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맨 만큼 자기 땅이 된다’ 눈물의 2년 끝에 정관장서 꽃피우는 최서현 “목표는 신인상, 태극마크도 달고 싶어”

숱한 좌절과 위기 속에서도 최서현(20·정관장)을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한 문장이다. 돌아온 시간만큼 더 성숙해진 그는 이제 새로운 팀에서 꽃을 피우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7월 정관장에 합류한 최서현은 어느덧 팀의 어엿한 주전 세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시즌 10경기에 나서 1000개가 넘는 세트(1015회)를 시도했다. 2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최서현은 2023~2024시즌 신인 드래프트 때 1라운드 6순위로 현대건설에서 지명을 받아 프로배구 V리그 무대에 입성했다. 프로배구 선수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선망할 법한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데뷔 시즌에는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고 두 번째 시즌에도 3경기(4세트) 출전에 그쳤다. “또래 선수들이 데뷔전을 치르는 걸 볼 때마다 부럽다는 마음밖에 없었어요. 조바심도 나고 주눅도 들었죠.”
결국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팀을 떠나야 했다. “정리될 것 같다고 직감은 했어요. 불러주는 팀이 없으면 실업팀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프로에서 계속 뛰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옵션 포함 보수 총액 5000만 원에 정관장 유니폼을 입었다. 그런데 이 예상치 못한 이적이 최서현의 배구 인생을 바꿔놓게 됐다.
정관장 주전 세터 염혜선(34)에 이어 김채나(29)도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기회는 자연스럽게 최서현에게로 향했다. 중책을 맡게 된 최서현은 팀의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9일 페퍼저축은행전에서는 경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돼 개인 첫 방송 인터뷰도 경험했다. “2년 동안 고생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울음이 터질 뻔했어요.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인터뷰 역할극을 하곤 했거든요. 그게 현실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최근에는 입단 3년 차까지 받을 수 있는 신인상(영플레이어상) 후보로도 거론된다. “올해가 마지막 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김)세빈이가 알려줘서 알았어요. 그때부터 조금 욕심이 나더라고요.” 최서현과 김세빈(20·한국도로공사)은 한봄고 동기다.
고희진 정관장 감독도 25일 현대건설전을 앞두고 “우리는 경기를 뛰면서 성장이 목표인 팀이다. 그 중심에 최서현이 있다”고 말하며 그의 존재 가치를 다시금 강조했다.

최서현의 배구 인생 출발점에는 어머니인 기남이 한국배구연맹(KOVO) 판독위원(53)이 있었다. “요즘은 사후 판독 업무를 하시는데 제 경기를 볼 수밖에 없다 보니 자주 피드백을 주세요. 칭찬보다는 쓴소리가 많지만요(웃음).”
초등학교 3학년 여름, 어머니 손에 이끌려 처음 배구장을 찾았다. “힘들어 보인다고 배구하기 싫다고 했는데, 겨울방학 때 또 데려가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배구,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여럿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운동이 너무 힘들어서 점심시간에 지갑만 들고 택시 타고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어요. 그날 밤 엄마와 긴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긴 했지만요.”
2022년 봄에는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아버지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 최서현은 신인 드래프트 직후 인터뷰에서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경기 한 번 보지 못하고 가셨는데, 위에서 보고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부모님께 자랑거리인 딸이 되고 싶다”고 소감을 전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눈물이 고인 자리에는 금세 꿈과 의지가 차오른다. “이번 시즌에는 일단 신인상을 받고 싶어요. 연차가 쌓이면 주전으로 오래 뛰면서 ‘베스트7’에도 들어보고 싶고… 국가대표도 해보고 싶어요!” 그녀의 두 눈이 반짝 빛나고 있었다.
대전=한종호 기자 hj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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