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던 도시가 통째로 사라집니다. 공장이 문을 닫자 우편번호까지 없어졌고, 주인공은 밴 한 대에 짐을 싣고 길 위로 나섭니다. 그리고 다시는 한곳에 정착하지 않습니다.
노매드라는 사람들
영화 '노매드랜드' 이야기입니다. 경제 위기로 일자리와 집을 잃은 60대 여성 펀이 밴에서 생활하며 계절마다 일자리를 찾아 미국 서부를 떠도는 과정을 그립니다. 물류창고와 국립공원, 사탕무 수확 현장을 옮겨 다니며 일하고, 길 위에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 서로의 사정을 나눕니다. 이들은 자신을 노숙자가 아니라 집이 없을 뿐인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하루를 따라가는 방식이라, 보는 사람이 판단을 미루게 만듭니다. 떠나는 삶을 미화하지도, 비참하게 그리지도 않는 거리감이 이 작품의 태도입니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이 작품은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연출을 맡은 클로이 자오 감독은 여성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인물이 됐습니다. 앞서 2010년에 한 차례 여성 수상자가 나온 뒤 11년 만이었습니다. 이날 감독상 시상은 봉준호 감독이 한국어로 진행해 국내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습니다. 주연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여우주연상을 받아 이 작품은 주요 세 부문을 가져갔습니다.

골든 글로브에서도 2관왕
아카데미에 앞서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을 가져갔습니다. 아시아계 여성 감독이 골든 글로브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받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시상식 시즌 내내 유력 후보로 거론됐고, 각종 비평가협회상까지 더해 수상 기록을 쌓았습니다. 상영관이 제한적이던 시기에 공개됐는데도 평단의 지지를 끌어낸 사례로 남았습니다.

배우가 아닌 사람들이 함께 나온다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출연진 구성입니다. 길 위에서 실제로 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본인 역할로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전문 배우와 실제 생활자가 같은 화면에 섞여 있어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구간이 많고, 그 경계가 흐릿한 점이 이 작품의 질감을 만듭니다. 원작은 같은 사람들을 취재한 논픽션입니다.

천천히 보는 영화
큰 사건도 반전도 없습니다. 해가 지는 들판과 끝없이 이어지는 도로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지루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끝까지 보고 나면 길 위의 삶을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됩니다. 현재는 여러 OTT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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