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방산업계에 또 한 번의 지각변동이 일어났습니다.
수십 년간 한국 전차의 '눈'을 독점하다시피 해오던 절대 강자의 아성이, 예상치 못한 도전자에 의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죠.
현대로템이 주도하는 차세대 K3 전차, 일명 NG-MBT 프로젝트의 핵심 부품 사업자 선정에서 한화시스템이 아닌 LIG D&A가 깜짝 승리를 거머쥔 것입니다.
업계 내부에서조차 '우위 사업'이라 자신했던 한화시스템을 후발 주자가 뒤집어버린 이 결과는, 단순한 계약 하나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향후 수조 원대로 커질 무인 무기체계 시장의 판도가, 바로 이 계약으로부터 새롭게 그려지기 시작했다고 보입니다.
수십 년 독점을 뚫은 '깜짝 수주'의 전말
세계일보의 20일 보도를 종합하면, LIG D&A는 최근 K3 전차에 탑재될 '유무인 복합 조준경'과 '전장 가시화 체계' 입찰에서 수주에 성공했습니다.
이 두 장비는 차세대 전차의 작전 능력을 좌우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K3 전차는 현재 연구개발 단계에 있으며, 2030년에 시제품을 완성하고 2040년부터 실전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수주가 업계의 사전 예측을 완전히 뒤집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K계열 전차의 사격통제장치는 오랜 기간 한화시스템의 전문 영역이었습니다.
현재 국군이 운용 중인 K1A1 전차부터, 폴란드 수출 대박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K2 흑표 전차까지 모두 한화시스템이 만든 사격통제장치를 심장처럼 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4세대 K3 전차 사업에서도 한화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고, 회사 내부에서조차 '우위 사업'이라는 표현이 오갔을 정도였다고 하죠.
K3 전차, 승무원이 사라진 '무인 포탑'의 시대를 열다
LIG D&A가 따낸 두 장비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K3 전차가 기존 전차와 얼마나 다른 물건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전차의 모습은 포탑 위로 전차장과 포수의 상반신이 불쑥 올라와 주변을 살피는 장면일 것입니다.
그러나 K3 전차에는 그런 광경이 없습니다. 포탑 안에 사람이 아예 탑승하지 않는, 이른바 '무인 포탑(Unmanned Turret)' 구조를 채택했기 때문이죠.

이 무인 포탑 시스템은 현대 기갑 전력의 혁명이라 불릴 만한 변화입니다.
승무원 수는 대폭 줄고, 그 빈자리는 인공지능(AI) 기반 사격통제장치가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전차 승무원들은 차체 내부의 보호된 공간에서 원격으로 포탑을 조종하며, 무인 포탑에 장착된 '유무인 복합 조준경'과 '전장 가시화 체계'가 바깥 세상을 대신 '보고' 그 정보를 승무원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LIG D&A가 만들 두 장비는 단순한 부품이 아니라, K3 전차가 바깥 세상을 인식하는 감각 기관 그 자체라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전차의 눈' 그 이상… 유무인 복합 조준경이란 무엇인가
유무인 복합 조준경이라는 이름이 조금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이 장비는 단순히 적을 조준하는 망원경 수준의 물건이 아닙니다.
주·야간을 가리지 않고 표적을 탐지하고 식별하며, 레이저 거리 측정은 물론이고 AI 기반의 자동 표적 추적까지 수행하는 복합 광학 시스템이죠.
여기에 더해 K3 전차가 운용할 동반 무인 전투차량이나 드론과도 정보를 주고받으며 협동 작전을 펼칠 수 있도록 설계되는 것이 '유무인 복합'이라는 수식어의 진짜 의미인 것입니다.

전장 가시화 체계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이 체계는 차량 주변 360도 상황을 모든 각도에서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AI가 이를 분석해 위협 요소를 자동으로 분류한 뒤 증강현실(AR) 형태로 승무원의 디스플레이에 표시해주는 시스템입니다.
이스라엘 메르카바 전차에 적용된 '아이언 비전(Iron Vision)'이나 미국이 차세대 전차에 적용을 추진 중인 유사 시스템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승무원은 두꺼운 장갑 안에 안전하게 들어앉아 있으면서도, 마치 포탑 위에 직접 올라서 있는 것처럼 바깥 상황을 낱낱이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한화시스템을 이긴 LIG D&A, 그 저력은 어디서 나왔나
그렇다면 후발 주자로 여겨지던 LIG D&A는 어떻게 이 난공불락의 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을까요.
LIG D&A는 LIG넥스원 그룹의 일원으로, 방산 전자·광학 분야에서 꾸준히 실력을 쌓아온 기업입니다.
특히 무인 체계와 AI 기반 센서 통합 기술에서 최근 몇 년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축적해왔죠.

업계에서는 LIG D&A가 이번 수주에서 승기를 잡은 배경으로 '유무인 복합 운용'이라는 K3 전차의 핵심 요구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기술 포트폴리오를 제시했다는 점을 꼽고 있습니다.
한화시스템이 전통적인 유인 전차 조준경에서 쌓아온 노하우가 오히려 무인 포탑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결정적 우위로 작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것이죠.
반면 LIG D&A는 처음부터 무인·AI 중심의 접근 방식으로 제안서를 꾸렸고, 이것이 현대로템과 방위사업청의 미래 지향적 요구에 정확히 꽂힌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조 원 무인 체계 시장,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입니다
이번 계약의 진정한 가치는 당장의 매출액이 아니라 앞으로 열릴 거대한 시장에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최근 미국-이란 군사 충돌을 거치면서 무인 무기체계의 효용은 전 세계 군사 전문가들에게 확실히 각인됐습니다.
드론, 무인 전투 차량, AI 기반 사격통제 시스템이 전장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는 이미 매일의 뉴스가 증명하고 있는 것이죠.

한국군도 이런 세계적 흐름과 심각한 병역 자원 감소 문제를 동시에 고려해, 무인 전투체계의 비중을 대폭 늘려갈 계획입니다.
향후 10~20년 사이 국내 무인 무기체계 시장만 수조 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고, 수출 시장까지 감안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지게 됩니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조 원 규모로 예상되는 무인체계 개발 경쟁에서, 유무인 복합체계를 개발하며 확보한 기술과 자료는 LIG D&A의 핵심 역량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을 정도입니다.
K-방산 지형도를 다시 그리는 신호탄이 되다
이번 수주는 단순히 한 회사의 승리를 넘어서, 한국 방산업계의 권력 지형도가 재편되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보입니다.
한화시스템, LIG넥스원 중심의 양강 구도였던 방산 전자·광학 시장에, LIG D&A라는 강력한 신흥 강자가 본격적으로 가세한 것이죠.
경쟁이 치열해진다는 것은 소비자, 즉 한국군과 수출 파트너 국가들에게는 더 좋은 제품을 더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번 계약은 향후 K3 전차가 수출 시장에 진출할 경우에도 중요한 레퍼런스가 될 전망입니다.
폴란드에서 대성공을 거둔 K2 흑표의 뒤를 이어, K3 전차 역시 유럽과 중동,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의 관심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때 LIG D&A의 '전차 눈'은 한화시스템과는 또 다른 결의 세일즈 포인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무인 포탑과 AI 기반 조준 시스템은 차세대 전차 시장에서 결정적 차별화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2040년, K3 전차가 실전 배치되는 그날이 오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무인 포탑 AI 전차'를 대규모로 운용하는 국가 중 하나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전차의 '눈'에는 LIG D&A의 로고가 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한화시스템의 오랜 독점이 깨진 이 순간이, 훗날 돌아봤을 때 한국 지상무기 체계의 새 장을 연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