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룡의 '셜록 홈즈, AI와 만나다']
英 제국주의 시대의 욕망과 배신
《네 개의 서명(The Sign of Four)》은 셜록 홈즈 시리즈 가운데에서도 독자적 매력을 지닌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추리극을 넘어,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 제국주의 시대의 역사적 배경, 그리고 욕망과 배신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엮어낸다. 특히 홈즈의 논리적 추론이 활약하는 순간들과 왓슨 박사와 메리 모스턴 사이의 정서적 전개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긴장과 따뜻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문학사적으로 이 작품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기존의 탐정 소설들이 단편적인 미스터리 해명에 그쳤던 것과 달리, 하나의 완결된 서사 구조 속에 추리, 모험, 로맨스, 제국주의의 그림자까지 담아냈다는 점이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도 보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식민지 역사와 도덕적 타락, 인간 욕망이 집약된 상징으로 기능하며, 홈즈는 이 퍼즐을 오직 논리적 사고만으로 풀어낸다.
《네 개의 서명》은 특히 ‘보물은 결국 사라지고, 남는 것은 사람의 선택과 감정’이라는 결말을 통해, 탐정소설이 감정과 서사, 사유의 무게까지 담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셜록 홈즈의 추리기법을 가장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동시에, 문학적 완성도 또한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관찰과 추리
《네 개의 서명(The Sign of Four)》의 ‘추리 과학’(The Science of Deduction) 부분에는 “관찰(observation)”과 “추리(deduction)”의 경계는 명확히 갈린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두 가지 장면이 나온다. 첫째는 홈즈가 왓슨이 우체국에 전보를 치러 다녀온 사실을 정확히 알아맞히는 장면이고, 둘째는 왓슨이 건넨 시계를 통해 그의 형에 대해 놀라울 만큼 자세히 추리해내는 장면이다.
왓슨이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친 사실 알아내기
“관찰과 추리는 어느 정도까지는 겹치는 것 아니냐”는 왓슨의 질문에 홈즈는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관찰을 통해 우체국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았고, 추리를 통해 전보를 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답한다. 그가 관찰을 통해 알아낸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다:
▲왓슨의 발등에 황토 흙이 묻어 있다.
▲우체국 건너편 도로는 공사 중이라 흙이 드러나 있다.
▲그 붉은 흙은 그 지역 특유의 것이며 런던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렵다.
▲우체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그 흙 위를 밟고 지나야 한다.
▲왓슨의 신발에 묻은 흙과 공사 구간의 흙이 일치한다.
그리고 이 관찰의 결과는 “왓슨이 방금 우체국에 다녀왔다”는 것이다. 이어 홈즈는 왓슨이 전보를 쳤다는 사실을 어떻게 추리했는지 설명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논리적 추론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①우체국은 편지나 소포를 부치거나 전보를 보내는 곳이다. → ② 그러나 아침 내내 지켜본 바 왓슨은 아무런 편지도, 소포도 들고 나가지 않았다. → ③ 그러면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치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기서 홈즈는 “불가능한 요소를 다 지워버렸을 때 남는 것 하나가 진실임에 틀림없다”는 제거법을 사용한 것이다.
왓슨의 시계로 그의 형에 대해 추리하기
왓슨은 최근 자신의 소유가 된 시계 하나를 홈즈에게 건네며 “이전 소유자의 성격이나 습관을 파악해 달라”고 요청한다. 홈즈가 도저히 이 문제를 풀지 못할 것이라 은근히 기대하며…
홈즈는 시계의 겉모습과 내부 상태를 육안과 성능 좋은 확대경으로 면밀히 살펴본 뒤, 그 시계의 주인에 관해 추리한 내용을 말해준다:
▲덜렁대고 부주의하다.
▲상당한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다 털어먹고 한동안 가난하게 살았으며, 가끔씩 경제적 여유를 되찾았지만 그 기간을 길지 않았다.
▲말년에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다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견주어 보고 제일 그럴듯한 것을 말할 수 있을 뿐”이라며 자신의 추론 과정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뚜껑 아랫쪽을 보면 두 군데 움푹 들어간 곳이 있을 뿐 아니라, 동전이나 열쇠와 같은 단단한 물건과 같은 주머니에 들어 있었던 것처럼 사방이 온통 긁힌 자국 투성인데, 50기니(1기니는 21실링(1파운드+1실링)인데, 19세기 후반에는 큰 화폐단위였다-편집자주)씩이나 하는 시계를 그렇게 무관심하게 취급하는 사람은 부주의함에 틀림없다.
이렇게 값비싼 물건을 상속받은 사람이 다른 면에서도 대단히 풍족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과히 무리한 추정이 아니다. 그러나 시계 뚜껑 안쪽을 확대경으로 살펴보니, 영국 전당포업자들이 미세한 핀으로 새겨놓는 티켓 번호가 네 개나 보인다. 따라서 왓슨의 형님이 경제적 어려움을 자주 겪었다. 그리고 저당 잡힌 물건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가끔씩 경제적 여유를 누리기도 했다.
태엽 감는 키를 집어넣는 구멍 주위에 긁힌 자국이 무수히 많은데, 이는 키를 제대로 꽂아 넣지 못해서 생긴 자국들이다. 정신이 맑은 사람이 이런 자국을 만들어냈을 리 없고, 술꾼이 밤에 떨리는 손으로 시계 태엽을 감으면서 남긴 흔적이다.
홈즈는 이 추리 과정에서 “제일 그럴듯한 것을 말할 수 있을 뿐”이라고 스스로 밝혔듯 가추법을 사용했다. 이와 함께 시계의 여러가지 개별적인 흔적들을 수집한 다음 이로부터 공통되는 성향(부주의하다, 알코올 중독이다 등)을 찾아내는 귀납법도 사용한다.
이 두 장면은 정확하게 관찰하고, 관찰된 사실에서 출발해 검증 가능한 논리를 세우는 것, 그것이 셜록 홈즈가 말하는 ‘추리 과학’이란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사건의 개요
홈즈 시리즈에서 가장 스릴 넘치는 작품으로 꼽히는 《네 개의 서명》은 단순한 살인 사건을 넘어, 과거의 비극과 배신이 얽힌 복수극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특히, 왓슨의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며,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사회 분위기와 인도 식민지의 영향이 반영되어 있다.
의문의 의뢰
1888년, 런던 베이커가 221B번지에서 셜록 홈즈와 왓슨은 마리 모스턴(Mary Morstan)이라는 젊은 여성의 방문을 받는다. 그녀는 10년 전, 아버지가 갑자기 실종되었으며 6년 전부터 매년 익명의 발신자로부터 값비싼 진주를 한 개씩 받았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 의문의 편지를 받았으며, 혼자 가기 두려워 홈즈와 왓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홈즈는 편지의 필체와 문구를 분석한 후, 이 의문의 초대가 단순한 선의의 행동이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녀를 돕기로 한다. 마리는 셜록 홈즈와 왓슨을 동행하여 발신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사라진 보물과 의문의 초대
홈즈와 왓슨은 마리를 데리고 편지를 보낸 인물인 새디어스 숄토(Thaddeus Sholto)를 만나러 간다. 그는 그녀의 아버지, 아서 모스턴 대위(Captain Arthur Morstan)와 자신의 아버지인 존 숄토 소령(Major John Sholto)이 인도에서 함께 군 복무를 했다고 설명한다.
존 숄토는 런던으로 돌아온 후 갑작스럽게 사망했는데, 죽기 직전 두 아들(바솔로뮤와 새디어스)에게 자신이 숨겨둔 거대한 보물에 대해 말해주고, 그 위치를 말하려다 경련을 일으키며 세상을 떠났다.
이후 새디어스 숄토는 죄책감을 느껴 마리에게 보물의 일부를 전달하기 위해 매년 진주를 보내왔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에 머물던 형이 마침내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 사실을 알고 진짜 상속자인 마리 모스턴에게 함께 보물을 확인하러 가자고 제안한다.
묘한 죽음과 네 개의 서명
새디어스, 홈즈, 왓슨, 마리는 바솔로뮤 숄토가 있는 노우드(Norwood)에 위치한 숄토의 저택으로 향한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했을 때, 바솔로뮤는 자신의 방에서 독살된 채로 발견된다. 그의 얼굴에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부자연스러운 미소가 남아 있었고, 몸에는 어떠한 외상도 없었다. 창문은 닫혀 있었으며, 강제로 침입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홈즈는 방 안에서 독살의 흔적을 찾아내고, 범인이 독이 묻은 작은 침을 이용해 독을 주입했음을 알아낸다. 또한, "네 개의 서명(The Sign of Four)"이라는 쪽지도 발견한다.이 사건은 단순한 강도나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 오래된 원한이 얽힌 계획된 복수극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배에서 사라진 보물
홈즈는 곧바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하고, 용의자가 배를 타고 도주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 과정에서 그는 베이커가의 특공대를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런던의 선착장을 샅샅이 조사한다.
수사 끝에, 사건의 범인은 조너선 스몰(Jonathan Small)이라는 인물이며, 그는 안다만 원주민인 동료 통가(Tonga)와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밝혀진다. 존 숄토 소령에게 아그라의 보물을 빼앗긴 스몰은 이를 되찾기 위해 탈옥한 뒤 우여곡절 끝에 런던으로 건너와 숄토 형제를 찾았던 것이다. 그들은 바솔로뮤를 살해한 후, 보물을 가지고 배를 타고 브라질로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홈즈와 경찰은 범인들이 도망칠 선박 '오로라(Aurora)호'를 추적하여, 템스 강에서 치열한 추격전을 벌인다. 마침내 경찰과 홈즈 일행은 통가를 사살하고, 조너선 스몰을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스몰은 보물이 든 상자를 이미 템스 강에 던져졌다고 자백하며, 보물은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된다.
숨겨진 진실과 사랑의 결말
체포된 조너선 스몰은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그는 원래 인도에서 영국군으로 복무했으며, 부상으로 한쪽 다리를 잃고 농장 감독으로 일하던 중 세포이 반란을 피해 머물렀던 아그라 성에서 보물을 손에 넣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보물을 손에 넣는 과정에서 벌인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되어 안다만 제도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중, 보물에 관한 비밀을 털어놓은 존 숄토가 이를 가로채고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복수를 다짐한 스몰은 오랜 세월을 거쳐 런던으로 건너와 숄토 형제에게 보복을 가한 것이었다.
한편, 마리는 결국 보물을 찾지 못했지만, 왓슨과 가까워졌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왓슨은 보물이 사라진 것에 안도하며, 마리가 보물 없이도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그녀에게 청혼한다. 결국, 사건은 미스터리한 보물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왓슨과 마리의 사랑이 결실을 맺으며 이야기는 따뜻한 결말을 맞이한다.

범인의 신상에 대한 추리
홈즈는 노우드 저택에서 바솔로뮤 숄토의 죽음을 확인하고 새디어스 숄토에게 경찰에 신고하라고 권고한다. 새디어스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애설리 존스(Athelney Jones) 형사는 현장을 살펴본 뒤 새디어스를 용의자로 체포한다.
이에 홈즈는 새디어스의 혐의를 벗겨주겠다고 말하며 범인 두 사람 중 한명의 이름과 생김새를 아무 대가 없이 알려준다:
▲이름은 조너선 스몰(Jonathan Small)
▲몸집은 왜소하지만 상당히 민첩한 자
▲오른쪽 다리가 없는 대신 안쪽이 닳은 나무다리를 끼우고 있음
▲왼발에 신은 구두는 구두코가 각이 졌고 뒤축에는 금속판이 붙어 있음
▲얼굴이 햇볕에 그을린 전과자 출신의 중년 남자
▲손바닥의 살갗이 많이 벗겨졌음
생김새 추리
홈즈는 새디어스가 경찰에 신고하러 간 사이에 저택 안에서 바솔로뮤의 방을 면밀히 살피며 다양한 흔적을 관찰한다. 그는 창문 틀에 남겨진 구두 뒤축 자국과 그 옆에 찍힌 둥근 자국을 보고, 머릿속으로 이렇게 가정했을 것이다: “이 자국은 일반적인 발자국이 아니다. 둥근 형태로 보아 나무다리의 끝이 찍힌 흔적일 수 있다.”
이제 그는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추가 단서를 찾는다. 방 안 곳곳에 둥그런 진흙 자국이 여러 개 흩어져 있으며, 이 자국의 규칙성과 무게 중심이 나무다리를 사용한 사람의 보행 특징과 일치함을 알아챈다.
특히 창틀에 남은 구두 자국과 나무다리 자국이 짝을 이루는 것으로 보아, 범인은 오른쪽 다리가 없고 왼발에 구두를 신은 사람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홈즈는 구두 자국도 분석한다. 구두코가 뾰족하거나 둥근 것이 아니라 각진 형태이며, 뒤축에 금속판이 붙어 있어 묵직한 소리를 내는 특수 구두임을 확인한다. 여기까지의 분석만으로도 범인은 오른쪽 다리가 없고, 왼발엔 각진 구두를 신은 사람이라는 윤곽이 그려진다.
이 과정에서 홈즈는 가설을 세운 뒤, 가설이 맞을 경우 관찰되어야 할 증거들을 예측하고 실제로 관찰 결과가 예측과 일치하자 가설을 받아들이는 ‘가설-연역법’을 사용했다.
홈즈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방 안에서 발견된 밧줄과 창틀의 흔적들을 통해, 범인이 창문으로 출입했고, 나무다리임에도 로프를 타고 오르내릴 정도로 민첩했다는 점을 알아낸다.
게다가 밧줄에 묻은 피와 살점, 그리고 홈즈가 관찰한 손바닥 피부의 벗겨진 흔적은 그가 급하게 내려가다 부상을 입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너선 스몰’이라는 이름의 추리
홈즈는 바솔로뮤의 방에서 ‘The Sign of Four(네 사람의 서명)’라는 문구가 남겨져 있는 것을 보고, 단순한 강도 사건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다툼이나 약속을 배신당한 누군가의 복수라는 방향으로 가설을 세운다. 그리고 곧바로 머릿 속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네 사람의 서명’이란 대체 누구를 뜻하는가? 도대체 누구의 서명인가?”
여기서 홈즈는 마리가 보관하고 있던 모스턴 대위의 도면 위에 적혀 있던 네 개의 이름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그 네 사람 중 유일한 백인의 이름이 ‘조너선 스몰’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조너선 스몰은 자신뿐만 아니라 세 명의 동료를 대표해서 그 도면에 서명했지. 그는 거기에 ‘네 사람의 서명’이라는 다소 극적인 이름을 붙여 놓았어.” (홈즈의 설명)
즉, 홈즈는 남겨진 문구(네 개의 서명)를 도면 위 이름과 연결해 다음과 같이 추론한다:
① “이 문구는 그 도면에 서명한 네 사람 중 한 명이 남긴 것이다.” → ② “그들 중 유일한 백인은 조너선 스몰이다.” “힌두교도나 회교도는 발 모양부터 영국인과 구별된다.” → ③ “현재 이 사건에 개입한 백인 범인은 조너선 스몰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홈즈는 다시 질문을 던진다: “조너선 스몰은 왜 복수를 결심했는가?” “왜 지금 이 시점에 나타났는가?”
그리고 그 이유를 숄토 소령이 보물을 손에 넣은 이후 조용히 지내다, 인도에서 어떤 편지를 받은 뒤 극도로 불안해진 변화된 행동에서 찾는다. 홈즈는 추론한다:
● 소령이 충격을 받은 건 단순한 석방이 아니라 탈출했거나 탈출했다고 믿을 만한 편지를 받아서다. 그가 죄수들의 복역 기간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소령은 그 직후부터 ‘나무다리 사내’를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백인 장사꾼을 스몰로 착각해 총을 쏘기까지 했다.
즉, 소령이 극도로 두려워한 인물 = 나무다리 사내 = 도면에 서명한 유일한 백인 = 조너선 스몰. 또한 현장 조사에서 홈즈가 확보한 단서들도 ‘나무다리 사내’의 외모와 일치한다:
● 창틀과 방 안에 남은 자국: 한쪽 다리를 쓰지 않는 사람이 로프를 타고 드나듦
● 나무다리 자국과 구두 자국이 함께 남음
● 사용된 구두: 각진 구두에 금속판이 붙은, 왼발 신발
● 창문 밖으로 도망감 → 기민하고 민첩한 인물
이 추리 과정에서 홈즈는 가설(“‘네 사람의 서명’ 문구를 남긴 범인은 도면에 서명한 네 명 중 한 사람일 것”)을 설정하고, 가설에 맞는 결과(백인 조너선 스몰, 나무다리, 숄토의 두려움 등)를 예측한 다음, 관찰(도면, 목격 정보, 현장 단서 등)을 통해 가설 성립 여부를 결정하는 가설-연역법을 활용했다.
또 범인 후보 중 현장 단서(백인, 나무다리, 구두, 손 상처 등)에 맞지 않는 사람을 하나씩 제거해 남는 단 한 명을 범인으로 확정하는 제거법도 사용했다.

공범의 정체 추리하기
《네 사람의 서명》에서 ‘주범’ 조너선 스몰의 공범은 단순히 범죄에 가담한 인물이 아니다. 사건을 단순한 강도 살인이 아닌 ‘복합적’ 범죄로 확장시킨 주역이다. 홈즈는 “이 공범에게는 흥미로운 점이 있어. 바로 그 때문에 이 사건이 평범하지 않게 된 거지”라며 공범의 존재 자체가 이 사건을 영국 범죄사에 남을 특이한 사례로 만든 요인임을 분명히 한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충격적인 단서는 ‘두 번째 인물’―즉 공범의 존재다. 홈즈는 바솔로뮤 숄토의 사망 현장을 조사하며 이 공범의 존재를 감지하고, 이후 극히 제한된 물리적 흔적만을 바탕으로 그 정체를 특정해낸다. 이 추리는 단순한 몽타주 그리기가 아니라, 셜록 홈즈 특유의 논리적 추론이 극대화된 장면이다.
방 안에서 관찰한 이상한 발자국과 독특한 무기
홈즈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방 안에 남겨진 크고 작은 두 종류의 자국이었다. 하나는 금속이 붙은 각진 구두 자국, 다른 하나는 크기가 아주 작고 맨발의 발자국이다. 그 작은 발자국에 대해 홈즈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한다:
▲발자국의 크기는 일반 성인 남성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신발을 신지 않았고, 발가락 사이가 유난히 좁다.
▲발자국 근처에서 크레오소트와 제수어 오일이 섞인 방부제 자국이 확인된다.
▲같은 자리에 독침과 돌을 매단 곤봉이 떨어져 있었다.
홈즈는 이 흔적들이 일반적인 범인의 움직임이나 문화권과는 전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래서 먼저 다음과 같은 가설을 머릿속에 떠올렸을 것이다: “이 자는 인도 출신의 왜소한 범죄자일까?” 하지만 홈즈는 즉시 그 가설을 배제한다. 힌두교도의 발은 길고 좁고, 회교도의 발은 샌들 때문에 엄지발가락이 벌어져 있다. 그런데 이 발자국은 그러한 특성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리학 사전으로 확인한 최종 결론
홈즈는 가설을 수정해 보다 설득력 있는 가능성으로 좁혀간다. 그는 “그렇게 작은 발자국을 남길 수 있으며, 대롱에 독침을 넣어 쏠 수 있고, 돌을 매단 곤봉을 무기로 삼는 사람은 어디 출신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직접 책장에서 최신 지리학 사전을 꺼내 ‘안다만 제도’ 항목을 찾아 읽는다.
그는 거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한다:
▲안다만 제도의 원주민은 성인이 되어도 키가 120㎝ 이하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독침을 사용하는 사냥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성격은 사납고, 타인에게 위협적이며, 돌을 매단 곤봉을 사용한다.
▲발이 작고 신발을 신는 문화가 없다.
이렇게 여러 단서가 안다만 원주민의 특성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을 확인한 홈즈는 공범이 바로 안다만 제도의 원주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더 나아가, 조너선 스몰이 안다만 제도에서 복역했던 전력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그 둘은 감옥에서 알게 되어 공범 관계가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까지 추론해낸다.
홈즈는 이 추리 과정에서 먼저 제거법을 사용한다. 인도인일 가능성을 고려했지만, 발 모양과 습관 등 관찰된 사실들과 맞지 않자 그 가설을 버린다. 그리고 가설-연역법을 활용해 “공범은 안다만 제도 출신일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에서 예측되는 신체적 특징, 무기, 발자국 등이 실제로 발견된 사실과 일치하는지를 검토한다. 예측이 실제 사실과 정확히 맞아떨어졌기에, 홈즈는 자신의 가설을 확신하게 된다.
※ 박승룡은 언론사, 홍보대행사, 대통령비서실, 콘텐츠 진흥기관 등에서 일하면서 논리적이고 통찰력 있는 사고(思考)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셜록 홈즈 추론 방식이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에 꼭 필요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하고 정년퇴직 후 'Sherlockian Way of Thinking'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