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 뺨치는 영어유치원 입학전쟁, 월 230만원 비용에도 대기 행렬
4살부터 서브학원 전쟁…월 200넘는 학원비에도 입학테스트 경쟁 치열
“요즘 4세 아이들은 영어로 프리토킹이 가능해요. 나중에 학교에서 좌절감을 맛보게 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따라 붙어야죠.”
대치·목동 등 서울 주요 초등 영어학원가가 최근 예비초1 수강생을 전격 모집하면서 학부모들 사이에서 ‘레벨테스트 전쟁’이 발발하고 있다. 이른바 영어 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경우 특목고보다 입학이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7세반에 입학하기 위해 4~5살 때부터 다른 영어학원을 보내 교육시키는 학부모가 적지 않은 이유다.
교육부에 따르면 유아 대상 영어학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전국 811개에 달했다. 이 중 58.4%는 서울·경기에 집중됐다. 2017년 474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5년 만에 약 70% 가량 급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국 사립유치원의 수는 4282개에서 3446개로 20% 가량 감소했다.
영어 유치원의 인기가 날이 갈수록 커지는 가장 큰 이유는 비교적 어린 나이의 학부모들이 영어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 인구 감소로 내수 시장이 좁아지면서 해외 비즈니스 역량이 요구되고 있는 만큼 이른 나이부터 영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대치동에서 만난 주부 강진아(33·여)씨는 “아이를 낳기 전에 LG그룹 계열사에서 일을 했었고, 남편은 현재 삼성전자에 재직 중이다”며 “일에 있어 영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고, 아무리 업무처리 능력이 좋아도 영어 실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진급에 있어 불리했기 때문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어로 둘러싸인 환경에 아이를 노출시켜 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명 영어유치원 입학 위해 영재 테스트까지…‘대학 등록금보다 비싼 학원비’
르데스크 취재에 따르면 대치동에 소재한 A영어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선 학원의 입학 테스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야 한다. A유치원에 입학하려면 영재 테스트와 영어 테스트 두 가지 절차를 거쳐야 했다.
먼저 GT영재교육원에서 실시하는 영재 테스트를 통과하고 해당 테스트에서 5% 이내에 들어야만 A유치원 테스트 응시 자격이 부여된다. GT 영재 테스트는 횟수 제한이 없다.
영재 테스트를 통과한 후 A유치원 입학 테스트는 각 분원의 실제 교실 환경에서 최대 6명의 아동들이 함께 다양한 주제에 대한 대화를 통해 테스트가 진행된다. 주 평가항목은 알파벳 쓰기, CVC훈련을 통한 파닉스, 리딩, 기본회화 등이다. CVC훈련은 자음+모음+자음으로 이루어진 단어 공부다. 테스트 시간은 1시간 미만으로 A학원 입학테스트 횟수는 3회로 제한된다.
실제로 A유치원 입학테스트를 위해 4살 때부터 서브 학원을 보내는 경우가 다수였다. 또한 내년부터 A유치원의 테스트 방식이 기존 1:1 인터뷰에서 6:1 방식으로 바뀌면서 더욱 중요해진 커뮤니케이션 역량에 발맞춰 Mock 클래스(그룹 모의테스트)를 신청해 시험 준비를 하는 등 강남 학부모들의 대응은 빨랐다.
A유치원에서는 기본적인 영어수업은 물론 영어를 사용해 과학실험, 음악, 체육, 미술 등 다양한 교과 수업이 진행된다. 특히 세계 위인이나 문화 등 타 학원에서 주로 다루지 않는 수업들도 개설돼 있어 학부모로부터 호평받고 있다.
A유치원 한 달 학원비는 약 230만원이다. 연간 학원비는 2760만원으로, 대학교 평균 연간 등록금의 4배가 넘는 수준이다. 강남권에서 A유치원 입학테스트를 위한 과외비용은 시간당 적게는 5만~8만원, 많게는 10만원에 달했다. 이마저도 유명한 과외 선생님에게 수업을 들으려면 대기해야 할 정도다.
서초구에 거주하는 학부모 이주은(32·여)씨는 “요즘 주위를 보면 4살부터 일찍 영어 유치원 및 학원에 보내는 추세다”며 “학원비가 다소 비싸다고는 생각이 들지만 미래를 위해 최고의 교육을 아이에게 제공해주고 싶은 마음은 모든 부모라면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스트레스 적은 놀이식 영어유치원…“수요 꾸준히 증가 추세”
언어 능력을 중점으로 한 학습식 영어유치원의 인기 못지않게 놀이식 영어유치원도 인기다. 놀이식 유치원은 기존 유치원 시스템과 비슷하게 놀이와 보육이 중심이지만 여기에 영어학습이 더해진 커리큘럼으로 운영된다. 영어학습이 자연스레 이뤄지고 아이의 스트레스가 적다는 평가다.
목동의 대표적인 놀이식 B영어유치원은 원어민 담임선생님 1명과 한국인 부담임선생님 1명으로 반이 구성된다. 스피킹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며 다양한 책과 교구들 역시 준비돼있다. 이외에도 테니스·축구 같은 체육 수업과 박물관·미술관 등 문화체험 프로그램도 즐비했다.
다만, 놀이식 영어유치원은 교육과정이 영어 중심이지만 영어를 100%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비싼 학원비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반응이 존재했다. 놀이식 영어유치원의 학원비는 평균 150만원 수준이었지만, 비싼 곳은 200만원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목동의 한 영어유치원 관계자는 “영어 실력이 한국사회에서 크게 보상받게 된다는 믿음 속에서 영어 유치원에 대한 수요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고, 학부모들도 한국 사회의 엘리트로 나아가기 위한 좋은 발판으로 생각한다”며 “솔직히 금전적인 이유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부모들이 영어 유치원을 보내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3~4살 아이들에게 과도한 공부량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학원비가 과도하게 비싸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맘카페에서는 아이가 영어유치원을 다니면서 학업스트레스로 인해 탈모증상과 심지어 틱장애까지 와서 그만뒀다는 내용의 글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한민국 사교육의 출발점인 고액의 유아 영어학원은 교육 양극화를 더 고착화 시킬 우려가 있다”며 “영유아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 조기 인지 학습 문제점을 개선하고, 영유아의 놀 권리와 쉴 권리를 우선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훈 가톨릭대 소아신경과 교수는 “조기 영어교육은 아이의 지능과 관련된 중요한 점을 간과한 것으로 이로움과 해로움을 줄 위험이 더 많다”며 “모국어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하루종일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은 언어에 대한 혼동을 초래해 인지발달의 지연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 교수는 “모국어에 먼저 익숙해진 다음 영어를 가르쳐야 하는데 순서가 뒤바뀐 경향이 있다”며 “유아대상 영어학원이 성행하고 있는 것은 공교육 불신에 대한 반증이기 때문에 공교육이 우선 내실을 다져야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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