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기'가 좋은 이유
여유를 가지고 좀 더 느리게 사는 삶이 스트레스에 대한 해법일까? 아니면 이것도 현실성이 부족한 특권적 라이프스타일의 한 과시적 사례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1년’(A Year of Nothing)으로 번아웃을 이겨낸 낸 작가들을 만났다.
‘1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기’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을 드는가? 일과 이메일, 경력 발전, 노력이나 성취, 생산성마저도 없이 1년을 보낸다면 어떨 것 같은가? 많은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일은 우리의 지위를 보여주고, 돈을 버는 것은 성취가 되며, 바쁘게 산다는 게 자랑할 만한 것일까? 요즘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1년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인 반응 혹은 매우 갈망한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슬로우리빙’(#SlowLiving)은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익숙한 개념이다. 그러다보니 이 해시태그는 인스타그램에서 600만 회 이상 사용됐다. (다만 게시물 중에는 컴퓨터 모니터 보는 시간을 줄이고, 마음 챙김을 하며 지속 가능한 생활방식을 추구한다는 슬로우 리빙에는 맞지 않는 것들이 상당수다.) ‘조용한 사직’과 ‘레이지 걸 잡’(취미, 인간관계, 자기 관리 등 삶의 더 의미 있는 부분에 쓸 에너지를 보존하기 위해, 직장에서 하는 업무부담을 덜어내는 것) 등을 개척해 온 것도 Z세대다. 게다가 요즘엔 거의 모든 세대가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 영국에서 주 4일 근무제가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이러한 경향을 재미있게 표현하면 ‘바쁜 것은 이제 그만, 이제는 휴식’이라 표현할 수 있다. 작가이자 팟캐스터, 뉴스레터 플랫폼 ‘서브스택’에서 활동중인 엠마 게논은 이런 흐름 속에서 책 ‘아무것도 하지 않는 1년’(A Year of Nothing)을 출간했다. 열두 달 동안 자신이 시도한 휴식을 다룬 이 책은 올 여름 출간과 동시에 큰 인기를 끌며 빠르게 매진됐다. 책을 사기 위해 재출간이 있는 11월까지 기다려야 할 정도다.
게논이 한 시도는 단지 생활방식을 바꾸는 차원이 아니었다. 그는 극심한 번아웃에 시달렸고, 결국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후 1년간 휴식과 회복을 위해 노력 했고 그 이야기는 두 권의 책에 담겼다. 이 책에서는 일기 쓰기와 어린이 TV 프로그램 시청, 조류 관찰, 냉수 수영 같은 활동을 통해 그가 건강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만날 수 있다.
게논은 2010년대 걸보스 문화(사회 전반에서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문화)를 몸소 실천해 온 세대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내용의 저서 ‘성공의 신화’(The Success Myth)를 통해, 조금씩 걸보스 문화와 멀어졌다. 그러다가 엄청난 번아웃을 맞닥뜨렸고 휴식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돌이켜보면 위험 신호가 많았어요. 굉장히 혼란스러웠고, 두통은 심했고, 집중할 수 없었죠. 하지만 ‘나는 지금 바쁘니까 열심히 해야만 해’라는 생각으로 상황을 버티려 했었죠.” 그러던 2022년, 개논의 몸은 갑자기 강제 종료 모드가 됐다. “휴대전화나 모니터 화면을 볼 수 없었으며, 걸을 때도 몸이 쇠약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만성 번아웃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 지경에 이르러서야 (일을) 쉬게 되는데요. 사회가 우리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극한까지 밀어붙이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는 낮잠을 자고 공원에서 산책을 하게끔 태어난 존재입니다. 수영을 하고 하늘을 바라보도록 태어났죠. 그런 것들은 정말 중요해요.” 게논는 지난 경험을 좀 더 느리고 여유로운 삶으로 이어가기로 결심했다. “건강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게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서점의 자기계발이나 철학 코너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1년’ 뒷부분에 있는 추천 도서 목록에는 속도를 늦추라고 말하는 책들이 즐비하다.
2019년에도 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How to Do Nothing: Resisting the Attention Economy)’이 화제가 됐다. 이윤에 굶주린 기술과 소셜 미디어가 어떻게 우리의 주의력을 소모시키고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지를 설명한 책이다. 그는 주변의 자연 세계와 우리 자신의 내면에 대한 인식을 쇄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델은 “우리의 가치가 생산성에 의해 결정되는 세상에서” 1분 1초를 업무가 아니라면 자기계발에 잘 써야 한다는 끊임없는 “목표 지향적” 기대에 적극적으로 저항해온 작가다. 모든 시간을 최적화해야 한다는 압박에 대한 저항은 올리버 버크만의 2021년 저서 ‘4천 주’(Four Thousand Weeks)에서도 나타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인생은 짧고 할 일 목록에 있는 모든 일을 우리가 다 해낼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보다 효율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완벽주의 대신 현재를 온전히 살아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최근에는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네덜란드어, ‘닉센’(niksen)이 여러 책에 등장했다. 팬데믹 시기에 출간돼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던 올가 메킹의 책 ‘닉센’과 이어 나온 ‘리틀 북 오브 휘게’(the Little Book of Hygge)라는 책이 대표적이다. 이를 보면 북유럽에서나 할 법한 삶의 방식 조언이 요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듯하다.
‘휴식’이라는 단어도 유행이다. 2022년에 나온 요가 강사 옥타비아 라힘의 책 '멈춤, 휴식, 존재’(Pause, Rest, Be)는 큰 변화나 불확실한 시기를 겪고 있는 독자들이 속도를 늦추고 내면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라힘은 인스타그램용 복근 보다 자기 인식과 평화, 고요함에 대한 깨달음이 요가에서 얻을 수 있는 더 중요한 과실이라고 말한다.
실용적인 책으로는 클라우디아 해먼드의 ‘휴식의 기술’(The Art of Rest)이 있다. 이 책은 전 세계 단위 연구에서 확인된 가장 휴식이 되는 10가지 활동을 소개하고, 목욕이나 독서, 자연 속에서 보내는 시간 등 의도적인 휴식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래서 해먼드는 “휴식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라고 썼다. 캐서린 메이의 저서 ‘겨울나기’(Wintering)는 ‘고달픈 시기 속 휴식과 물러남의 힘’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다. 이 책은 삶의 계절성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저자의 서정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저자는 책에서 밀어붙이기 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자신을 돌봐야 하는 휴지기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속도를 늦추고, 여가 시간을 늘리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쉬는 것이 지금은 너무나 큰 변화처럼 여겨지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썼다.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 알렉스 수정 김 방의 ‘덜 일할 때 더 많은 일을 해내는 이유’라는 부제를 단 저서 ‘휴식’은 과로를 실존적 문제가 아닌 생산성 관점에서 다룬다. 이 책은 더 많은 것을 성취하기 위해 휴식의 가치를 앞세우던 2016년에 나왔다.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정신 건강과 정신적 웰빙, 일과 삶의 균형, 심지어는 재미의 관점에서 휴식을 옹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책들은 그 배경이나 특징이 다양하다. 오델의 급진적이지만 종종 학문적인 이론(반자본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현상학’과 같은 용어를 자유롭게 사용)과 목욕이나 크레파스 놀이를 권장하는 아늑하고 파스텔 톤의 책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다. 하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 틱톡에서 일어나는 유행과 고상한 에세이,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자기계발서까지 아우르는 것이 있다는 것은 분명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급진적 휴식
그렇다면 서구의 허슬 컬처(개인적인 생활보다 업무를 중시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을 권장하는 문화)와 걸 보스 문화가 조용한 사직과 급직전 휴식, 슬로우 리빙으로 전환된 것일까? 간단하다. 우리 삶이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다.
게논은 BBC에 “우리 모두가 너무너무나 피곤한 상태에 놓여 있다”며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모든 걸 잘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에겐 돌봐야 할 몸과 마음이 있는데, 정작 그 노력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기술은 이런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이다. 휴대전화로 이메일에 답장할 수 있게 되자 업무 효율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하게 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소셜 미디어의 확산으로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에서 콘텐츠를 발굴하고 개인 브랜드를 강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됐다. 트래킹 앱은 여가 활동과 운동, 심지어 식사와 수면과 같은 생활의 필수 요소까지 데이터로 전환해 비교하고 개선의 노력을 하게 만든다.
많은 이들이 성취 중심 문화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을 때, 팬데믹이라는 변수가 나와 판도를 바꿨다. 팬데믹은 분명 끔찍한 일이었다. 그리고 많은 노동자들의 생계 활동이 멈춰섰다. 처음으로 재택 근무를 하며, 출퇴근이 사라진 이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속도를 늦추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어쩌면 지금의 흐름은 세대가 교체되며 나타는 변화일지도 모른다. 밀레니얼 세대는 번아웃 세대라고 불리며, 성공을 위해 열심히 일하도록 자랐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금융 위기 이후 엄청난 빚을 안고 학교를 졸업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번아웃을 내세운 책들도 나오고 있다. 앤 헬렌 피터슨의 책 ‘캔트 이븐’(Can't Even: How Millennials Became the Burnout Generation)은 자본주의와 이윤 및 생산성 추구가 어떻게 밀레니얼 세대를 번아웃으로 몰아넣었는지 탐구하는 책으로 번아웃의 사회 정치적 원인을 진단한다. 에밀리와 아멜리아 나고스키가 함께 슨 ‘번아웃’(Burnout: Solve Your Stress Cycle), 셀리나 바커의 ‘번아웃’(Burnt Out: The Exhausted Person's Six-step Guide to Thriving in a Fast-paced World) 같은 실용적 가이드도 있다. 이 책들은 모두 2020년에 출간됐다.
게논은 이러한 세대적 현상을 부모 세대와 연관지어 설명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매우 소비주의적입니다. 통계적으로 가장 많은 기술을 사들였고, 가장 많은 재산을 소유했으며, 물건과 돈, 성공을 사랑하는 세대입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인 밀레니얼 세대는 기본적으로 부모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죠. ‘성취하고 성공하면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으니까요. 이는 정말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만성적인 번아웃은 우리가 글로벌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대가다. 느린 속도로 살기로 결심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결코 만족하지 않는 삶’에 대한 반작용이다. 게논은 더 많은 지위나 물질을 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더 많은 시간을 가지려는 현재의 움직임이 우리 사회에 건강한 신호로 남기를 바라고 있다. “비를 막아줄 지붕이 있고 공과금을 낼 수 있다면, 뭐가 더 필요할까요?”
물론 이 장미도 가시가 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더 많은 시간을 쉬는 것에 대해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을… 나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이미 매우 큰 특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 게논은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를 썼고, 뉴스레터 ‘더 하이픈’(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1년 동안에도 유지했다)으로만 6자리 숫자의 수입을 올렸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제니 오델은 스탠포드 교수로 재직할 당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찬사를 담은 글을 썼다. 캐서린 메이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녀를 홈스쿨링을 하는, 자신의 ‘겨울 나기’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슬로우 리빙이 실현 불가능한 생활방식에 지나치게 집중한다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골집과 꽃꽂이하는 백인 여성, 따뜻한 색감의 린넨 침대 같은 사진들이 쏟아진다. 뭔가를 덜 하는 게 남들과 다른 생활방식을 자랑하는 것처럼 변모될 위험은 없을까?
게논이 소개한 리트릿과 반사 요법, 라이프 코칭, 많은 휴가, 오두막집 숙박 등의 치유 활동은 돈이 드는 것들이다. 그래서 나는 “생계를 위해 투잡을 하느라 휴가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에게 물었다.
게논은 자신이 일을 그만둘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하루나 일주일 정도를 쉬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돈이 들지 않는다’는 오랜 격언을 잊지 말라고 했다.
게논이 번아웃으로 정말 힘들었던 어느 날, 그는 산책을 하고 1파운드짜리 수선화 한 다발을 샀다. 그게 그날의 모든 활동이었다. 다리를 쭉 뻗고 노란 꽃을 꽃병에 꽂는 것만으로도 그는 하루를 버텨낼 수 있었다고 했다. “어디를 가느냐 혹은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예요. 그저 저를 기분 좋게 해줄 뭔가를 하고 싶을 뿐이죠. 그런 일에 큰 돈이 들지 않는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