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저장성은 20년 전부터 지역혁신의 판을 짰다 [박지민의 중국과 미래]

중국의 산학협력을 이야기할 때 한국에서는 베이징의 명문대나 선전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먼저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중국의 기술사업화 경쟁력은 대학 한 곳의 명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지방정부가 산업 수요를 어떻게 구조화하고, 대학의 기술과 인재를 어떻게 끌어오며, 그 성과를 기업·금융·실증·시장 적용까지 어떻게 연결하느냐다. 그런 점에서 저장성 자싱에 본부를 둔 저장성 칭화대 장강삼각주연구원은 한국이 주목해야 할 사례다. 이 기관은 저장성과 칭화대의 협력에서 출발해 장강삼각주 산업권 전체를 대상으로 기술사업화, 기업 육성, 인재 유치, 해외 협력, 투자 연결을 묶는 플랫폼으로 발전해 왔다.
이 모델의 출발점은 단순한 대학 유치가 아니었다. 2002년 저장성 인민정부와 칭화대의 협력협약은 장강삼각주의 경제·산업 기반과 칭화대의 교육·인재·과학기술 성과를 결합하겠다는 구상을 보여준다. 핵심은 좋은 대학의 이름을 지방에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광역 산업권의 문제를 풀기 위해 대학의 연구와 인재를 지역의 산업·정책·시장과 연결하는 구조를 설계하는 데 있었다. 저장성 칭화대 장강삼각주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이 기관은 저장성·장쑤성·상하이로 이어지는 장강삼각주 경제권을 배경으로 자싱 본부와 각 지역 거점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즉 지방의 한 연구소가 아니라, 광역 경제권 안에서 대학과 지자체, 기업과 시장을 잇는 연결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 온 것이다.
이 기관을 가장 잘 설명하는 개념은 칠위일체 발전모델이다. 저장성 칭화대 장강삼각주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이는 지-산-학-연-금-용-개, 즉 지자체·산업·대학·연구·금융·응용·개방 협력을 하나의 체계로 묶는 방식이다. 지자체는 공간과 제도, 정책 조정을 맡고, 산업은 실제 수요와 과제를 던지며, 대학과 연구는 기술과 인재를 공급하고, 금융은 사업화와 확장을 위한 자금을 제공하며, 응용은 현장 실증을 담당하고, 개방은 국내외 중개와 글로벌 협력을 연결한다. 핵심은 연구실 안의 기술이 파일럿 테스트, 기업 적용, 후속 투자, 지역산업 재편, 해외 협력으로 이어지도록 처음부터 시스템을 설계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산학연 협력보다 범위가 넓고, 지방정부와 자본시장, 글로벌 네트워크까지 포함한 운영체계에 가깝다.
저장성 칭화대 장강삼각주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이 기관은 바이오 헬스케어, 정보기술과 인공지능, 제조, 에너지와 소재, 사회경제·교육·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66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전임 인력은 1000명 이상, 연구인력은 700명 이상이며, 칭화대 교수와 동문 네트워크도 100명 이상 연결돼 있다. 국가급 인재와 해외 배경 인재도 다수 참여하고, 해외 협력망은 20개국 이상으로 확장돼 있다. 또 9개 오프쇼어 인큐베이터, 2개 기술혁신센터, 400여 개 해외 인큐베이션 프로젝트, 1000여 명의 해외 고급인재 장강삼각주 정착 사례도 제시된다. 이 연구원이 단순 연구기관이 아니라 인재, 기술, 시장, 자본을 함께 움직이는 국제형 기술사업화 플랫폼이라는 뜻이다.
기업 협력 구조도 인상적이다. 저장성 칭화대 장강삼각주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이 기관은 10개 중앙 대형기업, 100개 지역 선도기업, 1000개 기술형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십백천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펀드 규모는 25억 위안, 상장기업 연결은 78개사로 제시된다. 이는 기술사업화가 특허이전 한 건이나 일회성 공동개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략기업 발굴, 공동연구, 파일럿 테스트, 산업화, 투자, 후속 성장과 회수까지 한 흐름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중국의 강점은 기술 자체만이 아니라, 기술을 지역산업과 자본시장, 인재정책, 글로벌 협력으로 번역하는 운영 능력에 있다.
여기서 한국과의 비교가 필요해진다. 한국은 관련 정책이 없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정책은 많다. 교육부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를 통해 지자체 주도의 지역혁신과 대학 지원체계를 확산하고 있고, 글로컬대학 정책을 통해 지역대학의 혁신과 특성화를 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창업중심대학을 통해 대학 기반 창업기업과 예비창업자를 지원하고,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를 통해 창업 저변 확대와 후속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하 기관들은 연구개발특구, 인공지능 확산, 디지털 실증, 기술사업화 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산업통상자원부는 지역산업, 제조 클러스터, 산업기술 사업화, 테크노파크 체계를 통해 현장 산업 기반을 받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콘텐츠, 관광, 문화기술 분야의 창업과 펀드, 인재양성 체계를 별도로 구축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정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많은 정책과 기관이 하나의 운영체계로 충분히 묶여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교육부의 RISE와 글로컬대학은 지역대학과 인재양성에, 중기부의 창업중심대학과 모두의 창업은 창업 발굴과 스케일업에, 과기정통부와 연구개발특구 체계는 연구성과의 사업화와 디지털 실증에, 산업부와 테크노파크는 제조 현장과 지역산업 육성에, 문체부는 콘텐츠와 관광 분야 창업 생태계 조성에 각각 강점이 있다. 그러나 저장성 칭화대 장강삼각주연구원처럼 지자체, 대학, 연구, 기업, 금융, 해외 인재 유치, 실증, 투자 회수 구조가 같은 플랫폼 안에서 통합 운영되는 모습은 아직 상대적으로 약하다. 한국은 정책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정책을 한 판으로 묶는 상설 운영 시스템이 약한 것이다.
이 점에서 RISE는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아직은 대학 지원체계 이양과 지역 맞춤형 혁신 구조 설계의 단계에 더 가깝다. 글로컬대학도 대학 혁신과 대형 재정지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기술사업화·창업·실증·투자·지역산업 재편까지를 한 기관 안에서 통합하는 수준과는 차이가 있다. 창업중심대학은 대학발 창업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모두의 창업은 창업 저변을 넓히는 데 강점이 있지만, 지역 전략산업과 실증 인프라, 제조업 현장, 후속 투자 구조와 더 촘촘하게 연결될 필요가 있다. 연구개발특구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맡고 있는 인공지능·디지털 실증과 기술 확산도 개별 사업 단위에서는 의미가 크지만, 특정 지역의 전략산업과 대학, 기업, 투자기관을 장기적으로 묶는 허브 모델로까지 발전하려면 더 큰 설계가 필요하다. 산업부와 테크노파크 체계 역시 제조 현장과 산업기술 사업화에는 강점이 분명하지만, 대학 연구성과와 창업, 해외 인재 유치, 글로벌 개념검증과의 연결은 더 강화될 여지가 있다. 문체부의 콘텐츠·관광·문화기술 창업도 별도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아, 지역혁신 체계 전체와의 접점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결국 한국이 저장성 칭화대 장강삼각주연구원 사례에서 배워야 할 것은 중국의 제도를 그대로 베끼는 일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운영 원리를 이해하는 일이다. 첫째, 산학협력을 개별 사업이나 공모사업의 집합이 아니라 지역 단위의 운영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 둘째, 지역혁신은 대학 재정지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인재 유치, 정주 지원, 실증 장비, 파일럿 테스트, 기술금융, 후속 투자, 글로벌 개념검증, 제조 현장 연결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셋째, 부처별 강점을 지역 전략산업 중심으로 수직 통합할 필요가 있다. 한 지역에서 교육부는 대학과 인재, 중기부는 창업, 과기정통부는 연구와 인공지능 확산, 산업부는 제조와 산업 클러스터, 문체부는 콘텐츠와 관광을 따로 지원하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이를 하나의 지역 혁신 허브 안에서 함께 설계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교수, 대학, 정부, 기관, 기업, 투자자가 함께 생각해볼 질문도 분명해진다. 대학은 지역산업의 문제를 풀기 위한 기술·인재 허브로 재설계되고 있는가. 지자체는 대학을 지원 대상이 아니라 전략산업 파트너로 보고 있는가.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은 각자의 사업을 다른 부처의 사업과 연결할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 기업은 대학과 연구기관을 연구용 파트너가 아니라 검증·실증·신사업 확장의 파트너로 보고 있는가. 투자자는 공공사업 이후의 후속 자본 역할을 준비하고 있는가. 저장성 칭화대 장강삼각주연구원의 사례는 이 다섯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중국의 강점은 단순히 대학이 좋고 기술이 많다는 데 있지 않다. 더 본질적인 힘은 지방정부가 대학의 기술과 인재를 지역 산업, 투자,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결하는 장기 운영 시스템을 만들어왔다는 데 있다. 저장성과 자싱은 칭화대의 브랜드를 단순히 지방에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 장강삼각주라는 광역 산업권 안에서 기술과 시장, 인재와 자본을 연결하는 엔진으로 이를 키워왔다. 이것이 한국이 지피지기 차원에서 반드시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결국 한국의 과제는 분명하다. 정책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정책을 한 판으로 묶는 통합 설계를 강화해야 한다. RISE, 글로컬대학, 창업중심대학, 모두의 창업, 연구개발특구, 인공지능 확산, 지역산업 클러스터, 콘텐츠 창업 지원은 각각 의미 있는 제도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것들이 같은 지역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함께 작동할 것인가다. 저장성 칭화대 장강삼각주연구원은 그 점에서 한국의 교육부, 과기정통부, 중기부, 산업부, 문체부, 그리고 각 산하기관이 함께 참고해야 할 가장 실전적인 비교 사례 중 하나다. 한국은 정책이 부족한 나라가 아니라, 정책을 한 판으로 묶는 운영 시스템이 더 필요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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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대표는 한·중 산업·기술과 자본시장, 투자·M&A, 정책·기업 협력 생태계를 연결하는 크로스보더 전략 전문가다. 36Kr, BEYOND EXPO, HiredChina, Draper Dragon의 한국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피더블유에스그룹(PWS GROUP)을 창업했다. 아시아 최대 로펌 잉커로펌(YINGKE LAW FIRM) 한국 파트너로 활동하며 한·중 기업 자문, 중국 기업의 한국 진출 지원, 양국 간 크로스보더 M&A 시장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국유 철강 기업 시노스틸(中国中钢集团)과 중관촌 창업 생태계 핵심 기관인 중국 베이징 중관촌 창업거리(中关村创业大街) 창업 플랫폼 이노웨이에서 근무하며 중국 산업 및 혁신 생태계 현장 경험을 축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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