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적 대응 필요한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한국의 창(窓)]

2026. 5. 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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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 시대, 높아진 경제안보의 의미
민간·시장 넘어선 국가 차원의 관리 필요
여야의 초당적 개정안, 조속한 처리 희망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국가정보원 건물. 배우한 기자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주도로 진행된 무차별적인 관세 부과와 이란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교란은 4년째 지속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물려 세계 질서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국 주도로 자유주의와 다자주의 원칙에 기반한 국제규범이 훼손되는 상황은 보통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강대국 간 경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국과 중국 간 경쟁이 과거 냉전시대로의 회귀가 아니라, 19세기를 풍미했던 제국 간 세력 다툼의 재현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변화하는 세상을 설명하는 틀은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지만, 신냉전을 외치는 사람이건 소위 '천하삼분지계(미국은 서반구, 중국은 아시아, 러시아는 유럽)'를 내세우는 사람이건 지난 30여 년 동안 열려있던 세상이 다시 닫히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닫혀가는 세상'에서 경제 문제는 민간 차원을 넘어 국가의 안보와 직결된다. 경제안보가 중시되는 이 시점에 국가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정보'에 특별한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열린 세상에서는 국가들이 어느 정도 정보를 공유하면서 공동으로 번영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각자도생을 강요받는 세상에서는 독자적으로 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능력과 핵심적인 정보의 유출을 막는 역량이 요구된다. 이것은 민간 차원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예를 들어 정유업계는 원유 공급망과 직결된 정보는 잘 파악하고 있겠지만 그것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식량, 광물, 반도체 공급망 관련 정보는 충분히 갖추지 못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반도체업계는 희토류 공급망 관련 정보에는 정통하지만, 에너지 공급망 관련 정보의 질과 양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정보의 유출과 확산을 막는 작업에 있어서 시장행위자가 국가보다 낫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국민의 안위와 직결된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특화된 국가 조직이 바로 국가정보원이다. 국가정보원은 방첩, 대테러 업무뿐 아니라 사이버 위협 탐지, 해외 정세 분석, 전략 정보 수집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 모두가 법적으로 명시된 범위에서 진행되는지 여부가 모호한 경우가 있다. 특히 경제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에 대한 직무 근거가 부족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경제안보 현안과 관련하여 현재 공급망 3법(공급망안정화법, 소부장산업법, 자원안보법)이 제정되어 있다. 공급망 3법은 국민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자원, 소재, 부품, 장비 등의 비축 및 수입선 다변화를 가능하게 했고, 대체기술 개발과 국내 생산을 위한 정책 지원의 근거도 마련하였다. 하지만 갈수록 엄혹해지는 세계 경제안보 정세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급망 정보의 수집, 활용, 처리와 관련된 권한과 업무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달 7일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과하여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겨진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개정안은 국가정보원의 직무 범위에 경제안보를 명시하여, 그동안 법적 근거가 충분치 않아 제약을 받았던 공급망 리스크와 첨단 기술 유출 관련 정보를 수집, 작성, 배포할 수 있는 권한을 국가정보원에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개정안은 여야 의원이 모두 참여한 초당적인 법안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극심한 정치 양극화의 여파로 상당수의 안보 문제가 진영 논리에 의해 재단되는 경향이 강한 이 시점에, 여야 의원들이 힘을 모아 경제안보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제까지 방첩, 대테러, 국제범죄조직 관련 정보에만 집중했던 국가정보원에 반도체, 에너지, 핵심광물, 배터리 공급망과 연계된 정보 관리 권한을 제공하는 법 제정은 경제안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여기에 좌-우, 진보-보수, 여-야의 이견이 들어설 공간은 크지 않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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