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초' 백지신탁 거부하고 사퇴한 구청장‥"보궐선거 비용만 30억 원" [M피소드]
국민의힘 문헌일 서울 구로구청장이 그제(15일) 사퇴했습니다.
지난 2022년 취임한 지 2년 만으로, 4년 임기 중 절반을 남겨 놓은 상태였습니다.
발단은 문 구청장이 가지고 있는 주식이었습니다.
문 구청장은 본인이 구로구에 설립한 정보통신회사 '문 엔지니어링' 주식 4만 8천 주 등 170억 원대의 비상장 주식을 갖고 있습니다.
백지신탁심사위원회는 지난해 3월 문 구청장이 소유한 '문 엔지니어링' 주식에 대해 '직무 관련성이 있다'며 백지신탁을 결정했습니다.
구로구청이 통신 관련 공사를 발주하고 검사와 관련한 업무도 맡기 때문에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 구청장은 본인이 소유한 주식과 구청장 업무가 직무 관련성이 없다며 백지신탁 결정에 불복해 행정 소송을 냈습니다.
'회사가 구로구 내 사업을 수주하지 못하게 정관을 바꾸고, 본사도 서울 금천구로 이전했다'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구청장 업무를 통해 회사 경영이나 재산과 관련된 상당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구청장직을 이어가려면 '문 엔지니어링' 주식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되자, 문 구청장은 주식 대신 구청장직을 포기했습니다.
"법원의 결정은 그간 사심 없이 공명정대하게 구정을 수행해 온 저로서는 매우 아쉽고 가슴 아픈 결정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임기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는 데 대해 죄송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이 크지만, 스스로 사퇴하고자 합니다."(지난 15일 문헌일 구로구청장 사퇴문 중)
이번 사퇴로 문 구청장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직을 내려놓는 역대 14번째 민선 서울 구청장이 됐습니다.
앞선 13번은 어떤 사례들이 있었을까요?
임기를 채우지 못한 첫 사례는 지난 1996년 노원구에서 있었습니다.
최선길 당시 노원구청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취임 1년 9개월 만에 당선이 무효가 됐습니다.
최 전 구청장을 포함해 실형을 받아 구청장직을 잃은 사례는 모두 9번입니다.
지난 2007년에는 이훈구 당시 양천구청장이 유명 강사에게 자신의 검정고시 시험을 대신 치르게 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사퇴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엔 지난해 6월 김태우 당시 강서구청장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형을 확정받으면서 구청장직을 상실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반 소속 수사관으로 재직하면서 공무상 취득한 비밀을 폭로한 혐의였습니다.
김 전 구청장은 이후 3개월 만에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사면 복권돼, 본인의 구청장직 상실로 치러진 바로 다음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다시 후보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결국 더불어민주당 진교훈 후보에게 밀려 결국 낙선했습니다.
당시 보궐선거 출정식에 나선 김 전 구청장은 ‘보궐선거 비용 40억 원에 관한 책임’ 공세에 대해 “(1년에 1,000억 원 넘게) 벌어드리기 위한 수수료 정도로 애교 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해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머지 4번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자진해서 사퇴한 경우였습니다.
서울 구청장 중 백지신탁을 피하려 구청장직을 포기한 건 문 구청장이 처음입니다.
문헌일 구청장은 정보통신기술 공학박사 출신으로 지난 1990년 정보통신회사 '문엔지니어링'을 세웠습니다.
이런 이력을 살려 지난 2022년 '구로를 4차 산업을 선도하는 첨단산업도시로 만들겠다'며 지방선거에 출마했고, 구로구청장에 당선됐습니다.
하지만 당선 2년 만에 문 구청장이 사퇴하면서 구로구청은 새 구청장을 뽑는 내년 4월까지 부구청장 권한대행 체재로 운영됩니다.
"공약이라고 하는 걸 '고용계약서'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구민들이 임기 4년의 구청장을 고용한 거예요. 그런데 그 피고용인이 자기의 이해 때문에 그만두겠다고 하면 구민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당황스럽죠. 일정 기간은 대행 체제에서 현상 유지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지역의 어떤 현안 사업이나 핵심 사업들이 굉장히 더뎌질 수 있기 때문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에게 돌아간다고 보는 거죠."(이광재 /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
이렇다 보니 보궐선거를 치르는 대신 앞선 선거 때 표를 두 번째로 많이 받았던 후보가 직을 이어받는 일본의 차점자 승계 방식 같은 대안들도 논의됩니다.
보궐선거 비용도 아낄 수 있고, 당선자의 경쟁 정당 후보자가 직을 이어받으니 정당 입장에서도 쉽게 직을 내려놓을 만한 사람을 공천하는 걸 주의하게 된다는 거죠.
보궐 선거를 초래한 당사자나 소속 정당이 선거 비용을 부담하게 하거나, 적어도 해당 정당에선 후보자를 내지 못하게 하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구민과의 약속이었던 공약 집행에 제동이 걸리고, 수십억의 세금을 날리게 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이런 논의들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구로구청장 보궐선거는 내년 4월 2일 열릴 예정인데요.
문 구청장의 사퇴로 치러질 이번 보궐선거에는 30억 원가량의 세금이 들어갈 걸로 추산됩니다.
백승우 기자(100@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647228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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