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 깊어질수록 도심의 더위는 숨통을 조이듯 무겁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이 계곡을 찾지만, 단순히 물놀이로만 끝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충북 괴산의 쌍곡계곡은 얼음장 같은 계곡물과 짙은 숲 그늘을 넘어, 조선 선비들의 풍류와 철학이 깃든 공간으로 특별함을 더한다.
아홉 굽이마다 숨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곳은 단순한 피서지가 아닌 시간과 사상이 흐르는 인문학적 공간임을 깨닫게 된다.
괴산 쌍곡계곡

쌍곡계곡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에서 제수리재에 이르기까지 약 10.5km 길게 이어진다. 보배산, 군자산, 비학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사이로 수정 같은 계류가 흘러내리며, 괴산 8경 중에서도 으뜸인 제1경으로 손꼽힌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구곡 문화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경치 좋은 계곡의 아홉 굽이에 이름을 붙이고 시와 노래로 자연을 찬미했다. 퇴계 이황과 송강 정철 같은 석학들도 쌍곡계곡의 풍광에 반해 학문을 논하고 심신을 수양했다고 전해진다.
쌍곡계곡의 아홉 명소는 단순한 경승지가 아니라, 자연을 통해 이상 세계를 구현하려 했던 선비들의 철학적 사유 공간이다. 제1곡 호롱소, 제2곡 소금강, 제3곡 떡바위 등 각각의 이름은 그 풍광과 더불어 조선 선비들의 정신적 풍류를 오늘날에도 생생히 전해준다.

쌍곡계곡은 속리산 국립공원 구역에 포함되어 있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취사, 야영, 흡연, 지정 외 장소에서의 주차가 철저히 금지되는 것은 다소 불편할 수 있으나, 그 덕분에 계곡물은 1급수의 맑음을 유지한다. 다슬기와 물고기가 노니는 물줄기와 오염되지 않은 숲은 이런 규제가 지켜낸 소중한 선물이다.
주차는 펜션이나 식당 부설 주차장, 혹은 쌍곡휴게소 유료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이 역설적으로 쌍곡계곡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입장료는 따로 없지만, 이곳을 찾는 모두가 자연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함께 나누는 셈이다.

쌍곡계곡의 매력은 10.5km 전역에 흩어진 아홉 절경, ‘쌍곡구곡’에서 절정을 이룬다.
계곡 초입의 제1곡 호롱소는 깊은 물소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어 피서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다. 이어지는 제2곡 소금강은 이름처럼 금강산의 풍광을 축소해 놓은 듯 수려하다.
두 곳은 수심이 비교적 얕고 안전요원이 배치되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하기에 제격이다. 특히 외쌍유원지 인근은 무료 주차 공간도 넉넉하다.

중류로 향하면 색다른 풍경이 기다린다. 잘라놓은 시루떡처럼 생긴 제3곡 떡바위, 절벽이 맞서 서 있는 제5곡 쌍벽, 여인의 치마폭처럼 물줄기가 펼쳐지는 제7곡 쌍곡폭포는 보는 순간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온다. 이 구간은 군자산 등산로와 연계해 트레킹 코스로 즐기기에도 알맞다.
상류로 갈수록 인파가 줄어들며 한적함이 찾아온다.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제8곡 선녀탕, 넓은 반석이 마당처럼 펼쳐진 제9곡 마당바위는 고즈넉한 숲 그늘 아래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다. 여름날 한낮에도 쉬이 더위를 느끼기 어려운 특별한 휴식처다.

대중교통으로 접근할 경우, 괴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수안보 방면 시내버스를 타고 ‘쌍곡계곡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정류장에서 계곡 초입까지는 도보 5분이면 충분하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쌍곡휴게소 유료 주차장이나 인근 펜션·식당 부설 주차장을 활용하면 편리하다.
쌍곡계곡은 단순히 시원한 피서지가 아니다. 인근에는 조선 성리학의 대가 우암 송시열의 자취가 깃든 화양구곡이 자리하고 있어, 두 곳을 함께 둘러본다면 조선 선비들의 학문과 풍류가 자연과 어떻게 어우러졌는지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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