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까도로' 아닌 '고가도로' [달곰한 우리말]
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회사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시절, 같은 해 입사한 동기들끼리 서로 의지할 일이 많았다. 밤낮없이 사건, 사고를 취재하고 보고하느라 눈 밑이 꺼멓던 기자 동기는 어느 날 이제 기획취재라는 걸 할 기회가 생겼다며 기삿거리를 찾아 헤맸다. 몇 안 되는 동기들은 이런 게 보도할 만한 건지 모르겠다면서도 주변의 불합리한 현장에 대해 하나둘 얘기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만드는 동기는 늘 조용했다. 선배가 지휘하는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드물게 생존 소식만 전해올 따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렇게 바쁜 동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방송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찍고 있는데, 사람들이 자주 틀리는 발음을 알려 달란 거였다. 반가움도 잠시, 당장 답을 해줘야 했던 때 떠올랐던 게 '고가(高價)/고가(高架)'였다.
기둥을 세워 땅 위로 높이 설치한 도로, 교차로나 험한 지형에 가로질러 만든 구조물인 고가도로를 [고까도로]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싼 값이란 뜻의 고가(高價)의 발음이 [고까]이고, 고가(高架)도로는 표기 그대로 '고가도로'라고 발음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가의 미술품을 싣고 달리던 화물차가 고가도로 위에서 미끄러지는 사고가 났습니다"라는 문장에서 [고까의 미술품], [고가도로 위에서]로 구분해 발음해야 하는 것이다.
고가(高架)/고가(高價)처럼, 우리말에는 형태는 같지만 발음과 뜻이 다른 동형이의어가 많다. 문맥에 따라 어떤 의미로 쓰인 건지 알 수 있는데, 발음으로 구분할 수 있는 단어들도 있다. 겨울에 내리는 눈[눈:]과 감각기관 눈, 사람이 하는 말[말:]과 동물 말, 글씨를 쓸 때의 적다[적따]와 수가 많지 않다는 뜻의 적다[적:따]는 장음으로 구분할 수 있고, 대가(大家)/대가(代價)는 된소리 발음이 다르다. 전문 분야에서 뛰어나 권위를 인정받는 사람을 뜻하는 대가(大家)는 [대:가], 물건의 값으로 치르는 돈은 [대:까]이다.
어떤 명확한 규칙이 있다면 기억하기가 쉬울 텐데, 아쉽게도 한자어의 발음, 특히 경음화 여부는 일률적이지 않아서 원리를 말하기 어렵다. 다만 국립국어원은 가격을 뜻하는 '-가(價)'의 경우, 다른 한자어 뒤에 붙어 쓰일 때 항상 경음화되는 한자 형태소로 설명하기도 한다. 앞서 다룬 고가(高價)[고까], 저가(低價)[저:까], 대가(代價)[대:까] 그리고 시가(時價)[시까]를 떠올려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혜림 S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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