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반도, 더는 되풀이해선 안 될 ‘국정원장 리스크’
前 CIA 수장이 꼽은 자격 요건 ‘지능·통찰력·대통령의 신임·인격의 힘’ 잘 살펴야
(시사저널=조경환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너는 진리를 알지니, 그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 이 성경 구절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좌우명임은 널리 알려진 바다. 그렇지만 그 진리의 획득에는 적대 세력과의 갈등을 수반하며, 진리는 목적이 아니라 승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 점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국정원은 '군사작전이 적합하지 않고, 외교가 작동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에서 국가 이익을 방어할 기관'이다. 국외의 안보·경제 정보 및 북한 정보를 적기에 대통령과 정책 결정자에게 공급해 의사결정을 뒷받침한다. 전략적 위기를 경보한다. 국내외의 인간 정보 및 신호·지리·위성 이미지 등 과학기술 정보에 걸쳐 복잡다기한 정보 인프라를 관장한다. CIA 등 우방 정보기관들과 정보협력을 한다.
또 다른 중대 축은 외국 정보기관 등의 간첩, 침해로부터 국익 수호와 국민 생명의 안전보장이다. 국정원법을 필두로 사이버 안보와 대테러, 보안, 산업기술·방위산업 보호 등 경제안보를 포함한 방첩, 마약 등 국제범죄 조직, 내란·외환 및 안보침해 범죄 대응 업무 법제에 의거, 대응조치를 보장받음과 동시에 통제를 받는다. 통일·외교·국방부, 군·경찰 등 부분 정보기관들의 정보 및 보안 업무를 기획·조정한다. 대통령을 보좌하고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헌법기관성이 내재한다. 국정원장은 그래서 '초인적 헌신'을 요구받는다. 험한 자리다. 대접받거나 누리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에게 현실적인 질문 던질 수 있어야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김정은 정권은 더없이 강고하다. 해외의 위협이 어디서 끝나고, 국내 위협이 어디서 시작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종말을 맞을 수 있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해 1200명을 학살하고, 240여 명을 인질로 끌고 간 2023년 '10·7 공격'의 전날 밤, 이스라엘 정보기관들은 하마스의 변칙 활동을 탐지했다. 이스라엘방위군 참모총장, 군 정보기관장 및 국내 정보기관인 신베트의 장이 협의한 결과 훈련인지, 공격 준비인지 판단하는 데는 추가 정보가 필요해 위기경보(high alert)는 발령하지 않았다. 정치 생명 연장을 꾀하는 네타냐후 총리의 안보 불안감 조장이라는 정책 실패도 작용했다. 한발 늦은 것이 전쟁의 참화를 불렀다.
국정원장은 책무와 안보의 상징성이 막중한 만큼이나 그 추락의 파장은 크다. 당사자에게는 불행이요, 정권에는 짐이다. 국가와 국민에겐 큰 손해다. 1998년 국정원으로 개명한 이래 원장 16명은 평균 1년8개월 재임했다.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로 거슬러 올라가 37명의 부장과 원장을 다 따져봐도 그렇다. 한순간의 물결 같은 기간이건만 정쟁과 정권에 희생되거나, 스스로 일을 그르쳐 말로가 온전치 않았다. 왜 역대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국정원장 인사를 잘못했고, 왜 그 원장들은 기어코 실패했을까?
첫째, 국정원장에 대한 정권과 국회의 기대가 비현실적이다. 대통령과 장관들은 정보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거의 없이 그 자리에 오른다. 권력을 잡은 이후에는 학습할 시간이 부족하다. 국정원을 무소불위의, 비밀을 다 아는 전지전능한 조직이라는 신화적 프리즘으로 본다.
측근을 보내면 공권력을 장악할 수 있고, 대북 유화론자를 보내면 북한의 문을 열 것이며, 군인을 보내면 안보를 지켜낼 것이고, 외교관을 보내면 국제 정세를 꿰뚫어볼 것이며, 국정원 출신을 보내면 내부를 잘 알 것으로 안다. 오산이다. 국정원은 보통의 사람들이 모여 비범한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수집과 분석의 비중이 95%라면, 비밀공작은 3% 이하다. 정보 수집은 95%가 공개정보에 의존한다. 단번에 공을 세우는, 빛나는 곳이 아니다. 구석구석에 집중이 필요하다. 등골이 빠지는 작업장이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 철저하고 사려 깊은 분석에 의존한다.
둘째, 국정원은 존재 이유가 스스로에게 있지 않다. 고객이 있어야 가능하다. 정보 소비자인 대통령은 정상에 오르기까지, 다른 사람들이 피하는 위험을 감수했고, 다른 사람들이 실패할 것으로 여긴 곳에서 성공했다. 경험에서 나온 자신의 판단을 신봉한다. 대통령의 고정관념과 현실을 반영한 정보보고 간 충돌은 숙명이다. 국정원장의 영향력은 정책 결정자들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결정된다. 정보가 얼마나 대통령의 주의를 끌며, 정책 선호와 관련성이 있느냐가 관건이다. 정보는 너무 이르면 무시되고, 늦으면 무의미하다. 문제 해결의 창은 대통령이 그 문제에 집중한 때부터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로 매우 좁다. 정보의 객관성은 불변의 존립 근거다. 대통령에게는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요구할 책임이 있되, 원장은 보고가 올바르게 이해되도록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
그러자면 직업적 전문성에 기반한 권위와 도덕적 용기, 실력이 있어야 한다. 2020년 11월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내가 듣기 좋은 말보다 들어야 할 최선의 판단을 보고해줄 사람"이라고 소개한 애브릴 헤인스 국가정보국장 지명자는 "권력자에게 진리를 말하는 것을 결코 피한 적이 없다"고 했다. 윌리엄 번스를 CIA 수장에 지명하고 "미국 국민은 이제 편안하고 깊은 잠을 잘 것"이라고 한 점은 정보기관장의 소명과 역할을 관통한다.
정보 수장은 '전문성·권위·용기' 갖춰야
셋째, 정보기관 특유의 강력한 비밀성에다 계층제와 중앙 집중, 전문화라는 구조적 특성, 그리고 원장 1인에 대한 로열티의 조직문화는 '황제 원장'의 생태계를 만들어낸다. 감사와 감찰은 원장의 도구다. 내부의 행정적 통제는 약하고, 외부의 민주적 통제는 멀다. 집단사고와 컨센서스를 강요해 정보의 동맥은 경화한다. 변화에 둔감하다.
국정원이 원장 리스크에 시달린 지 20년이 넘었다. 무능과 무기력, 무책임이 스며들어 있다. 내분은 넓고 깊다. 국정원을 압박해 오는 변화는 그들의 시간표대로 오지 않는다.
6·3대선으로 탄생할 새 정부의 국정원장은 기존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점진주의적 리얼리스트'가 되길 기대한다. 전문 분석가이자, 지식인이어야 한다. 능숙한 관료적 정치가면 더 좋겠다. 미 민주당과 공화당에 걸쳐 7년간 CIA 수장을 지낸 조지 테닛은 CIA 수장의 자격으로 '지능, 날카로운 통찰력, 대통령의 신임, 인격의 힘'을 들었다. 일본의 국정원장 격인 내각정보관과 국가안보국장에 10년여 재임한 기타무라 시게루는 "현명한 지도자만이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정보 수장으로 등용해 반드시 유례없는 큰 업적을 이룬다"고 했다.

조경환은?
외교부 샌프란시스코 부총영사와 국정원 고위공무원을 지냈다. 행정학 박사다. 세종연구소와 통일연구원 등에서 북핵·외교·안보와 신안보 연구를 이어간다. 국가사이버안보센터 자문위원이며, 성균관대 국가정보안보정책연구센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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