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의대 교수 대화 물꼬 텄지만…전공의는 여전히 ‘한숨’
서울의대 교수들 “의사 늘면 의료비 증가…시스템 개선부터 해야”
전공의 “증원된 의대생, 전문의로 어떻게 키워낼 건가”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의료개혁으로 인한 의·정 갈등 이후 대통령실과 서울의대 교수들의 첫 공개토론이 끝났다. 그간의 '2000명 숫자 논쟁' '꼬투리 잡기' 굴레에서 벗어나 대화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의·정 갈등에 진전이 보였다. 다만 어느 누구도 입장 변화는 없었다. 약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토론회 말미에는 청중석에 있던 한 전공의의 답답함이 전해지기도 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대위원회(비대위)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의대 융합관 박희택홀에서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를 주제로 정부와 공개토론을 진행했다. 의대 증원 정책으로 인한 의·정 갈등 상황에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처음으로 대화에 나선 자리였다. 정부 측에선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 정경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이 참석했다. 비대위에선 강희경 비대위원장과 하은진 비대위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양측은 이날 토론회를 계기로 향후 의정 대화에 물꼬가 트이길 기대했다. 실제 장 수석은 '정부가 20년간 보건의료기본법을 만들지 않았다'는 의대 교수들의 지적을 인정하며 노력하겠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통령실 "4000명 증원 필요…원점 재검토·유예 어려워"
하지만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를 좁히지는 못했다. 먼저 정부는 '2000명 증원이 왜 필요한가'를 핵심 주제로 내건 만큼 의사 수 부족, 증원 규모 책정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설명했다.
장 수석은 "과학적 근거로 증원 규모를 내놨다"며 "정부가 참고한 3개의 전문가 연구 모두 2035년 약 1만 명의 의사 부족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가 90세까지 똑같은 생산성을 유지한다든지, 모든 의사가 주말을 빼고 1년 265일 줄곧 일하는 등 연구보고서의 비현실적인 일부 가정을 보다 현실에 맞게 보완해보기도 했다"며 "그 결과 부족한 의사 수는 1만 명이 아닌 2배 이상 늘어났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사실상 (1년에) 2000명이 아니라 최소 4000명 증원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이 때문에 정부는 지금까지 '의대 증원 2000명은 필요 최소한의 숫자'라고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공의들이 요구한 '2025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장 수석은 토론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의료계가 대화 테이블에 앉으면 2025년도 정원 조정 등을 할 수 있다는 (일각의 주장은) 거짓말"이라며 "모집 공고도 다시 돌려야 하고, 수시와 정시 점검도 다시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2026년도 의대 증원에 대한 유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유예를 하려면 지금 2000명 증원한 의사 결정을 다시 뒤집어야 하는데 그 절차도 다시 밟아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논란이 벌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윤석열 정부의 임기도 거론됐다. 장 수석은 "유예를 하고 (정원을) 원점으로 돌려 다시 증원 규모를 논의하려면 그 시점은 대학 정원이 결정되는 2026년 3~5월이 될텐데, 윤석열 정부 임기는 2027년 5월까지"라며 "대선 후보들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2026년도 의대 증원안을) 유예하고 2027년도를 논의하자는 건 사실상 (증원)하지 말자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전공의와 의대생을 설득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당연하다"면서도 "전공의·의대생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다' 이런 추상적인 이야기 말고 왜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지 정확하게 국민에게 설명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의대 교수들 "의사 늘면 의료비도 늘어난다"
반면 서울의대 교수들은 "국내 의사 수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에 비해 적긴 하지만 부족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비대위는 2022년 기준 인구 1000명 당 임상의사 수는 OECD 평균 3.8명, 한국은 2.6명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정부가 비교 국가로 강조하는 일본은 2.7명으로 한국과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국내 순환기계 질환에 의한 사망률, 치매에 의한 사망률, 회피 가능 사망률 등도 모두 OECD 평균 대비 낮다고 짚었다.
의사가 많아지면 의료비용도 함께 늘어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강 비대위원장은 "2030년 의료비는 국내총생산(GDP)의 16%로 현재 건강보험료의 1.6배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2035년에는 20%를 쓰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홍석철 서울대 교수의 연구자료를 인용해 "25~64세 인구의 연간 건강보험 추가 부담액은 2030년 60만원, 2040년 136만원, 2050년 201만원으로 예상한다"며 늘어나는 의료비를 지적했다.
상급종합병원에 환자가 쏠리는 현상 등 '의료전달체계 정상화'가 의대 증원보다 우선돼야 한다고도 했다. 하 비대위원은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에 가는 이유는 한 번에 여러 진료과를 갈 수 있어서다"며 "(동네 병의원) 1차 진료 영역에서도 다학제 진료를 할 수 있게 수가를 만들면 절대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하 비대위원은 "이미 국내 의사들은 OECD 평균 대비 3배에 이르는 의료 이용과, 2배에 가까운 입원을 감당해왔다"며 "아까운 돈을 의사를 늘리는 데 쓰지 말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먼저 써야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대통령실 "휴학은 학생 권리 아냐"…전공의는 '울분'
의·정 갈등의 핵심 당사자인 의대생·전공의에 대한 논쟁도 이어졌다.
현재 의대생과 교수들은 휴학은 학생들의 기본권으로, 교육부가 해당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강 비대위원장도 이날 "(고등학교로 따지면) 봄, 여름에 못 다녔는데 10~11월부터 시작해서 그 학년을 마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불가하다"며 의대생들의 휴학은 승인되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부는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복귀하지 않고 있는 학생들의 휴학이 부당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해당 휴학은 학생들의 권리로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장 수석은 "일부 학생들이 휴학은 권리라고 하는데, 휴학은 권리가 아니"라며 "고등교육법령상 휴학은 교육과정에 등록한 학생이 입대나 질병, 어학연수나 가족의 이사 이런 개인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사유가 생겼을 때 신청하고 학교에서 승인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느 순간 정부 정책에 반발해 일시에 모든 학생이 승인 불가능한 휴학을 내는 건 개인적인 사유라고 보기 어렵다"며 "학교는 교육을 이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의대 5년제' 방안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교육부는 의료인력 양성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학과 혐력해 교육과정을 단축·탄력 운영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의대 교육과정을 현행 6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장 수석은 "의대 교육을 5년으로 단축하겠다는 말은 애초에 있지도 않고, 발표하지도 않았다"며 "교육부 발표 취지는 지금 의대생들의 집단행동이 8개월 됐으니, 의대생들이 나중에 복귀한 후에 잃어버린 시간만큼 프로그램을 단축하거나 방학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주자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이날 토론회 청중석에선 돌발 질문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 의대 교수는 장 수석을 향해 "2000명이 늘어나면 무슨 진료과가 몇 명이 되는지 시뮬레이션을 해봤나"라며 고성을 질렀다. 이에 장 수석은 '의료계가 적정 증원 규모에 관해 답을 주지 않았다'라고 하자 의대 교수는 "거짓말이다"라고 소리쳤다.
해당 교수는 '휴학은 학생의 권리가 아니'라는 장 수석의 발언에도 "당신이 말하면 법이 맞는 건가" "왜 정부가 그걸(휴학을) 승인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사직한 전공의 A씨가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A씨는 "증원된 의대생을 어떻게 전문의로 키워낼 것인가에 대해선 왜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가"라며 "현재도 전공의에 지원했다가 떨어지는 사람이 무려 700~800명인데, 이 시스템은 어떻게 해결할 건가"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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