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세나의 비명이 귓가에"... F1 천재 설계자 뉴이의 31년째 죄책감

아일톤 세나

아일톤 세나아일톤 세나, 그리고 애드리언 뉴이. F1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날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들이다.

1994년 5월 1일, 이탈리아 산마리노 그랑프리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고는 전 세계 모터스포츠 팬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아 있다. 브라질의 국민 영웅이자 F1 월드챔피언 3회에 빛나는 아일톤 세나는 당시 윌리엄스 팀 소속으로 경기에 출전했으나, 경기 중 방호벽과 충돌하며 끝내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올해, 그의 마지막 머신을 설계했던 애드리언 뉴이는 여전히 그날을 잊지 못한다고 밝혔다.

"관중들의 비명, 급히 달려가는 구급차, 완파된 머신…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뉴이는 현재 F1에서 가장 존경받는 설계자 중 한 명으로, 레드불 레이싱의 기술 총책을 맡고 있다. 하지만 그의 경력 초창기, 윌리엄스 FW16 설계자로서 세나의 죽음을 경험한 그는 지금까지도 그날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애스턴마틴 F1팀 애드리언 뉴이

애스턴마틴 F1팀 애드리언 뉴이그는 당시 세나의 요청에 따라 스티어링휠의 위치를 소폭 조정하고, 직경을 4mm 줄이는 설계를 반영했다. 이 조정이 사고의 원인이 되었는지를 두고 집중 조사가 이뤄졌지만, 명확한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뉴이와 윌리엄스 팀 관계자들은 재판을 받았고, 무죄로 결론 났다.

하지만 그날 이후, 뉴이는 한 가지를 놓지 못했다. '더 많은 준비를 했다면 세나는 살 수 있었을까'라는 자책이다.

"그때 방호벽 두께를 더 늘려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액티브 서스펜션에서 패시브 서스펜션으로 전환된 것도 머신을 공기역학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었죠."

세나의 사고는 이후 F1 전반에 걸쳐 안전기준 강화와 기술 개선을 촉진시킨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뉴이에게는 여전히 상처로 남아 있다.

그는 말했다.

"더 많은 시간이 있었다면, 더 많은 준비가 가능했다면… 세나를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31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그림자는 뉴이의 마음 속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지피코리아 김기홍 기자 gpkorea@gpkorea.com, 사진=애스턴마틴, 윌리엄스F1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