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우리 기생충

1. 보이지 않는 주인 기생충
4만 5천여 종의 척추동물에 기생하는 기생충의 종 수는 무려 7만 5천 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생물 종 중에서 기생충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40%에 달한다고 한다. 비록 인간의 경우에는 다양한 약물을 통해 인간 몸에 기생하는 기생충들을 거의 전멸시켰다고 하지만, 아직 자연에서는 수많은 기생충들이 존재하고 있다. 단순히 몸안에서 기생하는 것뿐만 아니라, 숙주를 조종하고 다양한 형태로 변화시키기까지 하는 기생충. 오늘은 그 기생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한 줄 요약 : 숙주를 조종하기도 하는 기생충에 대해 알아보자.

2. 다양한 종류의 기생충
(1) 메디나충

메디나충은 아프리카나 중동, 인도, 파키스탄 등에 분포하고 있는 기생충이다. 보통 사람이나 동물의 근육 및 피하조직에 기생하며 살아간다. 메디나충의 감염 경로는 오염된 물에 살고 있는 물벼룩이다. 인간이나 동물이 오염된 물을 마시면서 물벼룩까지 같이 먹게되어 기생충에 감염되게 된다. 물벼룩은 위 속에서 그대로 녹아내리지만, 메디나충의 유충은 살아남아 몸속에 자리를 잡는다.

오염된 물을 통해 메디나충에 감염되게 된다.

감염된지 약 1년 정도 지난 후, 메디나충이 유충을 밖으로 내놓을 때가 되면서 증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메디나충은 다리 쪽으로 터널을 파고 내려와 살갗 밑에 자리를 잡는다. 이때 숙주는 심한 가려움과 타는듯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메디나충은 숙주의 몸속에서 특수한 물질을 분비하는데, 이 물질은 숙주에게 면역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몸 안에서 격렬한 면역반응이 일어나고 물집이 생기며 결국 피부가 찢어지게 된다.

이런 통증을 줄이기 위해 숙주는 시원한 강가를 찾게 되고, 물속에 다리를 담근다. 이때 메디나충은 수백만 마리의 유충을 물속에 배출하게 된다. 이때 물벼룩들이 유충을 다시 잡아먹게 되고, 그 물벼룩은 물을 마시는 다른 생물의 몸으로 또다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반복되는 사이클 속에서 메디나충은 기생하며 살아간다.

메디나충은 숙주를 조종해 강가에서 유충을 배출한다.

(2) 연가시

연가시는 곤충의 내장을 뚫고 들어가 아주 작은 크기에서 때로는 2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로도 성장하는 기생충이다. 연가시는 숙주를 물속으로 뛰어들도록 조종하는 기생충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짝짓기 시기가 되면, 곤충의 신경계에 작용하는 특정 단백질을 분비해 숙주가 스스로 물에 빠져 죽게 만든다.

연가시는 숙주가 물속에 들어가면 몸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짝을 찾기 시작한다. 그렇게 짝짓기에 성공한 암컷은 수백만 개에서 많게는 이천만 개의 알을 낳는다. 이 알들은 2주 정도가 지나면 부화하여 유충이 된다. 이후 물속을 떠다니는 연가시 유충들은 장구벌레 같은 작은 유충들의 먹이가 된다. 그렇게 연가시 유충은 장구벌레의 장세포안에서 살기 시작한다.

연가시는 숙주를 조종해 물속으로 뛰어들게 한다.

이후 모기가 된 장구벌레는 지상으로 나와 사마귀 등의 먹이가 된다. 이렇게 연가시는 다시 새로운 숙주의 몸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렇게 사마귀 등 다른 육지 곤충의 장속에서 자리를 잡고 성장한 연가시는 짝짓기 시기가 오면 다시 숙주를 조종해서 물속으로 뛰어들게 한다. 연가시는 다시 짝을 찾고, 그렇게 연가시의 사이클이 반복되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연가시는 사람 몸속에서는 기생하지 못한다.

연가시는 먹히고 먹히며 기생을 반복한다.

(3) 리베이로이아 온다
트레미국 남서부에서 다리가 세 개인 개구리와 같이 수많은 기형 개구리들이 발견되었다. 이 기형 개구리들을 해부해 혈액과 내장을 샅샅이 살펴본 결과, 그들의 몸에서 공통적으로 리베이로이아 온다트레라는 기생충이 발견되었다. 이 기생충은 1차 숙주인 달팽이, 2차 숙주인 양서류나 어류, 최종 숙주인 포유류나 조류를 거쳐 번식하는 기생충이다.

기형 개구리들은 공통적으로 리베이로이아 온다트레라는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었다.

새의 배설물 속에 들어있던 리베이로이아의 알은 물속에서 부화하여 달팽이 몸 안으로 들어간다. 유충은 달팽이의 생식기관으로 칩입한 뒤, 그 안에서 엄청난 숫자로 증식하게 된다. 그렇게 몇 단계로 성장하고, 이제 이 유충은 달팽이의 몸 안에서 나와 올챙이라는 새로운 숙주를 찾아 나선다. 올챙이의 몸속으로 들어간 이들은 개구리를 기형으로 만드는 특수한 물질을 만들어낸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될 때 뒷다리가 만들어지려면 비타민 A의 대사산물인 레티노산의 농도가 중요한데, 농도가 높으면 다리가 많이 생기고 너무 낮으면 다리가 잘 생겨나지 않는다. 리베이로이아 흡충은 레티노산을 분비해 올챙이 체내의 레티노산의 농도를 급격히 높임으로써 다리가 더 많이 생겨 나게 만든다. 실험을 해보면 기형 개구리는 정상에 비해 41%나 점프 거리가 짧고 물속에서 헤엄을 치는 속도도 37%나 줄어든다고 한다. 그렇게 행동이 느려진 기형 개구리들은 새에게 잡아먹힐 확률이 높아진다.

새에 잡아먹히기 쉽게 기생충은 개구리를 기형으로 만든다.

개구리의 죽음은 리베이로이아에게는 새로운 삶의 신호다. 이 기생충은 현재 숙주인 개구리를 천적에게 일부러 먹히게 만든 뒤, 다음 숙주로 옮겨가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개구리와 달팽이는 한 연못 안에서 일생을 보낸다. 하지만 새의 몸속으로 들어간다면 어디든 갈 수 있게 된다. 새는 수천 km를 날아서 이동하는데, 이는 기생충의 종족 번식에 있어서 아주 유리하다.

기생충은 개구리를 기형으로 만듬으로써 성공적으로 종족 번식을 한다.

(4) 머메코네마 네오트로피쿰

밀림개미라고도 불리는 세팔로테스 아트라투스 개미 집단은 약 5% 정도가 머메코네마 네오트로피쿰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되어있다. 이 개미는 새 배설물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배설물안에 머메코네마 네오트로피쿰라는 기생충의 알이 들어있다. 이 기생충 알을 먹은 개미의 배 색깔은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기생충 알로 가득찬 개미의 배는 새들이 좋아하는 빨간 과일과 같은 색으로 바뀐다. 이런 모습은 개미들을 마치 과일처럼 보이게 만들어 새들의 관심을 끈다.

기생충은 개미를 새에게 잡아먹히기 쉽게 만든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 기생충은 개미의 엉덩이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도록 만든다. 이렇게 하면 새에게 잡아먹힐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된다. 새는 이런 개미를 먹게 되고, 이 기생충은 다시 새에게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새는 다른 나무로 날아가 기생충 알이 담긴 배설물을 배출하고 그걸 다시 개미가 먹는다. 이렇게 사이클이 계속 반복된다.

- 한 줄 요약 : 기생충은 자신의 번식을 위해 숙주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종한다.

3. 기생충이 인류에 미친 영향
이 기생충이 여러 생물들을, 그것도 인간의 삶을 엄청나게 변화시켰다면 믿겠는가? 그 엄청난 변화 중 하나는 바로 성의 탄생이다. 생물학적으로 서로 다른 성으로 나뉘어 번식하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박테리아가 무성생식으로 하루 만에 수억 마리로 불어나는 모습을 본다면, 남녀라는 다른 성이 만나 유성생식을 하는 인간은 정말 비효율적이다. 이처럼 단순히 번식의 속도에만 집중해서 본다면, 유성생식 생물은 무성생식 생물에 비해 매우 불리한 번식 전략을 가지고 있다.

유성생식 생물인 인간은 번식의 속도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을 포함한 많은 생물들은 유성생식을 통해 번식을 하고 있을까? 진화생물학자 피셔와 실험유전학자 멀러는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유성생식의 가장 큰 이유는 돌연변이를 빠르고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돌연변이들은 무성생식 생물들에 비해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고, 계속해서 생존할 수 있게 된다. 급격히 환경이 바뀌게 되면, 모두가 똑같은 무성생식 생물들은 전멸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계속 다른 특성이 나오는 유성생식 생물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

유성생식의 장점은 돌연변이의 탄생이고, 이는 환경변화 대처에 유리하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진화생물학자 윌리엄 해밀턴은 기생충이 유성생식의 이유라고 말한다. 숙주가 기생생물의 공격을 막기 위해 성을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기생생물의 공격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살아남기 위해, 돌연변이를 만드는 유성생식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생생물이란 기생충을 포함해 기타 바이러스 및 세균도 포함된다.

진화생물학자 조켈라 교수는 해당 이론을 바탕으로 실험을 하나 진행했다.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을 모두 할 수 있는 진흙 달팽이로 실험을 진행했는데, 이 달팽이를 유성생식 그룹과 무성생식 그룹으로 나눈 뒤 기생충을 투입시켰다. 시간이 지나자 무성생식 달팽이 그룹은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 반면 유성생식 달팽이 그룹은 오히려 개체수가 꾸준히 증가했다. 유성생식으로 태어난 새끼는 서로 다른 두 유전자가 합쳐져 만들어졌기에, 부모와는 다른 유전형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기생충의 공격에도 대항할 수 있게 계속해서 진화한 것이다.

- 한 줄 요약 : 인간은 기생생물의 공격에 대처하고 생존하기 위해 유성생식을 시작했다.

4. 치료용 기생충
그렇다면 기생충은 인간에 해만 끼치는 해충일까? 기생충이 의료용으로 연구되고 있다면 어떨까? 현재 장염 환자와 만성 염증성 장질환(크론병) 환자를 기생충으로 치료하는 방안이 나오고 있다. 이는 자가면역질환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었는데, 자가면역질환은 자신의 항체가 자신의 세포를 공격하는 질병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 몸의 면역계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자가면역질환의 치료 방안으로 기생충이 연구되고 있다.

현재 인간은 과거에 비해 매우 위생적인 환경에 살게 되었다. 따라서 면역계가 공격할 장내 기생충이나 미생물들이 체내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 결과 할 일이 없어진 면역계가 과민반응을 일으켜 같은 편인 세포를 공격하기도 하는데, 이를 위생가설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해당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를 반대로 생각해보면, 면역계가 공격할 기생충을 체내에 넣어준다면 면역계가 같은 편을 공격하는 일이 줄어든다는 말이다. 그럼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지게 될 것이다.

면역계가 적당히 공격할 수 있는 기생충이 있다면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하지 않는다.

실제로 2005년 로버트 섬머 박사는 최초로 기생충을 이용해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려는 실험을 하게 된다. 그는 만성 염증성 장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돼지 편충 알을 3주에 한 번, 2500개씩 24주 동안 먹이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29명의 환자 중 21명의 증세가 호전되었다. 궤양성 대장염 환자를 대상으로 추가 실험을 진행했는데, 돼지 편충 알을 먹은 30명의 환자 중 13명이 그 증세가 나아졌다.

돼지 편충의 알을 먹는 환자들은 그 증상이 호전되었다.

그렇다면 돼지 편충은 안전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전하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돼지 편충의 안전성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돼지 편충은 인체에 어떠한 질환도 유발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에게로 전파되지도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돼지 편충은 장점막을 뚫고 인체의 다른 조직으로도 이동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유럽에서는 돼지 편충 알이 궤양성 대장염 치료 목적 의약품으로 승인받기도 했다.

- 한 줄 요약 : 기생충은 인체에 적당히 필요할지도 모른다.

* 참고자료
(1) 기생 - EBS 다큐프라임
(2) 기생충 제국 - 칼 짐머
(3)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 정준호
(4) 기생충 열전 - 서민
(5) 기생충을 이용한 염증성 장질환 치료제 최근 연구 동향 - 질병관리본부
(6) 장염 환자에게 기생충 알 2,500개를 먹이면? - 과학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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