 지령을 수신했고, 실제로 그의 첩보 행위는 잡지·학술지 정보의 송신에 머물렀다.

첩보의 대부분은 언론에 이미 공개된 대중 정보였으나, 그는 본인의 학술 분석까지 더해 북한으로 송신하였다.

호텔 팩스 한 통과 경기 MC의 명민함

안기부는 서울 시내 호텔 일대에서 팩스 발송 활동을 치밀하게 감시하다가, 정수일이 북경으로 팩스를 보내려던 행적을 포착했다.

호텔 직원의 신고와 팩스 기기 고장으로 시간 지연을 벌인 덕분에 경찰에 체포됐으며, 조사에서는 필리핀 민다나오 출신이라는 그의 주장에 현지어 테스트 등으로 치밀한 신분 검증이 이뤄졌다.

아랍어 방송 중 너무 능숙한 한국어 사용에 방송 MC가 “혹시 한국인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 실시간 의심을 받았다는 일화도 남았다.

간첩임에도 학문적 성과 인정, 특별사면과 복권

정수일은 간첩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했지만, 학문적 성취와 적극적 첩보 협조가 적었던 점이 인정되어 2000년 특별사면 후 2004년 복권됐다.

복역 이후에는 본명으로 한국문명교류연구소장을 맡으며, 실크로드 및 동서 문명 교류사 분야의 권위자로 활발히 활동했다.

이 과정에서 학계와 대중 사이에서는 “간첩이었지만 인간적으로는 괜찮은 학자였다”는 평가와 ‘이도 저도 아닌 냉전시대 간첩’이라는 기록이 남았다.

위장과 신분 세탁의 역사, 가족조차 몰랐던 진실

정수일은 해외 경력을 세탁하며 교묘하게 신분을 위장한 끝에, 자신이 북한 조선족 출신임을 숨기고 ‘무함마드 깐수’라는 아랍인으로 입국했다.

아내, 자녀들조차도 그가 간첩임을 몰랐을 만큼 위장에 철저했고, 남한에서는 한국어를 쓰지 않는 척, 정치적 발언을 삼가하는 등 치밀한 전략을 펼쳤다.

북한에 가족을 남겨두고 남한에서 재혼까지 했으나, 단 한번도 아내에게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학자와 간첩 사이, 냉전의 딜레마

정수일의 실적은 냉전시대 간첩 활동의 본질과 한계를 보여준다.

학문적 지식이나 연구 정보를 보내는 수준에 그쳤고, 실제로는 고위군 간부·정치인급 정보력에는 크게 못 미쳤다는 객관적 평가도 있다.

결국 그는 ‘실크로드의 세계적 학자이자, 위장 신분의 간첩’이라는 복합적 정체성을 남겼으며, 한국 현대사와 냉전 첩보사, 그리고 문명교류 연구에 한 획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