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 근로자 구금 사태로 한미 관계에 긴장감이 흐르던 가운데, 미국 조지아주의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끌어냈다. 켐프 주지사는 현지시간 10월 30일 애틀랜타저널 컨스티튜션(AJC)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단기 기술자 비자의 필요성을 강력히 건의했으며, 트럼프가 이를 충분히 이해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조지아주 현대차 메타플랜트와 LG엔솔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 구금 사태는 양국 관계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대규모 단속으로 한국 기술자들이 구금되면서, 40년 넘게 쌓아온 한국과 조지아의 경제 협력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켐프 주지사는 “단 한 건의 사건이 40년 동안의 한국-조지아 관계를 무너뜨릴 수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켐프 주지사의 이번 건의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이민 정책 기조 속에서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H-1B 전문직 취업비자 수수료를 기존 약 1,000달러에서 10만 달러로 100배 가까이 인상하는 방침을 발표해 충격을 준 바 있다. 이는 외국인 기술 인력의 미국 진출을 극도로 제한하려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켐프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논의에서 단기 기술자 비자의 특수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그는 “기술자들은 장비를 설치하고 조정하며, 미국인 노동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미국에 온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이 단기적으로 머물러야 할 필요성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전했다. 이는 장기 체류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취업 비자와는 성격이 다른 기술 이전 및 교육 목적의 단기 체류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조지아주는 현대차그룹의 메타플랜트와 현대차-LG엔솔 합작 배터리 공장 등 수십억 달러 규모의 한국 투자가 집중된 지역이다. 켐프 주지사는 “이처럼 큰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기 마련”이라며 “우리는 그런 회사들을 방치하고 비난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겠지만, 주 정부도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협력적 자세를 분명히 한 것이다.

켐프 주지사의 이번 발언은 여러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무조건적인 이민 규제보다는 실질적인 경제 이익을 고려한 유연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기술 이전과 현지 인력 양성이라는 명분이 있는 단기 비자의 경우, 강경 이민 정책의 예외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열린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23일부터 3일간 한국을 방문했던 켐프 주지사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만나 이번 구금 사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한국 방문 기간 중 “현대차 메타플랜트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겠다”고 약속했으며, 귀국 후 즉시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이를 실천에 옮긴 것으로 보인다.
켐프 주지사는 향후 미국 비자 정책에 대해서도 균형 잡힌 입장을 제시했다. 그는 “기술자들에 대한 적절한 비자 절차가 필요하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대로 미국 국경을 안전하게 지키고, 범죄자와 불법체류자를 계속 추적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합법적인 기술 인력의 단기 체류는 보장하되, 불법 이민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응한다는 이중 전략을 제시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해서도 켐프 주지사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몇몇 회사가 불평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회사들도 결국 미국에 투자한다”며 “그것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율 관세를 통해 외국 기업들의 미국 내 직접 투자를 유도하려는 트럼프의 경제 전략이 조지아주에서는 실제로 효과를 보고 있다는 평가다.
조지아주는 현재 미국 내에서 한국 기업의 투자가 가장 활발한 지역 중 하나다. 현대차그룹의 메타플랜트는 지난 3월 준공식을 가졌으며, 연간 30만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이 가능한 최첨단 시설이다. 현대차-LG엔솔 합작 배터리 공장 역시 수십억 달러가 투입된 대규모 프로젝트로, 완공되면 수천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에는 한국의 첨단 기술과 노하우가 필수적이다. 초기 설비 구축 단계에서는 한국 본사의 숙련된 기술자들이 현장에서 직접 장비를 설치하고, 생산 공정을 안정화시키며, 현지 채용된 미국인 근로자들을 교육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단기 기술자 비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켐프 주지사가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경제적 실리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의 투자는 조지아주의 고용 창출과 세수 증대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으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미국 제조업 부흥’이라는 정책 목표와도 일치한다. 단기 기술자 비자를 허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논리가 통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켐프 주지사의 이번 성과가 다른 주의 한국 기업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미국 내 다수 한국 기업들이 H-1B 비자 수수료 폭등과 강화된 이민 단속으로 인력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지아주 사례가 선례가 되어 단기 기술자 비자에 대한 실용적인 접근이 확산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아직 구체적인 정책 변화가 공식 발표되지 않은 만큼 섣부른 낙관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켐프 주지사의 건의를 ‘이해’했다는 것과 실제로 비자 정책을 수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향후 미국 국토안보부와 국무부가 어떤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지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켐프 주지사의 이번 발언은 한미 경제 협력에 긍정적인 신호탄이 된 것은 분명하다. 강경한 이민 정책 기조 속에서도 경제적 실리와 상호 이익을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40년 이상 축적된 한국과 조지아의 경제 협력 관계가 일시적인 사건으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켐프 주지사의 확고한 의지도 한국 기업들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있다.
앞으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이번 사례를 교훈 삼아 미국 내 투자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력 운영 계획을 더욱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적법한 비자 절차를 준수하는 것은 물론, 현지 주 정부 및 연방 정부와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불필요한 오해와 마찰을 사전에 방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켐프 주지사처럼 한국 기업의 가치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지역 정치인들과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전략이 될 것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한미 양국 모두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이민 정책을 엄격히 집행하되, 경제적 실익이 있는 합법적인 기술 인력의 이동은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해외 투자 시 현지 법규 준수는 물론, 정치적 환경 변화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과 선제적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켐프 주지사가 전한 트럼프 대통령의 ‘이해’가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질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과 조지아의 경제 동반자 관계가 단순한 일회성 사건으로 끝나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양측의 지속적인 대화와 협력을 통해 이러한 관계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