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회 술자리서 ‘술잔 투척’ 남재희…노태우는 “맞아볼래” 협박
고 남재희(1934∼2024) 전 노동부 장관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그와 직간접적 인연을 맺은 언론계와 정치권 인사들의 추모글이 에스엔에스 등에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시대의 조정자’ ‘체제 내 리버럴’이라는 수식어가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고 진영 간 경계를 가로질렀던 고인의 넓은 풍모를 지칭한다면, ‘시대의 기록자’ ‘인간 현대사’라는 별칭은 정치·언론계 이면을 특유의 박람강기로 풍속화 그리듯 그려냈던 고인에 대한 헌사다.
장서가·다독가이면서 애주가로도 유명했던 고인은 ‘언론·정치 풍속사:나의 문주 40년’ ‘아주 사적인 정치 비망록’ ‘남재희가 만난 통 큰 사람들’ ‘진보 열전’ 등을 통해 한국 언론·정치사의 이면을 다채롭게 복기했다. 그는 이를 ‘한국 정치의 미시사 차원’ 정도로 생각해 달라고 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2015년 한겨레가 마련한 고인과의 대담에 앞서 고인을 “보수정권(박정희∼김영삼)과 보수정당에 몸담았던 진보 성향의 80대 언론인”이라는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기자 출신으로 국회의원과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그는 한겨레에 ‘남재희 칼럼’을 연재하면서 ‘언론인’ 호칭을 고집했다.
언론인 남재희가 남긴 유일한 사건 정본
특히 시대의 기록자이자 체제 내 리버럴로서 고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가 ‘국방위 회식 사건’이다.
민관군이 아닌 ‘군관민’이란 말이 쓰이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택연금 중이던 서슬 퍼런 1986년.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 핵심인 하나회 출신 육군 수뇌부가 국회 국방위원회 의원 등을 회식에 초청한 자리에서 국회의원이 군 장성에게 폭행당하며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국회 국방위원회가 소집돼 이 사건을 추궁하고 당시 일부 내용이 알려지긴 했지만, 사건의 상세한 전말은 술잔을 집어 던진 뒤 하나회 출신 군 장성에게 폭행당했던 고인이 언론·정치 풍속사에 이어 2014년 4월 한겨레 특별기고(‘국방위 회식사건…정본을 위하여’)를 하면서 비로소 알려졌다. 고인은 특별기고 이유로 “사건에 관한 정본(定本)을 마련할 필요”와 함께 “대통령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료”를 언급했다.
고인이 남긴 기록과 국회 회의록 등을 종합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986년 3월21일 초저녁 서울 중구 회현동의 요정 ‘회림’에 박희도 육군참모총장(육사 12기 등) 등 육군 수뇌 8명, 민주정의당 이세기·신한민주당 김동영·한국국민당 김용채 원내총무와 공군소장 출신 천영성 국방위원장, 남재희 민정당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10여명이 회식을 함께했다.
고 남재희는 한겨레 특별기고에서 사건의 시작을 이렇게 전했다.
회현동 ‘회림’에서의 술자리에 여당 원내총무인 이세기 의원이 2시간쯤 늦게 왔다. 미안했던지 노래를 하겠다고 자청해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때 정동호 참모차장이 그의 목 근처를 잡고 소파에 술에 취해 드러누워 있는 김동영 야당 총무 쪽으로 끌고 갔다. “이세기” 했는지 모르지만 “이쌔끼”로 들렸다. 이 총무는 넥타이가 당겼던지 “아퍼, 이거 놓아” 하며 얼마간 끌려갔는데 마침 마이크를 잡고 있어서 그 소리가 크게 들렸다.
김동영 총무는 야당의 실세로 입이 걸쭉했는데, 회식 장소에 와서 여당 총무가 안 온 것을 보자 “실세는 안 오고 똥별만…” 운운했다는 전문이다. 나도 늦게 가서 그 “똥별” 운운은 직접 못 들었다.
여하간 그런 심한 말을 듣고 화가 났던 참에 이 총무가 늦게 오니까 그를 김 총무에게 “왔다”고 말하려 끌고 가려 한 것이다. 김 총무는 술에 취해 녹아떨어져 있고.
나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군의 수뇌부 8명이 있는 앞에서 여당의 원내총무가 참모차장에게 목덜미를 잡혀 비명을 내며 끌려가다니….
여당 원내총무가 군인에게 뒷덜미를 잡혀 비명 지르는 모습에 화가 치민 고인은 “국회의원들을 초대해 놓고 이렇게 대하기가 있느냐”고 고함쳤다고 한다. 이어 항의의 표시로 술이 든 잔과 물잔을 자신의 뒷벽을 향해 던졌다고 한다(과거 고인이 던진 잔이 깨지며 파편에 맞은 군 장성 얼굴에서 피가 났다는 식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이에 고인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육군 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인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고 한다. 고인이 전한 당시 상황이다.
그러자 내 앞 술상 건너편에 있던 ㅇ 소장이 일어서더니 발차기로 내 얼굴을 차서 피가 주르르 흐르기 시작했다. 소독 수건이 두 장쯤 필요했다. 나는 그 피 묻은 수건을 들고 “국회의원을 이렇게 때리라고 위에서 시키더냐, 청와대에 가서 물어보자”고 소리를 쳤다. 그들은 거의가 하나회 소속으로 신군부 쿠데타의 주역들이었다.
닷새 뒤인 3월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치·외교·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국방위 회식 사건을 두고 야당 의원들은 “무관의 문관 구타” “총칼 가진 군인의 폭행” 등을 거론하며 군법회의 회부 등을 요구했다.
“유신체제 하에서 걸핏하면 연금이라는 이름하에서 재야인사들을… 민주인사들을 집 안에 가두는 그러한 버릇을 해 왔습니다. 이제 이 정권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집의 전화마저 끊고 일체의 면회도 하지 못하게 하는… 집 안을 면회도 되지 않는 감옥으로 바꿔 놓는 그러한 작태를 벌였습니다… 1년 동안에 야당 의원 25%를 피의자로 만들고 10% 이상을 피고인으로 만들었던 그러한 정권이 대한민국 현 정권 외에 어디 또 있으면 좀 알려 달라고 얘기를 했습니다….”(허경만)
“보통 용어 중에 군관민이라고 쓰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민관군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여쭈어봅니다. 말뿐만 아니라, 그렇게 말만 그런 게 아니라 군은 그 배후요 아니 그 뿌리인 국민을 중하게 여기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국방위 회식, 이게 준 공식모임으로 저는 생각합니다만 회식사건에서 무관이 문관들을 좀 구타했다 이거예요. 여러 가지 유언비어가 많습니다….”(장기욱)
“법은 만인에게 평등합니다. 그런데요. 며칠 전에 일어난 국방위 회식 사건을 따져 봅시다. 국회의원도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 나라 국방을 지켜야 될 고위장성들이, 더구나 참모총장이 초청하는 국방위원회 만찬에서 우리 전 여야를 대표하는 국회운영위원장인 이세기 의원과 여야 간에 가장 존경을 받고 있는 남재희 의원이 별들의 전쟁에서 입에서 피가 나는 이런 폭력사태가 벌어진 데 대하여 어떻게 국무총리 이하 국방부 장관, 법무부 장관은 당장 입건하여 군법회의에 회부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요. 총칼을 가진 군인들은 폭행을 해도 관계없고 국민의 대표자인 선량한 국회의원은 날치기 통과하는 법안을 막기 위해서 다소간의 밀고 당긴 사실을 입건 기소하고. 더구나 어제 날짜로 출국금지를 해제해 주라 하는 요청서를 법무부장관은 기각했다 이 말이야!”(김동주)
이기백 국방부 장관이 답변했다. “화기애애” “우발적” “화해하고 없던 일로 합의” 등의 말이 나왔다.
“먼저 국방위원님들과의 만찬석상에서 유감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국민과 의원님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게 되어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 경위를 말씀드리면 지난 3월21일 임시국회 국방위원회 업무보고를 드리기에 앞서 신임 총장으로서 국회에서 의원님들과 만나게 되기에 앞서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여 만찬의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방부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당시 격의 없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약 2시간여 동안의 만찬을 마치고 주최 측과 의원님의 작별인사가 있은 후에 대부분의 의원님들은 귀가하였고 평소부터 친분이 있는 몇몇 의원님이 남아서 초청 측과 대화하던 중 우발적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가 바로 화해를 하고 일체 없었던 것으로 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진 바가 있읍니다. 이로 인하여 의원님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게 된 데 대하여 거듭 유감의 뜻을 표하는 바입니다. 앞으로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각별히 지휘 관심을 촉구하겠습니다.”
2주 뒤인 1986년 4월4일, 이 사건을 따지기 위한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다. 일부 비공개로 진행된 당시 회의에서 이기백 국방부 장관은 사건 개요를 다시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3월21일에 있었던 국방위 회식사건의 경위에 대하여 보고드리겠습니다.
회식에는 주최 측 10명과 초청을 받으신 국방위원님을 비롯한 13명의 위원님이 참석하신 가운데 격의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약 2시간 동안 만찬을 마치고 주최 측과 위원장님의 작별인사가 있으신 후에 국방위원장님과 김동영 신민당총무님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방위원님들은 귀가하셨고 평소부터 친분이 있는 몇몇 위원님들이 남아서 초청 측과 다시 술자리를 같이 하던 중 취중에 우발적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발생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당시 그 자리에서 계셨던 위원님들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어디까지나 감정이나 의도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바로 상호화해를 하고 일체 없었던 것으로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원님 여러분의 넓으신 이해 있으시기를 바라면서 거듭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상 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이후 몇 시간 동안 야당 의원들의 추궁과 공방이 이어졌고, 국회 국방위는 사흘 뒤인 4월7일 다시 전체회의를 열었다. 국방위 회식 사건 당시 자리에 있었던 김동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 문제는 제가 보기에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누가 회식에서 주법에 어긋났다, 누가 잘못했다 하는 이런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이 문제가 지금 전국민적으로 화제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또 여당에서 알다시피 이것이 거의 그야말로 요원의 불길처럼 유언비어를 타고 근거 없는 낭설의 지경에까지 이른 그런 루머도 많이 퍼지고 있습니다.”
고 남재희는 ‘루머’를 잠재우고 사건의 정본을 남기기 위해 한겨레에 특별기고를 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거대 보수신문의 어느 언론인이 별로 칼럼을 쓴 경력이 없는데도 기명 칼럼을 써서 엉뚱한 풀이를 한 것이다. 고려 때 문신이 무신의 수염을 불로 그슬리는 등 횡포를 저질러 ‘무신의 난’이 일어났는데 국방위 사건도 그런 것이라고 비유했다. 참, 아첨의 역사에 남을 만한 칼럼”이라고 혹평했다. 1986년 3월30일치 조선일보에 당시 인보길 편집부국장이 ‘정중부의 수염’ 등을 언급하며 ‘극장사회’라는 칼럼을 썼는데, 이를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고인은 특별기고에서 당시 노태우씨의 ‘협박’ 일화도 전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 노태우 의원은 나와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작은 목소리로 “너 한번 맞아볼래” 하였다. 짐작건대 자기가 아끼던 후배가 그 사건으로 인하여 출세의 길이 막힌 데 대한 노여움을 나에게 표한 것인 듯도 하다. 작은 일화이지만 전두환씨의 경우와 함께, 대통령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료로 말해 두는 것이다.
현대 정치사 이면을 빼곡하게 채운 숱한 술자리 에피소드를 기록으로 남겼던 고인은 ① 술은 아주 천천히 마셔라 ② 낮술은 절대 금물이다 등 ‘주도 10개조’도 남겼다.
고인의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9일 오전 5시20분, 장지는 청주시 미원 선영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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