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건강의 관계는 그리도 애틋했구나 [노동의 표정]

문종필 평론가 2024. 10. 2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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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텍스트 속 노동의 표정
7편 이나임 시인의 브런치
돈 있어야 건강 챙길 수 있는 시대
유기농 식품 즐기느냐도 결국은 돈
자본이 지배하는 일상의 단면들
돈과 시간 또는 돈과 건강의
상관관계 애틋하게 다가와

돈이 있어야 내 삶에 투자할 수 있다. 돈이 있어야 농약이 들어가지 않은 채소를 고를 수 있고, 유기농 우유와 달걀을 고민 없이 사 먹을 수 있다. 어쩌면 삶이 그런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노동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번엔 이나임 시인의 작품 속에서 노동의 표정을 찾아봤다.

돈이 없으면 건강도 챙기기 힘든 시대다. [사진 | 뉴시스]

이나임 시인의 브런치(brunch story) 프로필 소개에는 "삶을 삶아서 가지고 왔으니 맛있게 드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자신의 삶을 고백의 형식으로 여과 없이 보여줄 테니 마음껏 구경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 말이 왠지 모르게 역설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약력을 살펴본다. 웹드라마를 연출했고, 시나리오를 썼고, 음악 작업도 했다. 더불어 영화 비평도 한다. 이것저것 다양한 장르를 횡단하는 재능꾼 같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상을 거칠지만 단아하게 뽑아낸다.

브런치 작품란에는 총 여섯 개-'기일의 일기' '달링알리뷰' '꿈의 해석' '무제와 무게' '피케이 다이어리' '타로 카드'-의 카테고리가 있는데, 그중에서 '기일의 일기'를 읽어 보면 노동하며 견디는 한 사람의 삶을 찾을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모습을 지닌 화자로 느껴졌지만, 그녀가 쓴 언어를 읽어 내려가면서는 강박적으로 언어를 메우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무거운 삶을 애써 견디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건강에도 세금이 붙나요'는 "건강이나 다이어트 어쨌든 비슷한 단어지만 저 둘을 위해서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글귀로 시작하는 글이다. 좋은 샐러드로 건강하게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충분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기농, 무항생제, 1등급, 비건, 방목까지 가뜩이나 비싼 재료들에 수식어가 덕지덕지 붙으며 값은 치솟"으니 말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운동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학교나 공원 운동장에서 조깅하면 그만이지 않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헬스나 요가나 필라테스, 수영 등을 배우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돈을 지불해야 하니 어떤 방식이든지 돈을 지출하게 돼 있다. 그러니 화자의 입장에서는 이것도 돈 저것도 돈인 셈이다. 그래서 그녀는 오랜 시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래전부터 연기, 음악, 글쓰기처럼 돈이 되지 않는 일들만 해왔기 때문에 내게는 평생직장이나 계약직보다 알바가, 그것도 단기 알바가 익숙하다 마트에서는 명절마다 선물세트를 팔고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을 화이트데이에는 캔디를 어린이날에는 인형과 로봇을 크리스마스에는 와인을 팔았다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지만 밤새 글을 쓰거나 영화를 봤던 나로서는 최상의 일이었다 물론 다리가 붓고 목이 붓고 다른 매대의 직원의 시비와 질투를 견디는 것은 내 몫이었다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백화점도 다를 바는 없었다 식품관에서 사과도 팔고 특별매장에서 와인도 팔았다 마트에서 만나는 진상 손님보다는 덜하지만 부유한 사모님들과 연예인들의 여유 있는 쇼핑을 보고 있노라면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기도 했었다

시인은 글을 썼고 연기와 음악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그녀의 본업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돈이 되지 않는다. 돈으로 환원되지 않을 경우, '쓸모' 없는 유희에 불가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화자는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명절에 마트에서 선물 세트를 팔았고,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을, 화이트데이에는 캔디를, 어린이날에는 로봇을, 크리스마스에는 와인을 팔았다.

그런데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술 활동을 하는 화자가 하는 아르바이트가 특정 기념일에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가 했던 일은 단기 아르바이트인 셈이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 날에 와인을 판다는 것은 12월 24일이나 25일 당일이나 이전 며칠 동안만 할 수 있는 알바인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일용직 노동자가 인력사무소에 연락해 하루 일하고 일당을 받는 시스템과 무관하지 않다.

화자는 이런 일을 해가며 돈을 모으고 예술을 지탱한다. 그곳에서 시비가 붙기도 하고 구석으로 몰리기도 했지만 견디며 돈을 벌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화자는 예술가였기 때문에 집에 도착해 지친 몸을 편하게 침대나 바닥에 뉠 수도 없었다. 하루라도 쉬면 감각이 끊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집에 도착해서는 밤새 글을 쓰고 영화를 보며 자신의 꿈을 키웠다. 그런 자신을 거울에 비쳐 보며 한없이 작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행복 총량의 법칙'이라는 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지속적인 안정적인 수입원이 필요하다. 가능하면 출퇴근하지 않고 글 쓰는 일이나 연출하는 일에 지장 없는 자유로운 일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예술 행위를 조금이라도 연장할 수 있는 노동을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읽히는데, 이 말 속에는 마음껏 재주를 부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이 녹아들어 있다.

손쉽게 동정할 필요는 없지만, 예술가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공감하게 된다. '빗소리'에서도 광고 쪽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적는다. "내 감각을 처참하게 부수며 괴롭"히는 일은 해서는 안 되니 그렇다. 시인은 예술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몸부림을 떨고 있다.

이처럼 이나임 시인의 몇 편의 산문에서는 '노동'하며 자신의 예술을 완성하고자 하는 젊은 화자가 등장한다. 그녀의 에세이를 읽고 있자니 앤드류 니콜 감독의 오래전 영화 '인 타임(In Time·2011년)'이 생각난다.

영화 인타임의 세계관은 돈이 곧 시간이란 거다. [사진 | 더스쿠프 포토]

이 영화의 세계관에서는 시간(삶)이 돈이다. 그러니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은 수많은 시간을 고생 없이 얻을 수 있다. 단지 시간을 얻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고 생명을 연장하기도 한다. 반면에 돈이 없는 사람은 시간을 구매할 수 없으니 생명을 지속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 작품은 공상과학적인 상상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이곳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돈이 있으면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자신의 삶에 투자할 수 있으니 말이다. 농약이 들어가지 않은 채소를 고를 수 있고, 유기농 우유와 달걀을 고민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게 아니다.

짧은 지면에 많은 수의 작품을 예로 들지 못했고, 브런치에 쓴 이 글이 2024년에 작성한 게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언어의 흔적이 지금도 유효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때의 감정일 수 있는 것이다. 삶은 늘 변하니까. 하지만 과거의 흔적이라 할지라도 이미 시인에게는 주름의 형태로 각인됐으니, 돈과 시간(건강)의 상관관계는 애틋하게 다가온다.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문종필 평론가 | 더스쿠프
ansanssun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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