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대우 스패건, 우리가 놓친 왜건의 맛

조회수 2022. 9. 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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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우리 왜건 시장에 가장 강력한 불씨를 댕겼던 주인공을 다시 만났다


옛날 옛적 우리나라 왜건 시장 개척을 꿈꾸던 삼총사가 있었다. 이름하야 현대 아반떼 투어링, 대우 스패건, 기아 파크타운이다. 호기롭게 등장해 우리네 이목을 끌었지만 모두 화끈하게 망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공공연히 ‘왜건 불모지’로 불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삼총사 중 가장 선전한 차가 있었으니,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스패건이다.

1990년대 초 대우자동차 라인업을 장식했던 르망과 수퍼살롱

스패건은 대우자동차의 꿈이 영근 결실이었다. 1990년대 초, GM 월드카 프로젝트였던 르망으로 세계 시장을 맛본 대우차는 세계를 공략할 자동차가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 대우차 매대 위엔 온통 GM 라이선스 생산 모델뿐이었다. 대우차는 즉각 1992년 GM과 관계를 청산하고(대우자동차 GM 지분을 모두 사들였다), 자체 기술 개발 역량을 키우는 데 온 힘을 쏟아붓는다. 국내는 물론 영국과 독일까지 대우차 개발 시설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현대자동차는 꾸준히 고유 모델을 출시하며 기술을 쌓고 있었다(왼쪽은 엘란트라, 오른쪽은 쏘나타)

시간이 없었다. 숙적 현대자동차는 고유 모델을 연이어 출시했고, GM 라이선스 모델로 채워놨던 대우차 제품군은 나날이 세월 앞에 빛이 바랬다. 대우차는 이제 막 기술 역량을 갖춘 시설에서 소형, 준중형, 중형 세 가지 신차를 동시에 개발하는 자동차 역사상 전례 없는 개발 계획을 세운다. 그중 가장 심혈을 기울인 프로젝트가 세계적으로 인기 높은 준중형 승용차 시장을 겨냥한 ‘J-100’이었다.

J-100 프로젝트 목표는 처음부터 당연히 월드카였다. 국내 부평연구소를 주축으로 영국 워딩테크니컬센터, 독일 뮌헨연구소가 긴밀하게 협력한 이유다. 또 국내 부품업체 45개사를 개발과정에 참여시키는 ‘게스트 엔지니어링 기법’까지 활용해 개발 속도를 끌어올렸다. 품질은 세계 어디에서도 문제없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175회 충돌 시험을 거쳐 1998년 도입 예정이던 새로운 유럽 충돌 테스트 기준보다 20% 더 가혹한 안전 기준을 세웠고, 소비자품질 만족지수인 IQS는 일본 토요타 수준을 목표 삼아 견고한 품질을 꿈꿨다.

누비라는 당시 준중형 세단 중 가장 큰 덩치를 자랑했다

1997년 2월, 마침내 32개월 동안 3000억원을 투자한 J-100 프로젝트가 누비라로 모습을 드러낸다. 세상의 관심은 뜨거웠다. 큰 차 좋아하는 우리나라 취향을 적극 반영한 덩치는 동급 최대였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스타일’을 목표 삼은 디자인은 거부감이 적었을 뿐 아니라 패밀리 세단으로서 듬직한 모습이었다. 당시 둥글고 귀여운 스타일이던 준중형 세단 아반떼의 허점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더욱이 1993년부터 4년간 2조원을 투자해 건설한 군산 모터파크에서 최초로 생산한 자동차여서 더 큰 관심을 받았다. 당시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37년 동안 사업하면서 우리 제품에 만족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 차는 정말 만족한다”고 말할 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곧 누비라는 아반떼의 강력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출시 첫날 8389대 계약고를 올리고, 이틀 만에 1만대 계약을 달성했다. 1997년 3월 한 달 동안 1만1737대를 판매하며 국내 승용차 판매 1위로 단숨에 올라선다. 1997년 한 해 국내 전체 판매량은 9만3266대. 13만대 판매고를 올린 아반떼 뒤를 이어 준중형 세단 2위 자리를 차지했다.

듬직한 스타일과 네모난 왜건 윤곽이 자연스레 어울렸던 스패건

승승장구하던 누비라는 가지치기 모델을 속속 더했다. 1997년 6월, 오늘의 주인공 스패건이 나왔다. 누비라를 바탕으로 트렁크 공간을 키운 왜건이다. 큰 덩치를 바탕으로 더 넓은 트렁크 공간을 자랑했고, 듬직한 스타일과 네모난 왜건 윤곽이 자연스레 어울렸다. 무엇보다 2열 문짝을 세단과 함께 썼던 아반떼 투어링, 파크타운과 달리 스패건은 전용 문짝을 다시 만들어 디자인 완성도가 한결 높았다.

1999년 부분변경을 거친 누비라2

처음엔 아주 긍정적이었다. 1997년 6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8823대를 판매한다. 1997년 한 해 2962대 팔린 아반떼 투어링을 압도하는 성적이다. 그러나 ‘짐차’ 이미지를 꺼리는 우리나라에서 점차 외면받으면서 1999년 부분변경 모델인 누비라2 등장과 함께 단종됐다. 그래도 왜건 중에서는 단연 최고였다. 1997년부터 1999년 단종 연도까지 누적 판매량 1만5321대를 기록하면서 같은 기간 3582대 팔린 아반떼 투어링을 네 배 넘는 차이로 앞섰다. 1990년대 ‘왜건의 왕’인 셈이다. 한편, 누비라는 2003년 생산을 멈출 때까지 누적 61만5007대 생산고를 기록하며 국내외에서 월드카로서 적잖은 인기를 누렸다.

준중형 차급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프로젝션 방식 헤드램프를 달았다

단 3년 만에 사라졌지만, 1990년대 국내 왜건 시장에 가장 뜨거운 불씨를 댕겼던 스패건. 이제 몇 대 남지 않은 그 귀한 차를 출시 후 2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만났다. 현역 때도 마주하기 힘들었던 모델인 만큼 첫인상은 생소하다. 친숙한 누비라 얼굴을 하고 있지만, 뒤는 네모난 왜건이니까. 왜건 특유의 윤곽과 지붕에 붙여 놓은 루프랙이 어우러져 레저용 차다운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트렁크 바닥 덮개가 견고한 철판이다

거두절미하고 트렁크를 열었다. 역시 왜건이다. 930L 트렁크 공간은 웬만한 1인 가구 이삿짐 정도는 가뿐히 소화할 만큼 널찍하다. 특히 곳곳에 세심한 배려가 눈에 띈다. 가령 높이 쌓은 짐이 2열로 들이치지 않도록 그물망을 설치했고, 트렁크 바닥은 마치 1t 트럭처럼 견고한 철판으로 덮었다. 덮개 밑에는 추가 수납공간을 마련해 자잘한 자동차용품을 말끔히 정리하도록 배려했다. 과거 신진 퍼블리카로 우리나라에 처음 왜건을 선보이고, 이어 GM코리아 캬라반을 생산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겼다(신진과 GM코리아는 대우자동차의 전신이다).

왜건답게 머리 공간이 넉넉하다 / 시계를 신기한 위치에 달아놨다

시승차는 기본 등급인 ‘스패건 1.5 DOHC’에 자동변속기와 에어컨만 추가한 모델. 별다른 편의장비가 없어 동글동글한 실내가 단출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검은색과 베이지색을 섞은 ‘투톤’ 실내는 당시 준중형 승용차로서는 무척 자랑스러운 포인트였다.

최고출력 107마력, 최대토크 14.0kg·m 성능을 내는 직렬 4기통 1.5L 가솔린 엔진. 자동변속기 기준 공식 연비는 1L에 13.3km다

시동을 걸어 1.5L 가솔린 엔진을 깨웠다. 오래 세월을 인내한 엔진인데도 회전 질감은 무난하다. 우리나라 최초 시판 독자 엔진(국내 최초 독자개발 엔진 현대 알파엔진보다 2개월 앞서 판매했다)이었던 에스페로 1.5L 엔진을 개량해 얹은 나름대로 의미 깊은 엔진이다. 소음이나 진동도 그 시절 수준을 생각하면 흠잡을 데 없다.

본격적으로 달려봐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대우차가 대개 그렇듯 시끄러우리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조용하다. 바닥 소음이 크지 않고, 엔진 소리도 적당히 실내로 들이친다. 최신 경차보다 더 조용한 수준이랄까? 실제로 누비라는 이전 에스페로가 시끄러웠다는 평가를 반영해 3중 구조 보닛 방음재와 8중 구조 대시보드 패널, 4중 구조 바닥 방음으로 소음을 줄이기 위해 애썼다.

거대한 뒤 트렁크가 무색하게 움직임은 경쾌했다. 107마력 엔진 힘은 결코 넉넉하진 않지만, 4단 ZF 자동변속기가 절도 있게 기어를 바꿔 물어 운전 재미를 돋운다. 실제 무게도 1250kg에 불과해 도로 위를 사뿐사뿐 누빈다. 제원상 시속 182km까지 달릴 수 있는 만큼, 빨라야 시속 120km 정도인 일상 주행에서는 부족함 없이 달린다.

쫀득한 유압식 조향 시스템 손맛과 2570mm 짧지 않은 휠베이스가 어우러져 고속 주행 감각은 만족스럽다. 다만, 불규칙한 노면 위를 달릴 때는 앞뒤가 따로 떨어진 듯 흔들리며 빈약한 차체 강성을 드러냈다. 당시 누비라는 B필러를 보강하고 롤폼형 도어 프레임 구조를 써서 폭스바겐 골프나 오펠 아스트라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비틀림 강성을 확보했는데도, 세월 앞에선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본디 왜건이 세단보다 구조적으로 차체 비틀림 강성이 더 낮기도 하다.

대우차답게 에어컨이 아주 시원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특징은 운전 자세. 브레이크 페달에 맞춰 시트 위치를 맞추면 앞유리창 쪽으로 바짝 달라붙는다. 특히나 시트 높이도 낮지 않아 앞유리가 코앞에 있는 기분이다. 이런 차를 예전에 탄 적이 있었는데… 기억났다. 재규어 XJ(3세대, X300)가 이랬다. 그 차는 길쭉한 보닛을 위해 앞유리를 뒤로 밀었는데, 이 차는 실내 공간을 넓게 뽑기 위해 대시보드를 앞으로 밀었다. 작은 준중형 차체에 1열 시트 뒤로 174cm 길이 짐 공간을 확보한 비결이다. 아 참, 바람세기를 1단으로 틀었는데도 무척 시원했던 에어컨도 빼놓을 수 없다.

대우 스패건은 비운의 자동차였다. 달리기 성능과 사려 깊은 활용성은 결코 3년 만에 단종한 ‘망한 차’ 수준이 아니었다. 그 시절 우리가 조금만 더 진취적이었더라면 인기 모델 누비라를 바탕 삼은 품질과 실내 전체 길이 2639mm에 이르는 널찍한 공간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었을 텐데. 그 진가를 꿰뚫어 본 네덜란드 언론은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토요타를 제치고 스패건을 1998년 올해의 패밀리카로 선정하기도 했다. 스패건이 댕긴 우리나라 왜건의 불씨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단지 불쏘시개가 부족했을 뿐이다.

윤지수 사진 김성욱


대우 누비라에 얽힌 시시콜콜 이야기

순우리말 이름

누비라. 워낙 차 이름으로 불러 별생각 없이 들으면 영어 같지만, ‘누비다’라는 순우리말 이름이다. 세계 시장을 겨냥한 자동차답게 ‘세계를 누비는 우리의 차’라는 의미를 담았다. 그렇다면 스패건은? 스피드·스포츠·스페이스와 왜건의 합성어다. ‘활동적이며 생각이 젊은 사람을 위한 차’라는 뜻이라고.

대우자동차의 전성기를 열다

불은 꺼지기 전 가장 밝게 타오른다고 했던가. 대우자동차는 2000년 최종부도를 맞이하기 전 활활 타올랐다. 1997년 기아자동차를 제치고 국내 승용차 판매 2위 자리에 올라섰고, 1998년 상반기엔 현대자동차까지 누르며 끝내 1위 자리를 꿰찼다. 그 중심에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 삼총사가 있었다.

누비라 다 어디 갔니?

우리나라에만 누비라가 누적 24만3718대 팔렸다. 그 많던 누비라는 다 어디로 갔을까? 아주 치명적인 결함 때문에 오래된 누비라는 순식간에 도로 위에서 사라졌다. 무슨 문제냐고? 뒤 시트와 트렁크 사이 차체에 부식이 발생해 서스펜션이 철판을 뚫고 올라온다.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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