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은 규칙 아니라 관계로 성장한다” 아동양육시설 규칙들이 놓친 것

김다은 기자 2025. 11. 10.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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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양육시설 생활규칙을 입수·분석한 전문가들은 ‘효율적인 돌봄’을 추구하는 시설의 모순을 지적했다. 소규모 그룹홈으로 전환한 일본 아동양육시설 ‘삼광숙’을 방문한 경험도 나눴다.
10월27일 <시사IN> 편집국에서 마한얼 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 김기현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조소연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왼쪽부터)가 국내 아동양육시설의 규칙 개선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10월27일 〈시사IN〉 편집국에서 김기현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한국아동복지학회 회장), 마한얼 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 조소연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 겸임교수(사회복지연구소 마실 공동대표)를 만났다. 전국 아동양육시설 235곳 중 197곳의 생활규칙을 입수·분석한 이들은 돌봄이라는 ‘비효율적’인 행위를 효율의 잣대로 규제하는 시설의 근본 문제를 지적했다. 대형 양육시설에서 소규모 그룹홈으로 전환한 일본 아동양호시설 ‘삼광숙’을 방문한 경험도 나눴다. 아래는 세 사람과 나눈 문답.

시설 생활규칙에서 눈여겨본 특징은?

조소연(이하 조): 돌봄은 비효율적인 행위라고들 한다. 가정에서 아동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보호자는 얼마나 많은 자원을 투입하든 아이를 보호하겠다고 생각하지, 자원을 최대한 ‘적게’ 투입해서 ‘빨리’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수십 명이 공동생활공간에서 장기간 거주하는 양육시설은 효율성이 철학이 된다. 공동식사, 공동치료, 외출·외박·휴대전화·샤워시설 제한 등이 그 단면이다. 규칙을 통한 통제는 필연적으로 규칙으로부터의 이탈과 낙인으로 이어지게 된다.

김기현(이하 김): 생활규칙 이름이 ‘선도 규정’인 곳도 있었다. ‘선도’라는 말을 쓰는 가정이 있나? 아이들은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시설에 오게 됐다. 그럼에도 자신을 치료받아야 하고, 고쳐야 할 게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시설의 관점을 생활규칙을 통해 깨닫게 된다. 아동들은 매우 민감하고 예민하게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느낀다.

마한얼(이하 마): 구체적인 처벌 규정이 수십 개씩 되는 곳도 있다. 시설이 공포감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런 상황에 장기간 노출되면 아동이 무기력을 학습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 없다는 소리를 듣지’라는 말을 들어도 시설 내에서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보호아동에게 들은 적이 있다. 또 보육사의 말을 잘 듣는 것, 순응하는 것, 보육사와 친밀한 것 등이 아동을 평가하는 기준이라는 사실은 시설이 ‘아동 중심’이 아닌 ‘성인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규칙에 대해 평가한다면.

: 신입 입소 아동에 대해 외출·면회를 금지하는 조항은 원가정 복귀를 막는 걸림돌이다. 요양보호시설에도 입소 후 한두 달씩 외부인을 못 만나게 하는 규칙이 있다. 작동 원리가 같다. 시설 밖 생활은 포기해라, 무조건 이곳에 적응하라는 거다. 원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지원하는 것도 시설의 역할인데 모순이다. 기물 파손 시 배상, 시끄럽게 떠들면 벌점, 공동생활공간 청소 등의 규칙을 두고 ‘펜션 규칙 아니냐’는 씁쓸한 평가도 나왔다.

: 아동자치위원회를 운영해 아동의 참여권을 보장하도록 하는 곳도 있다. 아동에게 동의 서명을 받아 규칙 하단에 표기한 경우도 있는데, 형식적 절차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자치위원을 선출할 때 보육사에게 협조적인 아동, 기존 시설 규칙을 유지하는 데 동의할 만한 아동을 선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아동의 본의를 청취할 때 ‘질문하기’ ‘인정하기’ 등의 방법을 동원해 적극적인 자세로 들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생략되면 아동은 어른들이 기대하는 규범화된 모습을 선호하거나 재현하기 쉽다.

: 교사의 편의나 관리 효율을 위해 만들어진 규정들도 많았다. ‘약은 꼭 교사 앞에서 먹기’ ‘아침 식사를 안 해도 식탁에 앉아 있기’ ‘교사에게 정신적·육체적 위해를 하거나 신고한다고 협박하면 통고와 전원 조치 가능’ 등이다. 어떤 보육관은 60개가량의 규칙 중 절반 이상이 통고·전원 조치에 이르는 아주 꼼꼼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했다. ‘나쁜’ 규칙 한두 개가 문제가 아니라, 수십 개의 미세한 생활규칙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아동의 삶을 규율하는 것이 문제다. 아동의 주체성과 권리를 말하려면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마치 민주주의 교육처럼, 아동이 스스로의 권리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지킬 만한 힘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일본 효고현에 위치한 아동양육시설 삼광숙의 내부 모습. ‘규칙이 없는 것이 규칙‘이라는 이곳은 공동생활을 위해 지켜야 할 ‘약속’은 있지만 아동들과 논의해 개별적으로 적용하며 운영한다. ⓒ아동복지학회 제공

일본 효고현에 위치한 아동양호시설 ‘삼광숙(三光宿)’을 답사하기도 했다. 전후 1950년대 대형 양육시설로 만들어져 지금은 소규모 숙사와 그룹홈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다.

: 이곳은 ‘아이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규칙은 만들지 않는다’ ‘가정에서 지내는 것 같은 평범한 일상생활을 보장한다’ 등을 공동생활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물론 삼광숙에도 기상시간, 식사시간, 취침시간 등이 있다. 하지만 오전 7시 즈음 기상, 밤 11시 즈음 취침 등 ‘즈음’으로 표기돼 있다. 공동생활을 위한 약속이 있지만 아동과 상담 후 개인 상황을 고려해 유연하게 운영할 여지를 둔 거다. 다만, 좋은 규칙이 있으면 아동이 집단 양육시설에서 살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동양육시설에서 가정형 보호로 전환하는 과정 안에서, 시설이 운영되는 동안에라도 생활규칙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 지역의 다양한 삶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시설에는 담이 없고, 그 위치 또한 지역 주민이 생활하는 동네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1인 1실을 쓰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공간은 자신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취향과 개성대로 방을 꾸미며 지낼 수 있었다. 보육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고 일주일에 한 번, 허락을 받고 청소할 때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여건이 좋아야 2인실, 3인실이다. 늦게까지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말라는 ‘주의’가 있지만, 본인이 방에 들어가서 휴대전화를 쓴다 해서 벌점을 주거나 전화를 빼앗는 일도 없다. 사실 일반 가정에는 벌점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곳은 어린이집도 같이 운영하는데, 보육교사와 지역에 거주하는 부모들이 아이를 함께 돌보는 공동양육으로 운영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 ‘아이들은 규율로 변하지 않습니다. 관계로 변합니다’라는 표어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보호아동을 치료의 대상으로 보고 병원에 데려가거나 임상심리사에게 상담을 받게 한다. 이곳은 치료가 아니라 회복에 방점을 두고 전문성을 확보한 보육사가 아동들의 생활에 개입한다. 그 과정에서 보육사 본인 역시 성장한다. 아동·청소년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돌볼지 더 나은 모델을 함께 만들고 현장에 적용하며 역량을 쌓는 것이다.

삼광숙은 일본 복지부가 대형 아동양호시설을 소규모 그룹홈화하는 과정을 추진할 때 일찍부터 방향을 전환한 곳이다. 변화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지역사회와 연결성을 높이고, 부모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지역민이 참여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곳은 아동 돌봄뿐만 아니라 아동학대를 신고하는 자체 채널을 만들고 양육상담센터도 운영한다. 삼광숙은 ‘괴로울 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도와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아동을 양육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시설 종사자 교육 및 시설 평가기준 정비 등이 필요해 보인다.

: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 중에서도 아동 분야 종사자에 대한 교육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그중에서도 시설 종사자 교육은 눈에 띄게 적은 편이다. 고난도의 돌봄 기술이 필요한 일임에도 역량과 노하우를 쌓을 수 있는 공적 자원이 충분히 투입되지 않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에도 보호아동 자립지원(자립지원부), 가정위탁(가정형보호 지원부)을 담당하는 부서는 있어도, 아동양육시설과 그룹홈을 담당하는 부서는 없다. 아동권리보장원조차 양육시설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시설 종사자 교육과 시설에 대한 모니터링 등을 민간 아동양육시설 협의체인 한국아동복지협회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는 경우도 많은데 객관적 모니터링을 위해서는 이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김다은 기자 midnightblu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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