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 놓치면 집 팔아도 힘들다” 공감대가 낳은 ‘국어 4세반’ 열풍

과외도 한글, 독서, 논술 등 체계적 커리큘럼 마련…강남 인기 학원은 입학테스트 재수까지
ⓒ르데스크

#.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최은정 씨(35)는 4세 자녀에게 주 1회 국어 과외를 시키고 있다. 수업료는 시간당 5만원으로 한 달에 20만원 가량 지불하며 교재 및 교구비는 별도다. 3세부터 진행된 수업은 올해로 벌써 2년째다. 과외 선생님은 서울 상위 5개 대학 중 한 곳을 졸업한 20대 후반의 여자 선생님이다.

최근 강남 지역을 비롯한 서울 곳곳에서 국어 교육을 시작하는 연령이 크게 낮아지고 있다. 수능 국어 출제가 어려워지면서 ‘국포자(국어를 포기한 사람)’라는 말까지 등장한데다 상대적으로 국어 능력은 단기간에 올리기가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다. 특히 문해력이 수학·영어를 포함한 모든 과목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인식까지 생겨나면서 조기 국어 교육 열풍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주 1회 시간당 5만원,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월 20만원은 전혀 아깝지 않아요”

지난해 교육부와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가 전국 초1 학부모 1만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0~4세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작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15.4%에 달했다. 유아 사교육은 국어 관련 교육 비중이 특히 높았다. 태어난 지 5년도 채 되지 않은 아이 10명 중 1명 이상은 ‘국어 사교육’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업계 등에 따르면 유아 국어 커리큘럼의 기준은 나이가 아닌 ‘한글 공부 완성의 유무’다. ‘사교육 일번지’라 불리는 강남구 대치동에서는 주로 0~2세까지는 집에서 한글을 익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3세 이후에는 아이의 언어 능력 수준에 따라 학원을 보내거나 개인과외를 진행하는 등 본격적인 학습을 시작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선 학원보다 개인 과외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아이 교육의 출발점인 만큼 그룹 수업에 비해 자신의 아이에게만 오로지 집중되는 수업이 학습에 있어 더욱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대부분의 개인 과외 수업 시간은 한 시간을 채 넘기지 않는 편이다. 유아는 성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시간 집중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 대치동에 위치한 한 유아논술학원 전경. (사진은 특정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르데스크

교육비는 시간 당 4~5만원 수준에 형성돼 있다. 물론 아이의 추가 관리 여부와 수업 내용에 따라 일부 금액 차이는 존재한다. 3~5세 사이의 한글을 아직 완벽하게 익히지 못한 아이 교육의 핵심은 ‘통글자 익히기’다. ▲동요로 배우는 한글 ▲놀이와 게임으로 낱말 찾기 ▲그림책으로 익히는 한글 등 놀이와 학습을 접목해 글자를 암기하는 방식 등의 커리큘럼으로 진행된다.

한글을 완벽하게 익힌 아이에게는 ‘독서 과외’가 이어진다. 수업시간마다 전래동화·위인전·문학·백과사전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실감나게 읽어주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다. 해당 수업에서 강사는 등장인물, 배경, 사건 등 전반적인 내용을 설명해주고 간단한 줄거리 요약을 숙제로 내준다. 독서가 끝난 후에는 ▲등장인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 쓰기 ▲뒷이야기 상상해서 쓰거나 그리기 등 생각의 확장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독서 과외의 경우 한글 과외에 비해 교육비가 시간 당 1~2만원 더 비싼 편이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활동 중인 유아 대상 국어 전문 과외강사 L씨는 “유아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업 시간 내내 지속적으로 아이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것이다”며 “목소리 톤을 바꿔 등장인물 별 목소리를 다양하게 내거나 활자보다는 그림을 통해 수업을 진행하는 등의 방식으로 아이와 교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은 대치동뿐만 아니라 용산, 잠실, 노원 등 다양한 지역에서 수업을 원하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며 “학부모들은 상대적으로 20대의 예쁜 여자 선생님이나, 50대가 넘은 베테랑 여자 선생님을 선호한다”고 부연했다.

“국어 점수는 시기 놓치면 집 팔아도 어렵다”…‘4세 고시’에 입학시험·소근육 테스트까지

개인 과외 수요 증가에 힘입어 전문 학원들도 속속 생겨나는 추세다. 과외 교육에 한계를 느꼈거나 미처 좋은 강사를 구하지 못한 학부모들은 개인 과외에 비해 지도의 세밀함은 떨어지지만 여러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며 사회성을 키울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해 전문 학원을 찾고 있다. 수요가 늘면서 입학도 아닌 입학 테스트를 보기 위해 대기를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학원들도 등장하고 있다.

▲ 대치동에 위치한 한 유아 국어 학원 내부전경. (사진은 특정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르데스크

강남구에 위치한 P학원 대기자 명단에는 4세부터 7세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P학원에 학부모들이 몰리는 이유는 ‘동화수업’ 때문이다. 해당 학원은 국어 교육뿐만 아니라 수학에서 필요한 어휘와 개념 역시 동화로 재밌게 풀어내 전반적인 교과과목의 틀을 잡아주는 데 정평이 나있다.

1대 1로 진행되는 한글 수업반의 경우 20분의 한글 테스트와 40~50분 수업 가능 여부를 측정하는 자체 제작 소근육 발달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3명 이하의 그룹 수업으로 진행되는 통합 국어반은 유아 단계의 어휘, 독해, 쓰기 등을 포괄적으로 점검하는 국어 테스트가 등원 필수 사항이다. 통합 국어반은 한글을 완벽하게 익힌 아이만 지원 가능하다. 테스트에 불합격한 아이들은 개인 과외를 통해 재시험에 응시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쓰기에 비해 말하기가 약한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스피치 학원이 인기다. ▲놀이스피치 ▲표현스피치 ▲창의스피치 ▲논리스피치 ▲마음스피치 ▲예비초 스피치 등 레벨 테스트에 따른 단계가 나뉘어져 있는 형태다. 습득력이 빠른 영·유아들에게는 짧은 신문기사나 동화 내용을 토대로 한 논술 토론도 진행된다.

5살 자녀를 키우는 조은지 씨(33·여)는 “한글 학원에 스피치 학원까지 보내다 보니 한 달에 국어 교육비로만 40만원 가량이 든다”며 “내가 학생 때 그렇게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인지 혹시 우리 아이도 나를 닮을 게 걱정돼 교육비에는 돈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마들 사이에서 국어 점수는 시기를 놓치면 집을 팔아도 점수가 안 나온다는 말이 이미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예전엔 영어 교육인데 요샌 영어는 좀 늦어도 괜찮다는 인식과 더불어 유아 국어교육에 신경을 쓰는 또래엄마들이 정말 많다”고 덧붙였다.

대치동의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국·영·수 주요과목 중 성적을 올리는 데 가장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과목이 바로 국어다”며 “국어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점수대가 변하지 않는 학생들도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이어 “국어는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많은데 유아 때부터 글을 많이 접하고 독서 관련 활동을 많이 한 학생들의 성적이 대체로 우수하다”며 “언어능력은 모든 공부의 근간이기 때문에, 국어를 잘하는 학생이 수학, 영어도 잘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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